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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그리고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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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Origins | 스바(saba)의 여왕과 솔로몬에 관한 소문(증언) 열왕기상 10장 6. 왕에게 이르되, 내가 내 땅에서 당신의 행적과 당신의 지혜에 관하여 들은 소문이 참되도다. 7. 그러나 내가 와서 내 눈으로 그것을 볼 때까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그들이 절반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당신의 지혜와 번영이 내가 들은 명성을 능가하는도다. pixabay 스바의 여왕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 땅에서 사는 동안, 당신의 행적과 당신의 지혜를 들었었다." 이것은 우리가 말씀으로 이미 다 이루신 창조주 하나님의 행적과 그 지혜를 '땅에서 사는 동안' 전해 들은 것과 같다. 그녀는 그 소문들을 거짓으로 치부하진 않았다. 다만 그 소문이 진실 그 자체라고 믿지 않았을 뿐.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것과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은 다르다. 거짓이라 여긴다면 그 소문의 진위여부를 판명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 소문이 거짓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없다. 허나 소문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 진위여부를 알아보고자 노력했다는 것은 소문의 내용 외에도 전해지지 않은 또 다른 놀라운 사실들이 있을거라는 기대감을 갖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처럼 여기는 이는 소문을 듣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소문이 가리키는 그 실체를 자신이 직접 보고야 말겠다는 강한 도전을 불러 일으킨다. |  그런 이는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자다. 사실 소문 속의 내용이 그에 관한 놀라움의 전부라면, 더 이상 궁금증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없다. 그런데 "소문이란 단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라고 여긴다면, 그는 아직 듣지 못한 내용들을 자신이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소문의 내용도 놀랍겠지만, 드러나지 않는 내용은 말할 나위 없이 놀라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역동성을 표현하고 싶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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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디자인 또는 어떤 보여주기 위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주 거론되는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보는 이들에게 "살아 있는 모습" 또는 "역동성"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역동성을 표현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살아 있는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 그림으로 그 차이를 느껴보자. Population Reference Bureau 다음의 그림을 보자. 두 그림은 "동일한 사건"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는 "숫자"로, 다른 하나는 "그래프"로 나타내었다. 이때 나라 간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더 잘 표현되었을까? 숫자가 줄 수 있는 "차이"에 대한 느낌보다, 그래프가 줄 수 있는 "차이"의 느낌은 더 강렬하다. 그래서 문장보다는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 숫자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림보다는 살아 있는 실체를 직접 만나는 것이 가장 강렬하게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성경책의 글씨만을 그저 읽는 독서의 수준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것보다, 설교자의 설교를 청취하는 수준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것보다, 타인의 간증을 통해 간접적으로 예슈아의 살아계심을 느끼기 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직접 예슈아의 살아계심을 느끼는 직접적인 체험(간증)있는 삶을 살아갈 때, 이보다 더 강렬한 영적 감동은 어디 있을까? 모든 것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youtube 요한복음 4장(흠정역) 6. 이제 거기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그런즉 예수님께서 여행에 지치셨으므로 우물에 그대로 걸터앉으시니라. 때는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 길으러 오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실 물을 내게 달라, 하시니 우물가에서의 사마리아 여인과 예슈아의 모습이 기록된 성경 말씀이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