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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해야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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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순원 씨의 소설 "소나기"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들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소설일 것이다. 한편 서울대학교의 저명한 교수께서 저술한 전문서적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소설 소나기와 전문서적의 차이를 보면, 전문 서적은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상세하고 자세하게 묘사"하는 기법으로 작성된 글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런 글들은 독자 또는 독자의 생각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없을 만큼 "완성도 높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소나기는 모든 이야기를 대충 대충 기록하고 있다. 주인공 두 아이의 하루를 표현하더라도, 하루 일과 중에서 특별한 내용만을 묘사할 뿐 나머지는 소개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독자 또는 독자의 생각이 "감춰진 주인공의 일상"에 대해서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는 구조다. 쉽게 말해서 주인공과 그의 연인 사이에 특정 인물이 끼어 들었다고 하자. 전문 서적은 세 사람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잘 짜여진 관계도를 그려 놓고서, 그들의 행동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감추지 않고 모두 드러내 버린다. 소설은 다르다. 관계성의 일부를 감춰버린다.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추측할 수 있는 계기(틈)"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준다. 이 틈은 독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각자의 추론을 발동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창의적인 활동을 이끌어 준다. 그래서 이러한 소설 또는 드라마 내용을 놓고서, 직장이나 학교, 가정 등 너나할 것 없이 관심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작가의 노력으로 모든 것이 드러나 버린 순간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기회; 틈)는 소멸된다. 이 때문에 독자는 더 이상 흥미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적당히 "감춰"지면 독자로 하여금 "독자 자신만의 상상력을 끼워 넣을 수 있는 여지...

황순원씨의 소나기,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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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ibooks.tistory 어린 시절 황순원씨의 "소나기"를 영화로 본 적이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40 중반의 지금까지도 그 내용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가끔은 이루지 못한 애틋한 어린 사랑을 생각하면 아직도 내 마음이 아려온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전공 서적을 보았지만, 그 내용이 아직까지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적은 없다. 그저 필요한 순간에 기억을 더듬어야만 기억 날 뿐. 황순원 씨의 소설이 생활에 필요한 전공서적보다 내 마음을 더 강하게 사로 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루지 못한 어린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애절함이 결말을 맺지 못한 체, 끝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여운(餘韻)이라 말한다. 이렇게 마음이 아리다 할 만큼 그 마음을 강하게 사로 잡을 수 있는 표현은 다름 아닌 여운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밝히 드러내 보이기 보다는 살포시 감추는 그 묘미가 오히려 읽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래서 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여운을 남긴다.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을 항상 부분적으로만 드러내고 있다. 우리에게 늘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 여운에 심취할 수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