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그리고 실체


Ancient Origins


| 스바(saba)의 여왕과 솔로몬에 관한 소문(증언)


열왕기상 10장
6. 왕에게 이르되, 내가 내 땅에서 당신의 행적과 당신의 지혜에 관하여 들은 소문이 참되도다.
7. 그러나 내가 와서 내 눈으로 그것을 볼 때까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그들이 절반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당신의 지혜와 번영이 내가 들은 명성을 능가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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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의 여왕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 땅에서 사는 동안, 당신의 행적과 당신의 지혜를 들었었다."

이것은 우리가 말씀으로 이미 다 이루신 창조주 하나님의 행적과 그 지혜를 '땅에서 사는 동안' 전해 들은 것과 같다.


그녀는 그 소문들을 거짓으로 치부하진 않았다.

다만 그 소문이 진실 그 자체라고 믿지 않았을 뿐.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것과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은 다르다.
거짓이라 여긴다면 그 소문의 진위여부를 판명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 소문이 거짓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없다. 허나 소문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 진위여부를 알아보고자 노력했다는 것은 소문의 내용 외에도 전해지지 않은 또 다른 놀라운 사실들이 있을거라는 기대감을 갖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처럼 여기는 이는 소문을 듣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소문이 가리키는 그 실체를 자신이 직접 보고야 말겠다는 강한 도전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 이는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자다.

사실 소문 속의 내용이 그에 관한 놀라움의 전부라면, 더 이상 궁금증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없다. 그런데 "소문이란 단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라고 여긴다면, 그는 아직 듣지 못한 내용들을 자신이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소문의 내용도 놀랍겠지만, 드러나지 않는 내용은 말할 나위 없이 놀라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스바의 여왕이 말했던 "내가 와서 내 눈으로 그것을 볼 때까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던 그 의미가 이제는 이해되었을 줄로 믿는다. 

그녀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직접 만나는 것으로써 증명되었다. 우리는 헛된 것을 쫓는 삶을 살아선 안 된다. 의미 있는 일 내지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진정한 가치는 야훼 하나님의 뜻에 있고 그 뜻을 행할 때 가치는 꽃을 피운다.

소문을 들음으로써 생겨난 궁금증 때문에, 그 실체를 직접 볼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 온 스바의 여왕.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았고 경험했다.

"그들이 절반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당신의 지혜와 번영이 내가 들은 명성을 능가하는도다"

소문은 소문일 뿐, 아무리 소문이 무성하다 한들 실체를 보는 것만 하겠는가? 옛 선조들의 말이다. 허나 성경의 깊은 의미를 알면 알 수록 옛 선조들의 말들이 성경의 진리를 벗어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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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슈아를 증거하는 소문, 곧 성경


요한복음 5장
39.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중략)…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거 하느니라.

예슈아를 증거하는 책. 그것은 모세의 책이요 모세오경이라 불리는 성경책을 뜻한다. 성경책의 모든 내용은 참되다고 믿으며 그렇게 여긴다. 그래서 예슈아를 증거하는 그 모든 내용은 참되다고 믿는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성경이 증거하는 내용이 예슈아에 관한 전부일까?

스바의 여왕이 고백했던 그 말이 이 순간 떠오른다.
"그들이 절반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당신의 지혜와 번영이 내가 들은 명성을 능가하는도다"

성경을 읽었고 허다한 설교를 들었던 우리들.
그러나 "믿습니다!!!" 내지는 "아~~~멘!!!!"이라 목이 터져라 외치는 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순간에 들어가면 고백을 하던 그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면, "성경책이나 설교를 통해서 알던 주님을 내가 만났었는데, 오~ 그분의 크고 놀라우심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하세요"라고 간증한다. 성경책이나 설교 등으로 경험했던 주님의 크기는 실제로 만났을 때의 크기에 비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다. 비교(가늠) 자체가 불가다.

참된 사실을 알리는 그런 소문을 듣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허나 그 소문에만 머무는 것은 지극히 미련한 짓이다. 소문의 진정한 의미(or 소문이 존재하는 의미)는 어떠한 소문이라도 담을 수 없을 만큼 광대하신 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저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분께 강권하고 싶다.

성경의 내용만으로 예슈아를 안다고 말하지 말자.
설교를 들었다는 것만으로 예슈아의 뜻과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지 말자.
그 모든 것은 그저 예슈아를 증언하는 참된 소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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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슈아를 직접 만나야 한다.

그분의 음성은 허스키 한지, 혹은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부드러운지 직접 들어 봐야 한다. 그분의 공의에서 비롯되는 단호함은 얼마나 냉혹한지 그가 발하는 서슬퍼런 냉기를 직접 맛보아 보라.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비참한 순간에, 모든 비참함을 덮어 버리사 내게 위로의 두루마기를 입히시는 그 일을 경험해 보라. 그의 위로하심이 세상의 모든 비난들보다 얼마나 크고 강한지 직접 경험해 보라.

매일 매일 백문이불여일견의 삶을 이루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아가는 그 크기가 매일 매일 더 풍성해 지길 바랍니다. 이렇듯 매일같이 주와 동행하는 자가 될 때, 그가  '예슈아를 안다'는 사실은 흔쾌히 인정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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