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강호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천국의 비밀

"열혈강호"는

오래토록 국내외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오고있는 만화로서, 오늘 날까지도 연재가 계속되고 있는 국내 최고의 만화들 가운데 하나다.

열혈강호의 연재 역사.
1994년 만화잡지 영 챔프의 창간과 함께 해왔던 유일한 만화 연재작으로 2009년 영 챔프의 종이잡지 발행이 종료되고 2013년까지 사실상 영 챔프와 동고동락을 하였다. 

현재는 코믹 챔프로 연재를 이동하여 계속해서 연재를 하고있는 중이다.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이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될 수 있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영감
(spiritual inspiration)

아울러 그 영감을 받는 자는 "빛 또는 어둠"으로부터 영감을 받았겠지만, 영감을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빛과 어둠의 조화"에 의해서만 표현된다. 영감 그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영"(Spirit)이기 때문에. 그래서 작가가 영감을 "볼 수 없는 상태, 곧 영의 모습" 그대로 독자(reader)들에게 표현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어느 누구도 작가의 작품을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반드시 "눈이 보이지 않는 실체를 눈에 보이는 실체로 바꿔"서 표현해야만 한다.


어떤 실체가 눈에 보이기 위해서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음과 양의 조화"로만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창조의 질서요 균형(조화)이다. 그래서 우리는 열혈강호의 영적 출처를 따질 수 없을지라도, 독자를 향해 출간된 작품에서는 "음 또는 양에 속한 진리"를 찾을 수 있다.

오늘은 열혈강호가 이야기하는 "각성"에 대한 영적 의미를 알아보기로 하자.


만화의 한 장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신 곧 하나님(God; 神)에게 속한 부분을 거론한다.
하나님에 속한 것을 느끼는 그 순간을 표현하기를

열린다.
(open)

고 했다. 곧 "문"(Door)을 지나는 행위로 나타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요10:7b~8a)

각성이라는 부분은 "문을 지나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은 "양의 문"이신 예슈아를 유일한 통로(관문; gate)로 여기는 상황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각성"이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더하는 말로

그 힘(하나님의 권능)을 느낀다.
고 말하고 있다. 영적 실체를 "책이나 소문(증언; 예언)"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든 지각으로 느끼는 실제적 경험의 순간이 되었음을 뜻한다.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
선악을 분별하느니라. (히5:14b)


히브리서 5장
13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니라.
14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에게 속하나니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 선악을 분별하느니라.


자신의 감각들이라면 이를 표현하기를 우리는 "Sense"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감각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요소"(Common)로서 부여받았다. 그래서 모두가 합의하여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갖고 있는 감각의 실체는
상식(Common sense)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 속한 이들은 힘들고 지칠 때, 외친다.

상식을 지킵시다.

사람된 도리로서,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 행해야 할 바를 말한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상식들은 더욱 심오한 자연의 섭리요 창조의 질서를 설명하는 지침서가 된다. 즉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진리 곧 상식에 합당한 말로 "새로운 사실"은 설명되어야 한다. 그렇게 인정받은 사실을 우리는 과학(science)이라 한다.

  • 과학은 모두가 인정하는 진리 위에서 명확하게 설명되는 사실들을 말한다.
  • 진리는 모두가 인정하는 전문적으로 잘 단련된 상식(히5:14)에 의해 인정된다.



  • 고로 과학은 반드시 단련된 상식에 의해서 설명되어야 하며, 그럴 때 모두가 납득한다.



혹여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내용을 들어보라.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많다. 그것은 전문지식이 부족해서 그럴 뿐, 반드시 상식에 준하는 사실들로 설명을 할 경우에는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상식에 준하는 사실로도 설명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최소한 여러분에게 만큼은)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러기에 그런 내용들은 여러분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수용하도록 강요받는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속임받는 일이 아닐까 싶다.

상식의 선에서 설명 가능한 과학적 사실들이 모이면,


양심
(conscience)

에 합당한 것이 된다. 과학을 지향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램은 이렇게 "양심이 회복되고 양심에 준하여 생활하는 사회"를 바라는 것과 같다. 과학을 지향하는 바램은 양심에 준하는 생활이며, 양심이 인도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길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히브리어로 표현하면
שָׁמַר (shamar)
to keep, watch, preserve
라고 한다. "목자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그의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는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오직 "그의 음성을 듣는 것"(에서 비롯된 믿음; 롬10:17)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hearing)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롬10:17.흠정역)

너희가 참으로
내 목소리(my Voice)에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내게 모든 백성들보다 뛰어난 특별한 보물이 되리니
(출19:5.흠정역)


이렇듯 믿음이란
야훼 하나님의 음성(voice)을 듣는 것(hearing)에서 시작
된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실제 상황은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삶
에서 현실화(실체화)된다.

벧전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딤전1: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구원의 표, 곧 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라고 성경은 말한다.
교훈 곧 Torah의 가르침이 의도하는 바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없는 믿음"을 소유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사랑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 선한 양심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도를 간과하지 말자.
  • 과학을 그토록 지향하려는 사람들의 숨은 의도를 간과하지 말자.


대신 아무런 분별 또는 의구심 없이 "맹목적으로 수긍 하려는 게으른 자세"는 갖지 말자.
과학이 지향하는 바를 "물질만능주의"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의도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각성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번의 영적 깨달음만으로 야훼 하나님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손쉽겠는가? 물론 한 번의 영적 깨달음을 얻는 것 조차도 무척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에 끝난다면 너무나 쉬우리라. 천국으로 인도받는 길은 그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기에, 노력하고 노력하는데도 무척 어려워 보일 정도다. 그러나 열혈강호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사실을 밝힌다.

한 번의 각성으로는 "본질에 대한 존재성"을 인지할 뿐이다.

하지만 "진각성"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곧

각성 중의 각성
깨달음 중의 깨달음

을 얻음이 필요한데, 그 이유는 "본질 그 자체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혹 귀한 간증이 있는 삶을 살았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 "모든 천국의 비밀을 아는 자"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쉽게 말해서 "한 번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가진 자를 대할 때, 마치 천국의 모든 비밀을 아는 자처럼 대한다는 뜻이다. 무척 위험한 일이요 무지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매사에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야 할지라. 열혈강호와 같은 만화 속에서도, 일반 사회 속에서도 말하고 있는 상식이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예로써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해서 모두가 같은 의원이 되는 건 아니다. 그 안에는 국회의원 중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자가 있다. 그런 자는 다음 선거 때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각성 중의 각성"이요 "간증 중의 간증"을 경험하게 되면,

이제껏 보지도 못했던
숨겨져 있던 지혜
를 경험한다. 본질 그 자체를 직접 만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되면 삶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각성 또는 "각성 중의 각성"(진각성)을 하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올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철학적 사고 또는 물리학적 사고 방식은 우리들을 진리로 인도하는데 무척이나 소중하다.


어린 아이 시절에 즐겨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드래곤 볼"이다.

A와 B가 싸움을 벌인다. A가 B의 적수가 되지 못할 만큼 형편없이 두들겨 맞는다. 이때 A는 B를 넘어설 수 있을거라는 당초의 자신감이 무너지는 극도의 난관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이제껏 자신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던 마음, 곧 자신의 세계에 대해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목마름; thirsty)이 생겨난다.

내가 아는, 나의 세계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럴 때 그는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된다. 그 순간 어떤 변화가 찾아오는지 드래곤 볼은 손 쉽게 설명한다.

감당할 수 없던 존재(고난)가

각성(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형편없는 존재(고난)

인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토록 얻어 맞았던 지난 날에 대해 "복수"심은 들지 않는다.
상대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때

복수심이 나타나기 때문
이다. 각성한 상황에서는 상대가 너무 형편없어 보인다. 그리고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상대로 전락해 버렸음을 실제 경험한다. 그래서 예슈아께서도 장차 올 고난(환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강권하셨다.

요한복음 16:33. 개역개정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슈아께선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사실 표면상으로는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한 자"의 모습이다. 이 때문에 세인들은 "실패한 예슈아"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세인들과 같은 "시각"(이해의 방향)을 따라선 안 된다.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무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력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세상을 향해,
양심을 지켜 행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주는 것.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 두려워 하는 이는 이처럼 행할 수 없다.
  • 두려워 하지 않는 자 만이 할 수 있다.
  • 각성하는 자 앞에선 그 두려움이 사라진다.

하지만 Enemy(대적)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두려움은 실체가 아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고로 두려움이라는 것은 "(육신적인) 실체가 없음"을 알 수 있기에, 영적 싸움이 일어나는 순간이 온다면 결코 눈에 보이는 상대를 의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를 두렵게 하는 그것은 눈에 보이는 상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영의 상대이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열혈강호는 단순히 재미만 안겨주지 않았다. 그 안에는 많은 천국의 비밀들이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즐거움이 함께 하시길 바라며 축복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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