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지도자 그리고 왕 노릇 하는 자

 영적 지도자 그리고 왕 노릇 하는 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모두가 복종하여 따르도록 했다.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는 이들은 가차없이 그 생명을 빼앗고,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이들 만을 자신의 백성이라 삼았다.




우리는 그를 가리켜 왕이라 말한다.

왕은 백성들 머리 위에 군림하는 자로서 왕이 옳다고 여기는 길로 백성들도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길 강요한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은 왕의 길로 걷는 인생을 살게 되는데, 그 왕이 사람이라는 이유에서 그 길은 사람의 길이다.

하지만 수 천년의 역사 동안 영원히 지속되는 사람의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영생을 꿈꾸던 왕들도 많았지만, 그들이 죽음과 동시에 왕의 길이라 불리던 사람의 길은 또다른 왕에 의해 바뀌고 말았다.


이렇듯 왕의 길이 매번 바꾸는 반복된 모습을 통해 우리는 사람의 길에서는 영원한 것을 볼 수 없다는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한편 또다른 사람이 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을 보필하는 자로 살아간다. 보필하는 그의 모습이 흡사 노예와 같다해서, 그런 보필을 우리는 '헌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뽑아 놓은 사람인데, 자신의 백성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스스럼 없이 그들의 노예처럼 백성들을 섬겼다. 물론 그릇된 길로 걷는 자에 대해서는 재판장의 모습처럼 단호한 모습으로 다가갔지만, 열심을 내어 올바르게 살아보려는 이들 앞에서는 그저 보잘것 없는 노예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지도자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어떤 길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다만 백성들 스스로가 보고 느끼며 들을 수 있는 올바름의 소리, 곧 양심의 소리에 이끌리어 살아갈 수 있기만을 바라면서 자신은 그의 백성들을 섬기는 일에만 헌신했다.

영적 지도자의 덕목이 care인 이유는 환자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이 지도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간호하는 이는 환자를 자신의 종(노예; slave)으로 삼지 않듯이, 영적 지도자 역시 성도를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허다한 지도자들이 세워졌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했지만, 그 백성들 사이에서는 영원히 함께하는 길(삶)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길이 아니라 양심이 들려주는 길이었으니, 영생의 길이었다. 그러자 그 나라에는 장구한 시간이 흘러도 늘 영생의 길 그 한 길만이 있을 뿐, 사람의 길을 걷는 이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백성들은 자신의 지도자들을 가리켜 말하길 '영적 지도자'라고 말하게 되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허다한 완장들이 등장하고, 그러한 완장들은 많은 성도들에게 부여되곤 한다. 완장을 찬 성도를 가리켜 영적 지도자 또는 영적 리더(그룹)이라 말하곤 한다. 



그런데 영적 지도자 또는 영적 리더(그룹)은 앞서 이야기 했던 왕과 지도자의 경우, 어떤 부분에 더 가깝게 느껴질까? 솔직히 말하자면 지도자라는 설명이 그들의 수식어가 되어야 함이 옳다. 실제 모습에서도 그렇게 느껴지는가?


오늘 딸 아이를 훈계한 일이 있었다.

동생과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하더니, 둘 사이에서 작은 논쟁이 일어났다. 동생은 '누나가 자기가 인도할 테니 너는 하라는 데로 따라 해'라고 했다면서, 자기도 인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편 딸 아이는 '저는 제가 먼저 하고 나중에 동생에게 인도해도 된다고 말했다'면서 자신의 정당함을 변론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영적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해 주었다. 


"영적 지도자는 왕을 의미하는 게 아니란다.
" '내가 계획했고 그 사실을 알려 주었으니, 너는 무조건 따르기만 하면 돼'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왕의 모습이야
"동생이 즐겁게 찬양하고 기쁨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도록, 동생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일에 헌신하는 자를 지도자라고 한단다.
"너희가 영적 지도자에 대해 무언가 잘못 오해하고 있었구나"


내 자녀 앞에서 나는 왕일까? 아니면 영적 지도자일까?


교회(공동체)에서 직분을 부여받은 나는 다른 성도분들에게 왕의 모습으로 다가갔을까? 아니면 지도자의 모습으로 다가갔을까? 목회를 하시는 분들은 성도 앞에서 왕의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아니면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자신의 계획과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을 보고 분노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향해 화를 내지는 않았는지.


내 자녀이지만 우리는 야훼 하나님의 자녀를 맡게 된 청지기가 부모라고 말한다. 그럼 청지기는 자신의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할까? 아니면 야훼 하나님의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할까?


자녀들이 야훼 하나님의 옳고 그름을 배울 수 있도록, 자녀들이 스스로 그렇게 하고 싶어지도록 그 일만을 위한 섬김에 열심을 내는 게 바로 부모된 우리들의 역할이지 않을까 한다. 그럴 때 부모인 우리는 자녀들 앞에서 진정한 영적 지도자라 인정받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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