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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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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경우 우리는 마음이 설레게 되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왜 선물이라는 단어에 우리의 마음은 그토록 설레는 것일까?​ 내 생일이라 가정해 보겠습니다. 친구가 제 생일 선물을 들고 옵니다. 그리고 제게 그 선물을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생일 축하해~. 내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랐어! 음... 기분이 좋아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겠죠? 무엇이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요? ​ 그건 선물이라는 정의(Definition)를 친구가 잘못 알고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즉 선물이란... 주고자 하는 자와 받고자 하는 자의 마음이 하나(אחד 에하드) 가 될 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이것은 매우 상식적이면서 매우 중요한 삶의 이치입니다.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명백한 삶의 이치죠. 특히 회사나 소속기관에서 진급을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삶의 우선 순위를 가장 높게 잡아야 할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상관의 마음에 부합된 그런 행동 내지는 선물을 상관에게 보여주거나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로서. 신앙의 유무를 떠나 모두가 잘 아는 삶의 필수 팁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담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는 '칭찬과 아첨'으로 나뉘는 부분이 있지만, 아첨으로 비하되지 않는다면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사회적 문화의 하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그런데도 불구하고 생일 선물을 준비하는 이가 자신의 마음에 맞는 것으로 선물을 고른다면, 생일을 맞이한 자의 기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선물은 반드시, 받을 사람의 마음에 부합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생일 선물을 기쁨을 받고자 하는 이들에겐 너무나도 상식적인 사실입니다. ​ 그런데 이렇듯 가장 기본적이다 못해 어린 아이들 조차도 능히 알고 있는 이런 사실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다윗처럼 합한 자' 또는 '아브라함처럼 선택받은 자'가 될 수 있는 중요하면서도 소소한 삶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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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인물들은 특별한 성품을 소유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으로 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또는 합한 자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기본 성품을 태어나면서 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를 부를 때, "저기요~",   "당신~" ,  "야~"   "사장님" 등의 적당한 호칭으로 부른다면, 그 관계는 다정한 관계일까요? 친밀함이 넘치는 그런 오붓하며 서로간에 상냥함이 넘치는 관계라 할 수 있을까요?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고, 그리하여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과정을 보면 가장 큰 변화는 '호칭'에서 찾아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아껴주며 배려하는 그런 표현으로. 호칭이 바뀌게 되면, 어느 순간 그녀(내지는 그)의 의중을 묻지 않고 그녀(내지는 그)를 위해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데. 그 행동에 그녀(내지는 그)가 심히 기뻐하게 됩니다. 이것이 두고 '마음이 합한 자'라고 합니다. 그럴 때 '택함 받은 자'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죠. "내가 당신을 만난 것에 대해 감사해요" 이 같은 변화의 시작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스스로 고민하며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 때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이해하기 쉬운 내용을 영상 속에서 만나 보시길 바랍니다.

내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그 열쇠는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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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에 지칠 때면 바다를 본다. pixabay by David Sanchez 그 순간 더위에 지친 우리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원함을 느낀다. 그리고 지친 몸에 생기가 든다. 그래서 바다를 향해 있는 힘껏 달려 나가는 힘을 얻게 된다. | 하는 일마다 잘 안 될 때면 pixabay by Free-Photos 인적이 드믄 곳을 찾아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그 순간 답답하게 마음을 묶고 있던 올무가 스르르 풀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유해진 마음을 얻는다. 그래서 일터로 되돌아가 다시금 힘껏 일에 전념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요? 내가 바라보는 것은 진정 실제적인 삶 그 자체입니다. 내 삶에 이같은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렇게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 어려운 삶의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그런데, 그런데 당신의 삶은 어떤지요? 삶의 어려움, 삶의 무게에 힘없이 무릎을 꿇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무리하여 일어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만 지금의 당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 부분만을 되돌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을 바라보시나요? 명예를 바라보시나요? |  한 예화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두 일꾼이 있습니다. 한 일꾼은 급여 만큼의 일만 합니다. 조금만 더 정성을 쏟거나 퇴근을 미루고서라도 일을 마무리 짓는다면 훨씬 좋은 업무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도, 퇴근 시간이 되면 칼같이 퇴근합니다. 자신의 급여는 퇴근시간까지만 적용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묻습니다. "야근 수당이 있다면 일을 더 하겠습니다." "야근 수당 있나요?" '야근 수당을 줄 수 없다'는 사장의 말과 함께 그는 두 말도 하지 않고 냉정하게 퇴근합니다. 그는 급여 ...

삶에 고난이 임하면 두려움에 싸인다. 그러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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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below all) 삶에 고난이 임하면 두려움이 우리를 찾아와 극심한 내적 갈등을 빗어낸다. 내적 싸움 속에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은 두려움에 의해 지배당하게 된다. 두려움에 지배 당하면서부터 우리의 시야는 점점 좁아진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도울 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는 "맹인"같은 자가 되어 버린다. 지옥을 체험한 분들의 간증 속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극도의 허기 속에서 땅에 떨어져 있는 음식을 자신의 입에 넣고자 손으로 땅을 휘젖는 허다한 무리들이 있다.  그들의 팔은 절대로 굽어질 수 없는 단단한 철재 막대처럼 변해 있었다.  그래서 음식을 겨우 잡았다 할지라도, 그 음식을 입 안으로 넣을 수가 없다.  허기 때문에 두려움에 쌓인 이들은 음식을 자신의 입 안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에 고함을 치며 운다.  이렇게 슬프 통곡하듯 울고 있는 이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 그 순간 시야가 조금만 더 넓게 볼 수 있다면, 그들은 "내 옆에 나와 사정이 똑같은 또 다른 사람이 있어"라고 하는 생각할 수 있는 기회 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 나는 내 입에 음식을 넣을 순 없지만, 타인의 입에는 넣어줄 수 있어 " " 그러면 내로 인하여 음식을 먹게 된 그가  내 입 안에 음식을 넣어줄 수 있을거야 " 라는 소망을 품을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은 지옥이다. 지옥에서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이기에,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시야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자들처럼 "매우 좁은 시야"만을 갖게 된다. 땅에 떨어진 음식을 보았을 때, 그저 자신의 입 안에 넣을 생각(...

사랑은 "나눠주는 것"이라 찬양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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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갖는게 아니라, 오히려 "나눠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삶을 얼마나 살고 있을까? 스승은 수업시간을 학생과 나눠 갖는가? 목회자는 주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성도와 나눠서 생각하나? 서로의 의견을 존중할까? 가정의 일에 대해 부모는 자녀와 의견을 나누고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회까지도 나눌까? 우리는 나누지 못한다. 그래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여 결국에는 "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는 말씀을 현실에서 목격하지 못한다 . "나눠주는 것"부터 하자. 이것은 배려(care)다. 이것이 섬김(care)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랑(love)이다. 많은 (사역같은) 것을 하려 하지 말자. 그저 내게 있는 소중한 것을 상대에게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리하면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상대를 이해하게 되나니, 그 안에서 야훼 하나님이 인정하는 선한 일이 행해지리라. 입술로만 "사랑은 나누는 것"이라 찬양하고, 그 찬양을 아이들에게 세뇌시키려 하지 말고, 어른부터 본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훌륭한 선생이요 교육이 어디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