뗄래야 뗄 수 없는 인간과 미생물간의 공생관계. 이것을 지키는 자가 모든 질병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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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과 인간과의 공생관계는 단순히 관계형성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공생관계는 반드시 "계약"에 의해서 체결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공생관계를 다 열거할 순 없겠으나, 한 가지 쉬운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남자와 여자간의 결혼은 가정이라는 경계(영역) 안에서 펼쳐지는 공생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체결해야 하는 계약식이다. 계약식에는 하객들이 초청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을 증인으로 삼아야 하기에 초청된다.

이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헌신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어떤 경우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주는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사마귀의 교미를 예로 들 수 있다. 사마귀들은 교미하는 동안에 암컷이 수컷의 머리를 먹어 버린다. 그리고 수컷은 죽음을 맞이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생명을 번식시키기 위해 짝을 찾고, 그 상대에게 자신의 후손을 갖도록 계약을 맺는 일에 수컷은 자신의 목숨을 조건으로 삼는다.

인간과 체내에 존재하는 약 2000여 종 이상의 미생물들 간에는 어떤 계약관계가 있을지 이런 가운데 궁금증이 더 할 수 있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거울을 통해서 반사되는 이미지를 통해서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요 창조의 질서다. 우리 인체 내의 신비를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 이유는 앞선 내용처럼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또는 다른 곳에서 투영되는 이미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나눔은 이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추론하고자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나츠메 우인장"이라는 인간과 요괴들의 이야기가 있다.

한 요괴는 인간과 계약을 맺어서 마치 친구처럼 지내는 가운데 악한 적들이 인간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면역의 개념처럼) 경호하는 것으로 계약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계약관계는 인간이 죽는 순간까지 유효하다. 그리고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서 요괴는 인간이 소유한 어떤 특이한 능력을 물려받기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계약의 조건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들이다. 주술적인 내용을 추상적인 요약 형식으로만 알려주는 일련의 이야기들에 비해,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은 그 안에 담긴 상세한 내용들까지도 잘 담아내는데 그러한 부분들이 계약이라는 관계가 어떤 것인지 더욱 명확하게 알려준다.

필자는 나츠메 우인장을 보는 중에 인간과 체내의 미생물에 관한 계약관계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어떤 분들에게는 너무 추상적이면서 소설처럼 여겨지는 내용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저 소설로만 읽어봐 주시길 당부드린다.





정상적인 공생관계는 일(고난)을 주는 자와 받는 자로서 나뉜다.

일을 주는 자는 '재벌'로서 그리고 일을 받는 자는 '노동자'로 여길 수 있다.
재벌은 일감이 풍성하다. 노동력을 지닌 이를 노동자라 하고, 노동자는 재벌이 바라는 바를 이루어주겠다는 의미에서 재벌과 계약관계를 체결한다. 그래서 재벌은 노동자에게 합당한 일감을 주고 노동자는 그 일을 열심을 다해 행한다. 그 결과 재벌이 원하는 결과를 재벌에게 안겨 줄 수 있고, 그 재벌은 합당한 댓가를 노동자에게 지불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재벌과 노동자의 계약관계이면서 공생관계다.

그런데 재벌이 노동자에게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런 저런 이유로 척박한 급여를 지불한다. 이럴 경우 재벌은 노동자가 받아야 할 몫을 착복한 것이 되기 때문에 부당한 행위를 행한 것이 되고, 자신이 받아야 할 몫을 제대로 받지 못한 노동자는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면서 점점 노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노동자의 노동력 상실은 재벌의 이익에서도 지대한 차질을 빗게 된다. 결국 노동자가 사라지면 재벌 자체도 생존할 수 없게 되니, 재벌이 잘 살고자 한다면 노동자를 극진히 대우해 줘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려면 안정된 일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일거리는 재벌에게서 나온다. 따라서 노동자가 잘 살고 싶다면 재벌을 극진히 대우해 줘야 한다. 고로 서로간에 존중하며 최선을 다해 상호간 인격적으로 대할 때 그 사회는 (이념을 뛰어넘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이는 성경(마7:12)이 보증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와 같이 행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대언자들이니라.
(마7:12.흠정역)




한편 노동자에게 일을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일하는게 힘들다 보니 제대로 쉬지 못한 이들로서는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느껴질 것이다. 백수를 생각해 보자. 매일같이 논다. 누가 일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오늘도 놀고 내일도 놀고 앞으로 쭉 놀아야 한다. 그런 그에게 어떤 기대감이 있을까? 그의 삶에 기쁨이 있을까? 아니면 무료함이 가득할까? 정신과 치료를 15년 이상 받아오신 분이 있다. 그는 그 치료를 받는 기간 내내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계속 놀았다. 

그의 입에서 흔하게 나오는 말이 있다. 

"하루 하루가 재미없어요"
매일같이 노는데 왜 재미가 없을까? 백수의 시절을 자신의 계획보다 길게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충분히 공감될 부분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못하는 시기는 그를 몹시 괴롭게 한다. 이는 생명을 가진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래서 멀쩡한 사람도 백수가 되면 멀쩡했던 모습이 사라진다.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삶의 변화는 '낮에 잠을 자고, 밤에 활동'하는 자로 바뀐다. 정상적인 사회관계를 외면하게 되고 자꾸만 어두운 구석으로 자신을 내몰아 간다. 이처럼 삶의 변화는 생각하는 인지능력에서도 변화를 가져온다. 부모의 생각에서는 합당하지 않는 일도, 변해버린 자녀의 생각에는 능히 합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일이 없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간과 체내 미생물(특히 장내 미생물)의 관계도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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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장내의 미생물은 공생관계(1)를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둘 중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다른 한쪽도 없어진다. 재벌과 노동자처럼.



인간은 미생물에게 일거리로 식이섬유를 분해하도록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포도당을 공급한다. 미생물은 분해자다. 포도당을 얻기 위해 이들은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은 위에서 분해되지 않고 장내로 유입된 식이섬유질을 분해하는 것이다. 유기산(예로 위액인 염산)에서도 녹지 않던 식이섬유질을 미생물들은 뜯어 먹듯이 섭취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을 단순히 배설한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해 식이섬유질은 분해되어 미네랄로 쪼개진다. 배설물 형태로 방출되는 미네랄들은 장내의 수분에 녹아서 이온화되고, 이렇게 이온화 된 미네랄들은 장내에서 흡수된다. 장내에서 흡수된 미네랄들은 매우 극소량의 미네랄들로서 그 종류는 가공식품이나 위의 소화작용에서 얻을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종류들과 현저하게 다르다. 즉 정밀한 측정 장비로도 측량이 불가능한 정도의 극소량으로서 영양제나 음식류에서 거의 얻을 수 없는 매우 희귀한 종류의 미네랄들이다. 그리고 그 양이 조금만 지나치게 많아져도 영양성분이라기 보다는 독약으로 취급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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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독성학의 주요개념인 용량-반응 관계로 알려져 있다. “모든 물질은 독이다 : 독이 없는것은 없다. 올바른 양이 독과 약을 결정한다.” 라는 파라셀수스의 문구가 종종 인용되고 있다.    (출처) 국립독성연구원 "알기 쉬운 독성학의 이해" (2007년) 중에서


이처럼 정밀한 첨단 측정장비로도 그 양을 조절하기 어려운 희귀한 미네랄(무기영양성분)들은 사람이 조절할 수 없다. 자칫 올바른 양을 처방하지 못함으로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는 독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은 이러한 난제를 "분해자 미생물"에게 넘겨 줌으로써 해결하게끔 하셨다. 그런 연유로 미생물이 분해할 수 있는 희귀한 미네랄들은 농도가 매우 옅은 것으로, 누구나 건강을 위해 섭취할 수 있는 농도가 된다. 그렇게 섭취할 수 있는 다양하면서도 충분히 옅은 농도의 희귀한 미네랄들은 인체의 건강은 물론이고 정신건강에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연구진은 아무런 미생물과 접촉하지 않은 "무균(germ-free)" 쥐가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정상적인 쥐보다 두 배가량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했다고 밝혔다...(중략)... 두 쥐는 체내 미생물의 유무를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점이 없었기에, 연구진은 미생물이 스트레스 반응 정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력이 장내 미생물에 의해서 크게 결정될 수 있다. 장내의 미생물이 노력한 그 결과가 인간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익히 느낄 수 있다. 막중한 업무를 담당한 미생물은 인간으로부터 합당한 댓가를 지불받게 되는데, 그것은 포도당이다.

허나 최근 식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장년층보다 주로 청소년층에서 두드러지게 변화가 일어났다. 가정에서 식사하기 보다는 가공식품으로서 패스트푸드나 냉동식품을 주로 
먹는다. 가공식품의 경우 유통 기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방부제 처리는 필수 과정이 되었다. 방부제가 처리된 밀가루와 처리되지 않은 밀가루의 부패과정을 지켜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대기중에 있던 미생물이 어떤 밀가루를 쉽게 분해할 수 있을까? 당연히 방부제가 없는 천연 밀가루다.

장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방부제 처리된 가공류들은 장내 미생물들이 분해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면서 과당이 많이 든 음료나 초콜릿이 섞여있는 음식류를 많이 먹다보니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충분한 포도당을 미생물들이 공급받게 된다. 앞서 설명했던 재벌과 노동자의 내용처럼, 일을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충분한 생활은 장내 미생물의 행동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그 결과 유익균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유해균으로서 장내 환경을 바꿔버릴 수 있다. 장의 환경이 척박해지면 당연히 뇌의 환경도 상당부분 척박해지게 되며 이로써 호르몬의 분비나 신체의 장기들을 담당하는 기능 부분에서 작은 오류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이러한 오류가 장기화 되면 신체의 커다란 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올바른 먹거리를 먹는다는 점은 우리들의 정상적인 사고체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자녀에게 각종 보약이나 영양제 등을 먹이면 건강해질 거라는 안일한 생각보다는, 조금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게 좋은 부모가 아닐까 싶다. 자녀에게 가공류나 패스트푸드 그리고 냉동식품류를 식사로 제공하기 보다는 흙이 묻은 신선한 야채 등을 시장에서 직접 골라 정성을 들여 식탁에 올려 놓는 그런 부모의 노력이 필요할 때라 생각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공생관계의 한 모습이기에, 부모가 이처럼 정성을 다하여 노력할 때 성장한 자녀는 노인이 된 자신의 부모에게 역시 정성을 다하여 효도를 하게 된다. 이것도 성경이 보증하는 삶(마7:12)이다.

제약회사의 조제약을 먹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장내 미생물을 고려할 때에는 심도있게 고려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한시적으로 잠깐 동안 조제약을 먹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에는 유익하다. 하지만 증상의 호전이 없는 가운데 장기간 복용하는 것은 장내 미생물의 건강에 악영향으로 작용한다. 과유불급의 의미를 생각하면 잘 이해될 것이다.

따라서 "밥이 보약이다"는 의미는

인간과 장내 미생물간의 공생관계를 원활하게 일궈나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붙여진 표현이라 생각할 수 있다. 밥을 취급하는 

자에게 취급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밥은 위험물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제조약은 다르다. 매우 높은 수준의 자격이 요구된다. 그 이유는 제조약이 위험물질이기 때문이다.

위험물질을 다루는게 건강한 삶일까? 아니면 중요하지만 위험하지 않는 물질을 다루는게 건강한 삶일까? 스스로 판단해 보시길 강권한다.



* (1) 명대성, 주영은 "대장암에 대한 장내 미생물 무리의 영향과 프로바이오틱스" The Korean Journal of Gastroenterology 2012 Nov; 60(5): 275~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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