지성소. 그곳은 어떤 곳일까?

지성소. 그곳은 어떤 곳일까?


예슈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인하여 지성소로 향하는 곳이 열렸다.
지성소와 회막을 가로막고 있던 천(휘장)이 위에서 아랫 방향으로 찢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라.

이에,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마27:50-51.흠정역)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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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야훼 하나님께서 직접 찢으셨음"을 의미한다. 휘장은 어느 누가 찢을 수 있는게 아니였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기 위해 휘장을 치라고 명하신 이가, 역설적이지만 이제는 휘장을 찢으셨다. 이러한 찢어짐이 하늘에서부터 시작하여 땅에 이르러서도 그 찢어짐이 나타났으니 이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주기도문이 실체화된 장면이다.
  •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20b). 예슈아의 죽으심이 하늘에서 의도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처럼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고 표현 했을까?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문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시기를 바란다. 예슈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지만, 예슈아 본인도 자신의 삶을 통해 그 문구를 친히 이루셨다. 이제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예슈아의 행하심은 우리들로 하여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끄셨다.


예슈아의 이런 은혜가 있기 이전에는 어느 누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대제사장 단 한 명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몇 명이라구요? 
전 세계를 통틀어서
"단 한 명".
오직 단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지성소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지성소에 출입 가능한 인원은 "전세계에서 단 한 명"뿐입니다.
예슈아는 그런 권한을 우리에게 부여하셨습니다. 
70억 명 가운데 한 명이라면, 7,000,000,000 명 중의 1명이다.

이 세상의 어떤 이가 이런 권한을 가지고 있을까?
이 권한이 작은 것일까요? 하찮은 것일까요?
  •  신세계 정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엘리트 집단이라고 그들을 칭한다. 그런데 그때 사용하는 엘리트라는 등급은 전세계를 통틀어서 "0.01 %"도 안 되는 더 작은 인원을 뜻한다. 그런데 그들을 대단한 집단이라고 칭한다. 


무엇과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있으며 무엇으로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 사실은 이처럼 귀하고 귀한 것이다. 누구에게? 바로 여러분과 제 자신에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그 권한은 그처럼 대단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은 1년에 단 한 번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고 드나들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속죄일 마지막 날인 (7번 째 달) 티쉬리월 10일은 대속죄일이다. 이 날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간다. 이 날은 이스라엘 전체의 모든 죄가 짐승의 피로 덮힘으로써 죄사함을 받는 날이다. 그래서 1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전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이 된다.

만약 지성소에 들어간 대제사장이 합당치 못한 행동을 범하게 되면, 그의 행함은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
그 자리에서 (굶주린 사자와 같은) 죽음이 그를 향하여 달려들어, 그의 생명을 앗아간다.
  • 지성소 밖에 거하는 자에게는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긍휼이 임한다. 
  • 반면 지성소에 거하는 자에게는 (합당치 못할 경우) "어떠한 행위"도 사함을 받지 못한다.


매년 한 번씩 지성소를 들어가야 하는 대제사장의 마음은 어떨까?

지성소 안에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시간"은 그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푸른 초장(시23:2)처럼 여겨질까?
아니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시23:4)를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우리들은 (어떤 의미에서) "망상"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슈아의 보혈이 휘장을 찢어 놓았기에, 지성소의 공의(righteousness)까지도 사라져 버렸지 않느냐고 여기시는 흐름이 있다. 그러나 주님의 공의는 영원(eternity)하다. 은혜는 공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 공의에 의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시점에서, 제 삼자가 대신 대가를 지불해 줌으로써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내게 없어졌을 뿐이다. 누군가는 나 대신 죽음을 맛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성경은 늘 말하고 반복하여 강조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19:2)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다. 그곳에 야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가는 이들은 야훼 하나님이 인정하는 수준의 "거룩"에 도달하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 훼방죄"로 여겨지는 것과 같이 "절대로 사함을 받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대속죄일이 다가오면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그 순간을 위해 여러 달을 거쳐 "예행연습"을 행한다.

(출12:14-16)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convocation; מִקְרָא)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가 되리니 너희는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출 것이니라
  •  miqra(מִקְרָא)는 rehearsal(리허설; 예행연습)이란 개념 안에서 이루어지는 "a convocation, convoking, reading"의 뜻을 갖는다. 


대제사장은 몇 날 몇 일이고 제사장들의 도움을 받아 매일같이 예행연습을 한다. 그리고서 지성소에 들어간다. 본시 모세의 율법을 가진 이들조차도 이렇게 예행연습을 행하고서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모세의 율법을 모르는 믿는 이방인들에겐 얼마의 연습(예행연습)이 필요할까? 우리들의 모든 삶이 "고난" 그 자체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는 훈련(training)이다. 곧 예행연습이었던 것이다.

이는 약속의 땅, 곧 지성소에 들어가서 직접 행하게 될 것을 전제로 "반.드.시" 행해야 할 예행연습이다.

이를 위해 우리 믿는 자들은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얻은 것 아니겠는가?

보라, 내가 {주} 내 [하나님]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법규와 판단의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것은 너희가 들어가 소유할 땅에서
너희가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신4:5.흠정역)

이로써 우리는 무언가 좀더 명확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소유할 그 땅은 막연한 곳이 아니라 "지성소"인 것을.
이를 위해 예슈아는 본(本)을 보이셨고, 이를 위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문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나 그 땅, 곧 지성소에서의 행함을 위해 우리는 반드시 거룩해야만 한다. 야훼께서 명령하신 법규와 판단의 법도를 실제로 행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가 된다면 어떤 행함도 용서받지 못하는 상황을 직면하게 될것이다.

우리는 지성소를 무척이나 사모했다.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음에 대해 스스로들 대견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그 안에서의 거룩을 유지해야 하는 삶에 대해선, 간과했다.
  • 지성소 밖에서 이루어진 거룩하지 못한 것들은 "사함"을 얻을 수 있는데,
  • 지성소 안에서 이루어진 거룩하지 못한 것들은 "사함"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12:31)

지성소.
이제는 우리들의 삶 속에 남아 있는 오해들이 있다면, 조금씩 조금씩 해소되어야 할 줄 믿는다.
오늘의 이야기는 오해를 해소하는 또 다른 작은 글이 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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