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왜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등장시켰을까? 그가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No!!!
빌립이 성령에 이끌리어 나간 광야로 내려간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행8:26)
※ 흠정역에서는 '가사'지역이 '가자'지역으로, 그리고 '광야'가 '사막'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난다.
Bible Encyclopedia |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행8:27~28a)
흠정역에서의 표현을 빌어오면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밑에서 그녀의 모든 국고를 맡아 큰 권세를 가진 내시'라고 소개하고 있다. 즉 단순한 고급관리로서 대략 재무장관 즈음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운 더 고위직 관리임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국고를 맡을 수 있도록 여왕에게서 큰 권세를 부여받은 내시'라는 내용 중에서 '크다'는 성경 속 표현은 덩치가 크다거나 화려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울러 '크다'는 것은 'best'를 의미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best of best'를 뜻한다. 그래서 '큰 권세를 가진 내시'는 곧 '신하'를 의미하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성경 속 표현으로 바꾼다면 '신하들 중에서 신하 된 자'다.
이는 파라오 왕에게서 '애굽의 모든 국고를 맡을 수 있는 신하'로 임명된 요셉과 같은 자 인것을 짐작하게 한다. 즉
너는 내 집을 다스릴지니라. 내 모든 백성이 네 말에 따라 치리를 받으리니 나는 왕좌에서만 너보다 높으리라, 하니라.(창41:40.흠정역)
의 내용처럼 '왕조차도 왕좌에서만 높을 뿐, 실무를 담당하는 부분에서는 가장 높은 자(신하)'란 뜻이다.그 위력이 참으로 막강한 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가 자신의 땅을 떠나서 예루살렘까지 예배를 드리러 왔다고 한다. 혹 자신의 여왕 몰래 그가 나올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다.
요셉과 파라오의 이야기를 보자.
그때에 요셉이 자기 옆에 서 있던 자들 앞에서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를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게 하고 자기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렸는데 그때에 그와 함께 서 있던 자가 아무도 없었더라. 요셉이 크게 우니 이집트 사람들과 파라오의 집이 듣더라.(창45:1~2.흠정역)
요셉의 울음 소리 조차도 파라오는 관심을 가지고 들었다. 소위 왕이라는 작자가 쪼잔하게 시리 담장 너머에서 들려 온 소리에 일일이 참견하고 있다고 여기진 않으리라 믿는다. 요셉의 일거수 일투족은 파라오의 집중된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실무적 권한을 부여했다고 하지만, 파라오는 항상 요셉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보고 있다. 실무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해외 여행을 다니는 그런 안일한 왕이 아니란 의미다.
마찬가지다. 에디오피아의 여왕이 자신의 내시에게 큰 권한(권세)를 일임했지만, 그녀 또한 자신의 내시를 매사에 관심있게 지켜본다. 그래서 내시가 어떤 행진을 하면, '그가 어디를 가려고 하는지 즉시 알아보라'는 전갈을 보낼 정도다. 그런데 내시가 자신의 여왕 몰래 다른 신을 섬길 수 있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자신의 여왕이 섬기는 신, 곧 야훼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내시의 여정은 국가의 수장인 여왕의 뜻에 의해 예루살렘에 예배를 드리는 공무 수행중이었다.
그런데 왜 여왕이 직접 (예루살렘을) 방문하지 않고,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공무 수행자로 보냈을까? 예배를 드리는 일은 본인이 직접 와야 하는 것이지 않는가? 그런데 자신이 오지 않고 타인을 보냈다?
네 모든 남자는 한 해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에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에서 그분 앞에 보이되(신16:16a.흠정역)
야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으로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상황이다. 거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not woman)에게만 해당된 명령이다. 다시 말하면 여자가 올라가선 안 된다는 뜻이다.
에디오피아의 여왕이 "절기"를 지켜 행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은 있었으리라. 하지만 자신은 여자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올라갈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신뢰하고 자신이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인물을 보냈는데, 그 인물은 "모든 국고를 담당하는 실무자"다.
왜 '국고를 담당하는 자'라는 표현이 내시를 수식하고 있을까?
신명기 16장(흠정역)
16. 네 모든 남자는 한 해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에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에서 그분 앞에 보이되 주 앞에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17. 각 사람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복에 따라 자기의 힘닿는 대로 드릴지니라.
곧 예배를 드릴 때 빈손으로 오면 안 되는데, 그럼 어느 정도의 재물을 준비해야 하느냐면 '야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수준에 맞게 힘닿는 대로 준비'하면 된다고 율법(Torah)되어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에디오피아의 여왕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자신의 모든 국고가 어떤 상황인지 가장 잘 아는 최고의 실무자를 택하였을 것이고, 그에게 '가장 합당한 재물'을 준비하게 하라고 말하는게 상식이다. 그래서 여왕의 명령에 따라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 예배를 드렸다.
여왕이 믿는 신(하나님)을 신뢰하고 싶은 내시.
그는 여왕이 열심을 내어 묵상하고 지켜 행하는 그 율법(Torah)를 자신도 읽게 되었으리라.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의도에서 작성된 것인지를 알지 못하면, 그 이후에 행해지는 어떠한 행위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이사야의 글이 그의 뇌리에 맴돌았으리라.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행8:30~31a)
선생이 없기에 깨닫지 못한다. 곧 그에겐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선생이신 성령님이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중략)...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
그런데 성령이 (빌립을 데리고) 오셨다. 그를 가르쳐서 깨달음을 얻어 그대로 주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지만 궁금증은 여기서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왜 에디오피아 내시가 갑자기 등장하게 되었을까?
그를 등장시킨 성경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솔로몬의 시대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옛 과거의 역사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겠다는 뜻이다.
la.wikipedia.org |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왔다.
세바(스바)의 여왕이 주의 이름에 관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들로 그를 시험하려고...(중략)...예루살렘에 이르렀더라.(왕상10:1~2a.흠정역)
스바 여왕이 시험했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대략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왕에게 이르되, 내가 내 땅에서 당신의 행적과 당신의 지혜에 관하여 들은 소문이 참되도다.(왕상10:6.흠정역)
그녀가 자신의 나라에서 누군가로부터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에 관한 소식'을 들려주었다고 증언한다. 과연 누가 여왕에게 이웃나라의 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스바, 곧 에디오피아의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황에서는 이 부분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에디오피아의 이중적인 모습을 알게 된다면, 솔로몬 왕의 행적이 스바의 여왕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을 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때의 구스가 에디오피아를 뜻한다. 그 의미는 (피부가) "검다"는 뜻이다. 그래서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의 내용을 보면, 구스는 표범으로 비교된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구스의 사람들이 악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 구스인도 불가능해.
- 표범도 불가능해.
- 악행도 불가능해.
본시 에디오피아(구스)사람들은 호전적이고 강한 민족이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을 몹시도 괴롭히던 이교도들이었다. 르호보암의 손자요 유다의 6대 왕이었던 아사는 야훼께서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제단과 우상 등을 없애고 유다 사람들이 그들 조상의 하나님이신 야훼를 찾게 하였\으며 그의 율법을 지켜 행하게 하였다. 그가 왕으로 있을 때, 구스의 세라가 아사를 치기 위해 군산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로 침공한다.
이때 아사는 '마므레의 스바다 골짜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한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14:11)
그렇게 기도를 드리자, 야훼께서 움직이신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으니(대하14:12~13a)
구스 사람들아 너희도 내 칼에 죽임을 당하리라(스바댜2:12)
이스라엘과 구스 사이가 얼마나 나쁜지 대충 짐작은 했으리라.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셨던 이승만 대통령께서 그의 재임기간에 일본 여자와 결혼을 했다고 하자.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아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한결같이 '결혼 반대'를 외쳤으리라. 이와 마찬가지다. 미리암과 아론이 괜시리 시집살이 시키고 싶어서 '모세와 구스여인 간의 결혼'을 반대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어찌보면 지나칠 정도로 자신들을 괴롭혔던 족속이다. 그 중에 일부가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동행하겠다고 자청해서 이스라엘 무리와 함께 거하는 상황일지라도, 그래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그 땅의 출신과 결혼을 한다? 이건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그런데 모세는 야훼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구스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자 솔로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구스(에디오피아)에서도 이스라엘에 관하여는 몹시도 싫어할 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언제라도 멸망시키고 싶은 그런 나라다. 그런데 그 나라의 왕이 정치를 잘한다는 둥, 똑똑하다는 둥의 이야기가 에디오피아의 여왕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소문을 퍼트린 자를 찾아서 큰 벌을 내리는게 마땅할진데, 그녀는 의외로 소문의 진위여부에 대해 미심쩍었지만, 점점 커가는 호기심을 없앨 순 없었다.
그녀는 솔로몬이라는 적대 국가의 수장을 만날 것이라는 담대한 믿음을 가졌다. 이 또한 의외다. 이스라엘이 구스의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었을까? 이는 고위 관료들 선에서 사전에 협의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만남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간의 만남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회담이었던가? 수장들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의 숱한 협의와 사전 조율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는 솔로몬과 스바의 여왕에게서도 동일하다.
이를 위해 스바의 여왕은 사전에 누군가를 이스라엘에 보내어 자신과의 만남을 주선했을 것이라 추론할 수 있는데, 그가 바로 여왕으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최측근 관료였으리라. 그 관료가 솔로몬에 대해 불평불만을 쏟아냈다면, 스바의 여왕 또한 만남을 원치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관료가 솔로몬을 무척이나 매력적인 인물로 소개했다면, 스바의 여왕은 만남을 적극적으로 원했을 것이다. 그 결과 적국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만남을 원했고, 그녀는 스스로 사자의 굴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담대함을 보일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는 평소에 '실제 만날 경우'를 대비하여 준비했던 모든 궁금증을 솔로몬에서 허심탄회하게 묻는다.
그녀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속에 있던 것에 대하여 그와 대화하매 솔로몬이 그녀의 모든 질문에 대해 그녀에게 말하였으니 왕에게 숨겨져서 그가 그녀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왕상10:2b~3.흠정역)
곧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것처럼, 그녀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모든 궁금함을 명확히 알려주었다. 그 결과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줄 수 있는 답변을 그녀는 한다.
왕상 10장(흠정역)
6. 왕에게 이르되, 내가 내 땅에서 당신의 행적과 당신의 지혜에 관하여 들은 소문이 참되도다.
7. 그러나 내가 와서 내 눈으로 그것을 볼 때까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그들이 절반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당신의 지혜와 번영이 내가 들은 명성을 능가하는도다.
8. 당신의 사람들은 행복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은 행복하도다. 그들이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듣는도다.
9. {주} 당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분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좌에 당신을 앉히시고 {주}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으므로 당신을 왕으로 삼아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이는 사도 바울의 말과도 동일한 맥락을 유지한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13:9~10)
그녀가 소문으로 들었을 당시에는 부분적이었는데, 솔로몬을 직접 만나고 나니 (소문으로 듣던 모든 내용들은 쓸모 없어지고) 더욱 명확한 온전한 왕의 진실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결과 적대국이었던 에디오피아(구스)가 야훼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야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 그리고
솔로몬 왕이 왕의 하사품 중에서 세바의 여왕에게 준 것 외에 또 그녀의 소원대로 그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녀에게 주니 이에 그녀가 돌이켜서 자기 신하들과 함께 자기 나라로 갔더라.(왕상10:13.흠정역)
그녀가 솔로몬에게 요구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자는 아이를 갖게 했다는 말이 있고 다른 혹자는 그 아이를 통해 야훼 하나님의 법궤를 에디오피아에 보냈다고도 말한다. 필자는 그런 내용들을 부인하지도 수긍하지도 않는 입장이지만, 단 한 가지 사실은 짐작할 수 있겠다.
야훼 하나님을 아는 마음과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있도록 돕는 선생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도는데, 훗날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를 가진 내시'가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고자 올라가는 공식적인 업무를 마땅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행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가 광야에서 받은 깨달음은 다시금 자신의 여왕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 증언(전하는 소문)을 들은 여왕은 다시금 '메시아에 대한 간절함'을 갖게 될 것이고, 장차 다가올 날에 그녀는 스스로 메시아 앞에 나아오는 담대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가 무척이나 길어졌다. 하지만 좀더 정리가 되거나 혹은 더욱 깊은 묵상이 이루어진다면, 에디오피아와 이스라엘 간의 연관성을 또다시 나눌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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