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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날에 임할 그 시험을 준비하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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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평소 공부를 한다. 누구 하나 공부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스스로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자율)의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절대로 영원하지 않는다. 반드시 주어졌던 자유에 대해 '확인받는 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것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야훼 하나님의 질서( the principle, the order, the commandments )요 만물의 이치다. 그런데 말이다. 공부를 못하는 이들의 특징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시험을 준비하면 되는 지 그 사실을 모른다. 가령 수학 시험을 치뤄야 하는 상황에서, 시험에 관한 정보, 곧 시험범위와 어떻게 시험을 공부하면 되는 지에 대한 설명을 누구에게 들어야 할까? 이같은 질문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답을 할 수 있다. 가장 공부 잘하는 친구에게? 국어 선생님께? 교장 선생님께? 아니면 부모님께? 아니다. 담당 수학 선생님 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가 시험문제를 출제할 수 있는 ' 유일한 권한 '을 가진 분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반드시 찾아올 것은 무엇일까? 평소 신앙 생활을 하는 중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자유)를 만끽하며 살아왔다. 어느 누구도 나의 자유의지적 선택에 대해 이렇다할 반문을 하지 않았다.  왜? 그게 내 자유의지이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하지만 자유의지적 선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기는 영원토록 지속되지 않는다. 반드시 '나의 자유의지'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야훼 하나님의 질서로서, 내가 뿌린 씨앗에 대해 거둬들이는 추수의 때가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12:36) 이때 평가 항목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평가가 진행되는 지에 관한 '정보'를 아는 이가 있을까? 누구에게 그 정보를 묻는 게 현명하고 지혜로운 모습일까? 교회 목사님? 은사자? 아니다. 평가하는 ...

외모를 보지 말고 그의 마음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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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개역개정) 야훼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중심은 무엇이며 사람이 보는 외모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렇듯 성경 말씀 하나 하나를 대할 때, 궁금함을 갖고서 더욱 깊은 의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시도해야 하리라. 다윗은 허다한 일들을 했다. 야훼 하나님께서 명하여 시키신 이들부터 그가 야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했던 일들, 그리고 그가 실족하였던 모습들을 보면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야훼께서 다윗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은 다르다. 하나님이 ...(중략)...사울을...(중략)...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중략)...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13:21~22.개역개정) 다윗이 어떤 일을 행했는지는 거론하지 않으신다. 왕으로 세움 받기에 합당한 일들을 열거하지 않으시고, 그저 간단한 외마디만 하셨는데 성경은 그것을 가리켜 '야훼께서 다윗을 증거한다고 하신다.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pixabay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볼 때, 그가 행한 사역 그리고 사역으로 인해 부가적으로 발생한 결과(들을 열매로 말하는 그것)들에 주목한다. 사역과 사역의 내용을 보고서 '그 사람은 믿을 만 해'라고 말한다. 외형적으로 드러난 사실들을 보는 것으로 사람의 중심을 지레 짐작하듯 판단한다는 것이다. Photo by Aditya Romansa on Unsplash 하지만 야훼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먼저 보시고서 외형적인 것들을 판단하신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3.개역개정) 그래서 필자는 나 자신은 물론 모든 여러분들과 함께 권면(훈계)를 듣길 원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은 어디에서 ...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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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에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pixabay (이하 모두) 그 발걸음이 모이고 모이면 하나의 길이 된다. 우리는 이처럼 길을 걷는다. 길을 걷는 중에 무언가 관심 될 만한 것을 보게 되면,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그 일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서 능히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벌어지는 것들이다. 길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은 아무리 좋고 아름다워 보여도, 우리는 그것을 위해 걸음을 멈추는 일이란 없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갈림길(a way)이 있다. 우리는 그 가운데 하나의 길(the way)를 선택한다. 그 길을 걷는 중 나는 가끔식 멈춰 선다. 그리고 내게 주어졌던 (무수히 많은 시간 중에서 일부의) 시간을 나를 멈춰서게 한 그 일을 위해 사용한다. 이렇게 하나 둘 씩 모이다 보니, 어느덧 내가 즐겨 멈추는 일들이 생겨나 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즐거운 일들은 다른 길을 걷는 이들과 확연하게 달랐다. 나는 " 그 길을 걷고 그 길 위에서 멈춰서는, 그리고 나의 관심을 끄는 일을 위해 시간을 들이는 모든 것 "을 " 삶 "(my life)이라 말한다. 그래서 내가 걷는 그 길(the way)은 곧 나의 삶(my life) 이다. 예슈아와 동행하는 삶이란, 그래서 그의 가르침을 따라 인생의 여정을 걷는 결단에서 비롯되고, 그 결단은 알려준 길을 걷는 "걸음"(행함)으로 드러난다. 결단, 걸음 그리고 도달은 이렇듯 항상 함께 하는 것인데, 결단과 걸음도 좋지만 우리는 반드시 (종착지에) 도달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