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교육 방송을 듣고 공부하는 학생과 인터넷 설교를 듣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공부하기에 무척 바쁘다.

다녀야 할 학원도 많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교육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가정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거나 교육비 지출이 많은 가정의 경우, 매우 유익한 정부 활동이라 할 것이다.

홈스쿨을 하려는 몇 몇 가정이 있다.

아이들이 모이다 보니 제법 숫자가 된다.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어울려서 하는 공부가 더 유익하겠다는 취지에서 이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공부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강의를 할 수 있는 전담 선생님 확보가 어렵다 보니, 인터넷 교육 방송을 시청하는 것으로 대신하자고 결정하였다. 그리고 부모들은 경제활동과 가사활동을 위해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 갔다. 아이들의 학습에 있어서 "인터넷 교육방송"을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할 수 있겠는지, 의문을 품지 않은 체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일진 몰라도, 다음의 사례를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인터넷 방송을 활용한 학습법에 대해서 자신만의 의견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교회(공동체)에는 많은 성도들이 모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설교를 담당하는 목회자가 계신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일 수 있겠는가? 어떤 경우는 사소한 불화가 점점 커지다 보니, 급기야 교회(공동체)를 떠나는 가정(의 성도)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가정(의 성도)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생각하면서, 온라인 설교를 듣는 것으로써 공동체 안에서 빚어질 수 있는 관계의 어려움을 회피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 때부터 인터넷 설교를 듣고, 그것으로 신앙의 바탕을 삼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런 분들에게 어떻게 권면하나요?


"상처가 치유받으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상처가 치유 되고서, 다시금 교회(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한다.

상처가 치유된 자의 모습.

영적으로 더 유익함을 갖는 모습을 제시하는 것으로써

  • 설교자의 설교를 실제로 듣는 자리요
  • 설교자를 직접 만나는 자리에서
  • 신앙의 기본된 삶을 시작하라

고 권면한다.

설교를 듣고서 깨달음을 얻는 이러한 교육(딤후3:16)은

이렇듯 강연자(설교자; 선생)의 모습을 서로 맞대어 볼 수 있는 상황이 우리에겐 너무나 유익하다는 것을 무의식중에도 잘 알고 있다.

  • <악한 자에게는 편지를 쓴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요삼1:9~10a)


  • <사랑하는 자에게는 직접 만나려 한다.>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요삼1:12-14)


자!
그럼 다시 질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습을 하는 올바른 방법을 선택한다면

  1. 인터넷 교육 방송으로 공부하는 것과
  2. 교사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그의 음성을 직접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학생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필요에 따라 "일시적"인 순간에는 인터넷 방송이 필요할 수 있다. 공감하고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학습과정을 이야기하는 측면에서 우리는 생각해 보길 원한다.

이러한 질문에 각자 답을 하셨기를 바란다.

그럼 마지막 상황을 소개하고 질문을 하는 것으로 끝 마치려 한다.


모든 성도분들은
예슈아의 음성을 듣고, 그가 우리를 인도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이러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굳이 상세한 부연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잘 알것이다.

그럼 질문이다.
지금의 질문은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지켜 나가야 하는 삶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보시길 권한다.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서 예슈아의 음성을 듣는 것이 유익할까?

아니면
우리가 직접 예슈아의 음성을 듣는 것이 유익할까?


중매장이의 소개에 이끌려 맞선 자리에 나온 두 남녀 이야기다. 

중매장이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두 남녀는 서로간의 사랑을 더욱 키워나가게 되었다. 이때 남녀의 관계가 더욱 발전하여 결혼에 이를 수 있게 되기 위해선 어떤 모습이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 여전히 중매장이를 중앙에 세워 놓고서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중매장이에게 전하고, 중매장이가 그 마음을 여자에게 건네는 식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합당할까?
  • 아니면 중매장이에게 "당신의 도움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고 말하고서, 그 순간부터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직접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합당할까? 


공부하는 학습 과정이나,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생활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고자 할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취하여야 하는지 고민하여야만 할 것이다.
그때 오늘의 나눔이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모든 여러분들이 직접 예슈아의 음성을 듣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시길 바라며 축복합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의 심리………를 정확히 지적한 댓글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는 키질과 휴거는 예루살렘 성전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던 의외의 장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