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책임
재미와 책임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
그의 노래는 멈출 줄 모른다. 하염없이 흘러 나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의 노랫소리는 멈추었지만 흥에 취했는지 연신 가벼운 콧노래를 부르며 그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린다.
그의 노래가 듣기 좋았던 한 신사는 그를 찾아가 전문 가수로서의 제안을 한다. 노래를 부르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던 그는 흥쾌히 승락하고, 그는 가수를 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쉼없는 스케쥴 속에서 그의 노래도 쉼을 얻지 못한 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잠이 부족한 그는 늘 행사장과 행사장을 옮겨가는 차량 속에서 쪽잠을 잤다. 그런지도 벌써 3년 째. 노래를 불러야 하는 행사장을 벗어나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한다.
불러야만 하는 상황이기에 노래를 부르기 보다는
부르고 싶을 때 노래를 부르고 싶을 뿐
이다. 누구보다 노래를 좋아하던 그가 어떻게 이런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을까?
누구든 재미만을 위해 일을 할 때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보람을 더욱 크게 느낄 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책임이 전가되면, 상황은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린다.
이전에는 자신이 일의 시작과 끝맺음을 결정할 수 있다. 그는 자유가 있었다.
지금은 누군가에 의해 시작과 끝맺음이 결정된다. 그는 자유을 잃어버렸다.
시골쥐와 서울쥐의 이야기처럼,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었지만 자유를 빼앗겨 버린 이 순간만큼은 철저히 노예의 삶이었다.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노예가 멋진 옷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 차며, 최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인의 한 마디면 옷과 장신구를 벗어야 하고 자동차에서 내려야 하는데.
이제는 노래를 부르더라도 흥이 나지 않는다.
목이 말라 온 몸이 불꽃에 타들어 갈것 같은 갈증을 느끼면서도 노래만은 멈추고 싶지 않았던 그런 날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책임이 그의 어깨에 짐으로 올려진 이후로 시작된 이야기다.
그런데 그에게 뜻밖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에게 있어서 그 모든 이야기는 슬픔이요 비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고 싶지는 않다고 여겼다. 지금까지의 이야기 흐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의 무게를 넘어 서서 예전의 그 생기 발랄했던 그 모습을 되찾고 싶어졌다.
그런 그가 선택한 것은 단 하나.
'주어진 책임보다 더 많은 것을 베풀어 주는 것'이다.
계약상 1시간을 원하면, 그는 힘을 다해 2시간을 노래했다.
2곡의 노래를 원한다면 그는 4곡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목이 아파왔지만, 그는 그 고통을 참아내면서 책임보다 더 많은 것을 해 주었다.
계약된 시간을 채워야 하는 순간에는 책임감으로 버텼지만, 그 이후에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재미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더 많은 것을 베푸는 일이 점점 쉬워져만 갔다. 급기야 예전에 누렸던 그 기쁨과 즐거움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그는 알게 되었다.
재미만 있을 때에는 나 혼자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책임이 생기면서 그는 직업을 갖게 되었기에 다른 누군가에게도 자신의 기쁨을 나눠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책임이라는 무게에 눌리게 되자, 세상 모든 것이 싫었고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럴 때 책임의 무게를 뛰어넘는 즐거움을 되찾게 되면서 그는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고, 다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자가 되었다.
그는 그렇게 변하였다.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가볍게 느낄 수 있는 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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