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한 자는 상금을 받고 진실을 말한 자는 벌을 받다? 무엇이 잘못일까?

거짓말 한 자는 상금을 받고 진실을 말한 자는 벌을 받다? 무엇이 잘못일까?


이솝 우화의 이야기 중 한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정글북의 한 장면

거짓말을 하는 이와 사실만을 이야기 하는 두 사람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들이 원숭이의 나라를 지나쳐 갈 무렵 이 사실을 알게 된 원숭이 왕은 이 두 사람을 초청하게 된다. 그리고는 두 여행자에게 자신과 자기 신하에 대해 평가해 주길 부탁한다.

그러자 거짓말쟁이는
"전하, 전하께서는 가장 훌륭하며 위대한 왕이십니다. 이 사실을 만천하가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신하들에 대해 말하기를
"어느 면모로 보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은 기뻐하면서, 거짓말쟁이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거짓말하는 자가 거짓말을 하고도 큰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사실을 이야기하면 더 큰 선물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전하는 멋진 원숭이고, 신하들도 역시 멋진 원숭이입니다."

이 말을 들은 원숭이 왕은 몹시 화를 내며, 그를 당장 끌고 가서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사실을 말한 자는 왜 처형을 당해야만 했을까?

자신이 해야 될 말과 그 말이 담아야 할 범위를 인지할 수 있다는 자체는 매우 큰 복이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약3:3)

설령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fact; true)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함구해야 한다. 그와 같은 경험 또한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 해 준다고 할 것이다.

자신의 출생이나 지금의 바뀔 수 없는 상황을 듣고자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능히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자는 없다는 뜻이다. 그것도 극빈의 대접을 받고 있는 자리에선 더더구나.
죄에 대한 지적은 우리 삶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죄는 지적하는게 아니다. 우리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 보게 하는 것이다. 
 
마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확인하게 하는 것처럼. 혹은 예슈아를 봄으로써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게 하는 것처럼. 죄는 지적당하면 오히려 분을 내며 싸우려 한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보게 되면 부끄러워하며 자신의 삶을 돌이키려 한다.




최고의 대접 베풀기를 아까워 하지 이가 듣고자 하는 이야기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 

이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그게 사실일지라도, 평범한 이야기는 나눌 필요가 없다. 누구도 볼 수 없었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그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그런 사실"(unique things)만을 이야기 해 주면 된다.


이는 신앙을 갖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다.

상대의 잘못에 대해 질책하거나 평가하는 일은 "세상의 누구나"할 수 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부여받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pixabay

창조주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부여받은 것은 "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줌의 작은 새싹"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것이다. 그래서 그 땅은 하찮은 잿더미가 아닌, 한 줌의 새싹이 새롭게 시작되는 희망의 땅이라는 매우 상반된 기대를 품게 하기 위해 "성령의 은사"가 필요한 것이라 강조하고 싶다.


그러니 믿음을 갖는 우리네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이 세상의 모습에 좌절하고 낙심함이 옳을까요?


우리는 세상의 악한 행동, 소망이 소멸되어 버린 그 모습에 시각을 맞추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속에 숨겨져서 작게 피어나는 "한 줌의 생명력"을 바라볼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주변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는 소망이 생겨나고, 기쁨이 쏟아나며 오늘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들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장차 오실 예슈아(the messiah)를 닮은
그리스도인(a messiah)의 모습

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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