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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받고 싶다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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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축복. 누구나 원하고 원하는 것. 심지어 악한 자들 조차도 축복을 받고 싶어한다. 이 정도면 (축)복이 갖는 매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그런데 복을 받는 방법을 모른다. 복을 받는다면 다른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자신이 가장 먼저 받겠다고 줄을 서는 열심이 은사자 분들의 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성령님이 운행하신다는 곳에서도 자기가 먼저 복을 받겠다고 여기거나 혹은 먼저 복을 받으면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곱절의 양으로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가장 먼저 줄을 섰고, 가장 먼저 기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이 임하지 않는다. 몹시도 허전할 뿐이다. "한 번 더 줄을 서서 기도받을까?" 사자를 잡지 못했다고 안타까워만 한다면 그는 무지한 자다. 다양한 실행착오를 겪더라도 사자 잡는 법을 알아내는게 지혜 중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너무 허기져서 일어날 힘도 없는 이에게는 (율법이 아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빵을 주어야 함이 옳다. 그러나 일어설 힘이 있는 자에게는 물고기를 주는게 아니라 낚시하는 법 을 알려 주는게 현명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참 자유를 선사하는 것 이기 때문이다.      ※ 단, 배부른 자(돼지)에게 낚시를 알려 주면 그는 낚시하는 방법을 하찮게 여긴다. 그래서 제대로 배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투털대고 가르치는 이를 해하려 한다. 하지만 적당히 배고픈 자는 다르다. 일어날 힘은 있으나 배가 고파서 낚시하는 법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그는 가르치는 이의 가르침을 무시(ignore)하지 않고 스승을 인격적으로 대한다. 스승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는 오로지 배고픈 자 만이 낳는 삶의 참된 모습이다. Photo by Timothy Ebe...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와 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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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는 과정에서, 일을 주도하는 사수가 있는가 하면 사수를 보조하여 돕는 자로 발탁된 조수가 있다. 사수와 조수의 관계는 어느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정해진 하나의 사실이 있다. 조수는 항상 사수의 뒤를 따라야 한다. pixabay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요10:7b~8) 성경 속 내용은 사수와 조수의 관계로 이해한다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 질 것이다. 물건 그 자체에 욕심을 낸 자는 절도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을 소중히 여긴다. 반면 물건에는 욕심이 없다. 하지만 그는 어떤 사람(A씨)을 미워한다. 그런데  A씨가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A씨가 (물건을 소유하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몹시도 슬퍼하고 낙심하게 되기를 바랐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도록 그는 그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물건을 소유했을 즈음이면, 그 물건이 망가지든 없어지든 상관하지 않은 채로 가치없이 여겨버린다. 어찌보면 동일한 절도행각이라 여겨질지 몰라도, 사실은 다르다.  전자(the former)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인데 반해 후자(the latter)는 어떤 사람을 미워하였기에 죄를 범했다. 그의 죄는 욕심에 근원이 두지 않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마음에 근원을 두고 있다.  "도둑"이라는 죄명이 "살인자"라는 죄명과 연결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 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 로 죽었고(민27:3a) 슬로브핫 딸들의 고백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지, 야훼 하나님을 대적(betray)한 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배신"(betray)이라는 테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