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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사랑하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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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공동체는 야훼 하나님께 반드시 경배(praise)드려야 한다. 그런데 그 경배(praise)는 "상대방을 칭찬하다(praise)"는 뜻이다. ※ 칭찬 (稱讚) compliment, praise, credit, (formal) commend (출처: 네이버 사전)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그것이다. "너를 축복(칭찬)하는 자에게는 내가 그를 축복(칭찬)하고, 너를 저주(비난)하는 자에게는 내가 그를 저주(비난)하겠다"(창12:3.역자본)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3.개역개정) 왜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진정한 의미가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같다.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은 그를 축복하는 것 이다. 고지식한 성품에 매사에 옳고 그름에만 집중했던 필자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칭찬을 매우 아끼는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 불현듯 그 모습이 옳지 못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고 했다. 내가 자녀에게 칭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매일같이 그런 삶을 즐겁게 살아간다면 어찌 내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것이며, 어찌 내 자녀가 가정(공동체)을 부정하려 할 것이며, 어찌 내 자녀가 남자가 남편이 되고 여자가 아내되기를 거부 하겠는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으로 정죄하고 판단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필자는 오늘 이후로 달라지려 한다. 그릇된 행위를 칭찬하는건 아니다. 다만 (아무리 미더워 보여도) 칭찬할 수 있는 세미한 삶의 모습을 찾으려 애써보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그 세미한 부분을 찾을 수 있도록 주께 "영적 안목...

고래를 춤추게 하고 싶다면? 그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라'(pra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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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공동체에 속한 이들이든 속하지 않은 이들이든 모두가 잘 아는 말이 있다. "칭찬(praise)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pixabay (below all) 인간의 말(sound; word)을 알아듣지 못하는 고래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에게 "인간의 지시에 따라 춤을 추"게 하고 싶어한다. 그 모습을 통해서 이윤을 창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고래를 자신의 본래 의도대로 따라오게 하기 위해, 또는 자신은 목자가 되어 고래를 인도하고자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판단과 정죄" 가 아니다. "칭찬"을 해 주어야 고래가 스스로 인간의 지시(명령)을 따라 순종한다. 그럼 무엇을 칭찬해야 할까? 못하는 모습 또는 악한 행동을 했던 그 모습을 칭찬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런 부분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을 칭찬할 수 있을까? 세상의 어떤 존재든 "그 존재만이 할 수 있는 특기"가 있다. 어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필코 행하는 그 존재만의 장점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굴하지 않고 행할 수 있는 그런 삶의 모습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쓰레기 장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재생 가능한 물품이나 실수로 잃어버렸던 진귀한 보석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 부분을 찾아야 한다. 매일같이 실수하는 실수투성이지만, 늘상 자신의 업무량에 미달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그의 진귀한 모습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겐 "영적 안목"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안목이 필요하다. 그 안목을 가진 가운데 그에게서 그가 잘하는 부분을 찾았다면, 혹 그것이 100의 1가지 밖에 되지 않더라도 그 부분을 칭찬해 줘 보라. 그 칭찬이 처음에는 무척 낯설어서 그가 오히려 반색하여 거부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