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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헌신)은 어느 누가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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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을 대접하려 한다. 이때 어느 누가 음식 장만을 해야 할까? 요리를 잘 하는 아내가? 혹은 (요리엔 형편없지만) 농담을 잘 하는 내가? 여러분들이라면 어느 누구에게 요리를 맡길 것 같나요? pixabay (below all) It's Nonsense! 이 경우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순 없겠으나 어느 누가 "의미없는 짓"을 행할 수 있을까? 이건 상식(common-sense)이다. 주방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이는 당연히 "아내"다. 그 이유 또한 너무나 합당하고 모두가 부인할 수 없다. "요리를 잘 한다" 는 이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우리는 매 순간 주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야 함을 잘 안다. 그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안다. 위의 경우에서 처럼 쉽게 생각해 보자. (성령의) 열매를 맺은 자와 열매를 맺지 못한 자가 있다. 세상 사람들을 향해 "무언가를 나눠주는 일"을 부탁하려 할 때,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기는게 합당할까? 이 또한 그 답은 너무나 명쾌하지 않을까? 무언가 나눠줄 만한 것이 있는 자에게 일임을 해야 그가 나눠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당연히 성령의 열매를 맺은 자에게 "당신이 수고하여 맺은 그 열매를 다른 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묻는게 상식이리라. 이것이 상식일진데, 실제 우리의 삶 또는 교회(공동채) 안에서의 모습은 어떠한가? 섬길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열정이 보인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다듬어지지 않은 채) 재능이 보인다는 이유 만으로 섬김을 권유받는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훌륭한 요리는 심히 강팍해진 심령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형편없는 요리는 나를 아끼는 이 조차도 내게 등을 보이게 할 수 있다. 한편 재능만 있으면...

믿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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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있을까? 무섭게 생긴 식칼 한 자루가 있다. pixabay 어린 아이에게 이 식칼을 맡기면, 그는 식칼의 두려운 부분만을 보게 된다. 곧 그 칼은 어린 아이를 상하게 한다. 그래서 보호자는 어린 아이와 식칼을 한 자리에 두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식칼을 둔다. 언제까지? 어린 아이가 성장하여 그 칼을 다룰 수 있겠다고 보호자가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pixabay 복 있는 사람은 ...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1:1)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눅16:26) 어린 아이가 점점 성장한다. 이런 일 저런 일 등을 겪으면서 성공과 실패를 번갈아가며 체득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신중하게 행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는 일들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자라게 된다. 그러자 보호자는 그에게 칼을 맡긴다. 그런데 이때의 그는 예전의 어린 아이가 아니다. 비록 여전히 그 칼은 자신에게 위협적이지만, 성공과 실패를 통해 체득한 경험들은 그 칼을 얕잡아 보지 않게 한다. 허나 더 이상 두려운 존재로 두진 않는다. 능히 다스릴 수 있는 존재라 여기게끔 한다. 그는 무섭게 생긴 식칼을 잡아 든다. 그리고 그 칼을 통해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지를 생각한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무엇이지? 내 재능은? 그 재능 가운데서 이 칼과 함께 할 수 있는 재능은 무엇일까? 내가 칼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재능은 어떤 분야일까? 등등 결정이 되었다. 그는 서서히 칼을 집어 든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칼을 손바닥에 붙이고서, 요리 재료들을 하나 하나 다듬어 간다. 이내 칼을 든 그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자신감이 깃드면서 도마를 두들기는 칼의 소리가 더욱 빨라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