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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미국 경제의 하락과 금 시세의 상승, 그리고 새로운 화폐 제도가 도입될 조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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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상의 캡쳐된 내용을 토대로 필자가 부연 설명을 곁들여 본 것이다.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자 하실 때에는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시고, 스스로가 더욱 많은 자료를 찾아보신 다음에 "아~ 이 내용은 믿을 만하구나"라고 여기시면 믿으시 되, 수집했던 자료와 내용이 다르다 싶으시면 "헛된 망상자들의 이야기였구나"라고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영상 원본 보기 ☞ 신세계질서를 불러오는 세계 경제 붕괴와 돈의 비밀 먼저 간단하게 설명해야 할 바가 있다.  돈과 화폐라는 개념은 서로 다른 의미다. 돈은 금과 은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럼 화폐는 금 1g을 (은행과 같은) 누군가에게 맡겼다는 영수증이 화폐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고로 금 1g을 돌려 받게 되면, 그 영수증은 더 이상 어떠한 가치도 갖지 못한 체 그저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로 하자. youtube (이하 모두) 2차례의 세계 대전 당시 유럽에 있던 모든 금을 미국으로 옮겨오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세계의 2/3에 해당하는 막대한 량의 금이 미국으로 유입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금에 비례해서 정확한 화폐를 발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FRB는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보다 12배나 많은 화폐를 발행해 버렸다. (이러한 짓은 의도된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행보는 사실상 사기다. 절대로 금과 발행된 화폐의 비율은 1:1을 유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화폐는 영수증일 뿐이닌까. 사기란 비밀리에 행해지는 것이 기본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그 비밀을 누군가가 알게 된다. "미국은 자신이 보유한 금보다 12배나 많은 "금 보관 영수증"(화폐)을 발행했데요" "그 영수증으로 금을 되찾다 보면, 결국 11배나 이르는 화폐를 가진 사람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 빨리 금을 되찾는 자 만이 살아남

삶의 변화, 곧 질병이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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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에 앞서, 다른 이야기를 잠시 나누길 원한다. 모든 사람은 돈에 관심이 많다. 솔직히 말해서 화폐는 종이조각일 뿐, 실제적인 돈은 금과 은을 의미한다. 그래서 극소수의 부자들은 항상 금과 은의 시세 변화에만 관심을 갖을 뿐, 종이조각인 화폐를 모으는데에는 관심이 없다. 누군가가 키보드를 눌러서 어떤 숫자를  메모장에 기록했 놓았다. 그런데 반대로 누군가가 키보드의 del-key를 눌러서 실수로 그 숫자를 지워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종이화폐의 가치란 이런 것이다. 그렇기에 부자의 관심은 종이화폐를 얼마나 소유하고 있고, 통장의 잔고가 얼마인가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창고에 순도 99.99%의 금괴 또는 은괴가 몇 개나 보관되어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금 시세가 변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다. 그래서 부자들은 놀랄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이러한 변화를 전문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초빙했다. 자신에게 금의 시세가 변화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해 달라고. 아래는 그 설명을 해 주기 위해 섭외된 전문가의 말이다. < 이와 같은 간단한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우리는 대개, 실례로 내 몸에 질병이 생길 경우, 내 삶에 찾아든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다. 교회도 찾아가고, 절에도, 무당이나 점쟁이까지 찾아가기도 한다. 물론 양방/한방 병원과 약국은 필수코스다. 그러나 어느 곳을 찾아가더라도 " 질병이 생기게 된 원인 "을 설명하는 곳은 거의 없거나 혹은 설명을 해준다 할지라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용어들만 잔뜩 늘어놓는다. 위의 전문가는 금의 시세 변화를 위해서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목사님 때문에 믿는 자와 목사님이 전하는 예슈아 때문에 믿는 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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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쉽사리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 분은 높은 사람이야" "그런 분이 거짓말 하겠어?" "그러니 의심할 필요없어." "깊게 생각해 봤자 의미가 없고, 그저 믿기만 하면 되" 옛적 우리 사회는 대부분 이런 풍토 안에서 살았었다. 요즘도 일부 이런 풍토가 남아있다. 최근 "기획 부동산"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M 본부의 "Y 리포트"라는 방송에서 보도한 내용을 보면, 개발 호재 (지역) 중에서 '개발 가치가 전혀 없는' 땅 만을 파는 이들로 소개되고 있다. 기획 부동산 직원의 말을 철떡같이 믿은 피해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사려는 땅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계약부터 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했다고 뒤늦게 하소연하고 있다. 사기를 치거나 혹은 속이려는 의도를 가진 이들이 하는 말은 이렇다. "의심하지 마시고, 그냥 믿으세요" "이런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 절대 아닙니다" 이런 일에 "사전답사 또는 자료 수집" 등의 "조심성 있는 태도"를 보일려고 하면, 속아서 이미 계약을 체결해 버린 사람들은 (아직 피해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 말한다. "아무개 씨는 왜케 사람 말을 못믿어!" "의심이 많은 것도 병이야. 병!!!" "세상을 어떻게 살았길래, 그렇게 믿지를 못해? 쯪쯪쯔" "나를 봐. 사람이 말야. 첫 눈에 그런 것 하나 구분못하고선. 나는 이미 계약서에 서명 다했어" 자신의 행위에 소신이 있는건지 혹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 인지는 몰라도, 속아서 이미 계약을 해 버린 자는 (물귀신 작전처럼)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함께 "속이는 자의 앞"으로 인도한다. 그들이 '이같은 일을

엥겔지수가 가리키는 잠재적인 폭도, 그리고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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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엥겔지수가 어떤 뜻인지, 그 설명을 잠시만 살펴보자. 경제학적 용어로서, 총지출에서 식료품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한 값을 엥겔 계수라고 한다. 엥겔 지수가 높으면 저소득 계층(가계)이 되고, 지수가 낮으면 고스득 계층(가계)이 된다. 엥겔지수에 의해서 예측될 수 있던 통계적 법칙을 엥겔의 법칙(-法則, 독일어: Engelsches Gesetz)이라 한다. 엥겔지수는 단순하게 한달 수입의 규모와 식비로 소모되는 금전적 규모 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특히나 경제학은 엥겔지수를 너무나 신봉한다. 엥겔지수가 얼마나 정확하게 장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었길래, 법칙으로까지 추앙받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필자도 마찬가지. 그런데 한 인터넷 영상을 보면서, 약간의 실마리를 얻기에 이르렀다. 경제라는 단어를 다루는 이들은 최소한 자산 규모가 상당한 자들이어야 한다. 가난한 가정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youtube (이하 모두) 재벌들은 어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그렇게 유추된 결과를 보고 싶어한다. 이때 전제되는 조건이 하나 있다. "영구적 빈곤층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유추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다. 시뮬레이션 대상의 수입 규모와 식비 규모를 산출하는 것으로 통계적 결과를 이끌어 낸다. 이 방식이 좀 낯익지 않는가? 이는 "엥겔지수"로 영원한 빈곤층을 조사해 보겠다는 실험임을 의미한다. 이때 통계적 예측이 알려주는 특정 수위(level)가 있는데, 이 수위는 재벌가에게 "위험 요소"로서 다가온다. 엥겔지수가 40% 대에 이르는 계층은 폭도로 변하게 된다 는 사실을 이집트의 사태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어떻게 해석될까? 시뮬레이션을 시도했던 재벌들은 이러한 결과를 어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하지만 우리는 부분적으로 예언한다. 그래서 어쩌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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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말한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살전5:20) 그래서 예언을 하시는 분들은 예언을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구절을 먼저 언급하곤 하신다. 좋은 의도에서 그러실거라 믿는다. 하지만 어떤 거짓 예언자들의 경우를 보면, 자신의 말로 상대방을 마음껏 조정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언급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우리는 이 문제에서 그렇게 자유롭지만은 않는 것 같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대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부분적으로 예언하는데,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들은 폐하여진다"(고전13:9-10)는 내용을 언급하고 싶다. 고전13:9-10의 말씀은 살전5:20의 말씀과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 필자만의 우둔한 자에게만 느껴지는 감촉일까?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서로 합력한다. 반.드.시 합력한다.  합력함으로써 예슈아를 증거한다. 고로 서로 상충하는 성경 말씀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상대방을 비방하고 조롱하는 극심한 논쟁"은 무엇을 얻고자 함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언을 멸시하면 안 된다. 하지만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 예언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 흘러 나온다. 고로 그 예언은 부분적 것이며,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폐하여 없어진다. 즉 소멸된다는 뜻으로서 영원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 것임을 뜻한다. 이러한 접근으로 살전5:20의 말씀과 고전13:9-10의 말씀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필자는 물론이고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의 마음조차도 몹시 불편하게 만들거라 여겨진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말씀이 말씀을 대적하는 구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눔은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말씀을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부동산(아파트) 투기 근절. 최악의 한 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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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 당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었다. 경찰에 이어 군인까지 동원되어 전국의 조직폭력 조직들을 소탕했다. 그 결과 눈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에서는 범죄가 사라진 듯 보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인식을 하지 못했었다. 모든 범죄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세계로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돈의 경우도 동일하다. 이 경우 해당되는 돈을 "지하 경제"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지하경제는 Underground Economy, Hidden Economy, Black Economy, Unrecorded Economy, Shadow Economy 등으로 불리고 반대되는 개념은 공식경제(Official Economy)라고 한다. HRWatchdog - CalChamber 투기를 활성화 하는 원동력은 지하경제의 자금이다. 언듯 생각하면, 투기는 옳지 못하기 때문에 근절시키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투기가 근절되어 버리면 민생 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막대한 (지하경제)자금을 전혀 활용할 수 없게 된다. 투기 과정을 통해 지하경제의 자금이 공식경제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물론 투기가 과열되어 정부의 제어가 불가능해지면, 재벌들의 서민 착취 형태가 벌어지게 된다. 이 또한 민생을 힘들게 하는 형태가 된다. 하지만 투기를 정부가 잘 제어할 수만 있다면 어떨까? 투기로 인해 피해를 입는 서민들이 없을 거란 의미는 아니다.  단, 이들 피해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보호 또는 보상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투기를 적절하게 조장하여 막대한 지하경제의 자금을 공식경제로 유입시킴으로써, 시장에서의 유동자금을 늘린다. 이는 민생경제의 활성화를 이루는 것으로 민생의 안정화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는 부분이다. 즉 배가 고파지면 인심이 야박해진다. 곳간(주머니)에서 인심이 난다 고

과학과 이익집단 간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있을까?

과학적 사고는  매우 논리적이고, 매우 합리적이며,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사실들 을 이끌어내는 것으로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 가운데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특정한 사실을 홍보 또는 경고하고자 할 때, 대부분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인용한다. 그러면 듣는 이들은 별다른 의심없이 발표된 사실들을 받아들이면서 수긍하는 자세를 갖게 된다. 왜 이렇게 될까? 이는 앞서 설명했듯이, 과학이 갖는 지극히 객관적이면서 투명한 명료함 은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과학적 사실들이 그러한 속성으로 연구 조사되었을까? 다음의 한 동영상을 함께 나누길 원한다. 지금 여러분들이 그토록 "옳을 것이다"고 신봉하던 과학의 모든 사실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길 바란다. 과학은 객관성과 명료함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과학자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들에겐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잠을 자고 피곤함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활동" 등을 누리고자 하는 끝없는 욕망이 있다. 이러한 욕망을 억누르고 다스릴 줄 아는 이는 "모든 세대가 인정하는 학자"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에 다스림을 받는 자로 전락해 버릴 경우, 그들의 모습은 몹시도 치졸하면서 비열한 모습을 갖게 된다. 헐리우드 영화나 국내 영화는 이러한 모습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객관성과 명료함은 누군가에 속박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리라. 자유함을 누리는 이들만이 진정한 객관성과 명료함을 온 세계에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금전적인 상황에 속박된다거나 혹은 성도의 수에 속박되어 버린다면 어떻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속한 메시지만을 설교에 담을 수 있을까? 이는 설교자나 듣는 성도 모두에게 해당된다. 성

인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조사하는 연구.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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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 또는 통신 기술 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시시비비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고전압 전신주 아래에 살던 이들에게 암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에 대해 이견들이 많은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학계의 논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영국의 한 연구 단체(영국 정부와 통신업체가 후원하는 연구소)는 통신 기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연구 단체는 통신 기술 또는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체가 지향(목표)하는 연구 방향에 대해서 함께 들어보길 바란다.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조사하기 위한 연구는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렇다면 GMO 기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짧은 시간 안에 예측가능할 수 있을까? 과학적 연구는 특정한 이익집단의 목적에서 분리 되어야만 한다. 그럴 때 합리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가 특정한 이익집단에 소속되어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합리적이란 평가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업계는 물론 관심을 갖는 모든 이들이 신중하게 다가가야 하리라. 그러나 어떠한 완력이나 조정할려는 의도를 지녀선 안되리란 것은 상식이지 않을까? 아래의 글은 MBC PD수첩에서 방영된 내용 일부다. GMO에 대해 국내의 학계는 어떤 의견들로 나뉘어져 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 스스로 판단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과학 기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력이란 어떻게 조사되어야 합당하고 논리적인지. ☞ GMO를 먹어 온 한국의 밥상은 얼마나 오래 되어쓸까?

'바룩하바 바쉠 아도나이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메시아닉 랍비 "샤피리"가 들려주는 랍비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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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슈아께서 마23:39를 통해 말씀하신 내용 "바룩하바 바쉠 아도나이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마23:39b) 에 대해 메시아닉 랍비 샤피리 는 탈무드에 소개된 랍비적 개념으로 새롭게 설명한다. 탈무드에서 소개된 내용은 모든 유대인들이, 단 한번의 진정한 샤밧을 지킬 때.... 메시아가 오신다. 고 한다. 모든 유대인들이 진정으로 예슈아의 이름을 부를 때... 그때 예슈아께서 오신다. 이러한 해석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던 사도 바울의 말로 마무리 된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롬11:16) 이 구절은 성경(torah)의 정수요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의 최소한의 행위가 거룩해 질 때... 그러한 순간이 올 때... 완성을 이루는 메시아의 오심이 성취된다.

안식일 끝에 행하는 "구별"; 하브달라(Havda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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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끝에 행하는 "구별";   하브달라(Havdalah). 히브리어 가운데 "하브달라"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함께 알아보기로 하자. Havdalah (Hebrew: הבדלה, "separation")              is a Jewish religious ceremony that marks the symbolic end of Sabbath and Jewish holidays, and ushers in the new week. The ritual involves lighting a special havdalah candle with several wicks, blessing a cup of wine and smelling sweet spices. Shabbat ends on Saturday night after the appearance of three stars in the sky. Some communities delay the Havdalah in order to prolong Shabbat. 출처: Wikipedia "Havdalah" 샤밧(shabbat)은 매우 엄격하다. 샤밧은 우리의 시간이 아닌 야훼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샤밧의 끝에 (의무적으로) 행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하브달라 라고 말한다. 안식일은 일을 행하지 않는 날이다. 그런데 "하브달라"(Havdalah) 만큼은 행해야 한다. 그럼 하브달라는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일까?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것. 곧 "분별"하는 일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인데, 그 일은 샤밧이 끝나는 시점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3:12

절기(모에드)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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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모에드)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Teaching Torah 히브리인들은 자녀에게 성경(Torah)을 가르칠 때, 자신이 읽고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반드시 “손가락”으로 그 위치를 지명하여 가리킨다. 곧 교육하는 대상을 향해 반.드.시 보여주기 위한 목적 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사용한다. Discussing Torah 히브리인들은 성경(Torah)에 대해 토론을 하더라도 자신들이 어디의 내용을 언급하는지 분명하게 자신의 손가락으로 지명하여 가리켜 말한다. 곧 토론하는 대상을 향해 반.드.시 보여주기 위한 목적 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사용한다. Reading Torah 요즘의 히브리인들은 성경을 읽기 위해서 손가락 모양의 포인터를 사용한다. 그 포인터의 이름은  야드 (yad; יד) 로서 “손”(hand)을 뜻한다. 야드(손)로 정확하게 가리키는 행위,  곧 지명하여 가리키는 동작은 야드(yaad; יעד)로서 Moed의 어원이 된다.  이는 실질적인 만남(meet)을 전제로 사용되는 단어다. 그래서 야드(yad)로 지명(yadd)하는 이는 “지명된 그 사실”(Moed)을 “택함 받은 자”에게 그가 볼 수 있는 징조 로써 반드시 나타내 보이심을 뜻한다. Torah & pointer 성경(Torah)의 어원은  yarah or yara(ירה) 로서 가르침(teaching)을 전제로 한 “to throw, shoot”이다.  곧 학생에게 교육(딤후3:16)하기 위해 과녁을 향해 정확하게 화살을 겨냥하여 던지는 것을 뜻한다. 학생에게 보여주기 위해, 과녁을 정확하게 겨냥하여 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경이란 성경이 의미하는 바를 택함 받은 자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내용들 임을 의미한다. Torah & Moed 성경(토라)과 절기(징조)는 이렇듯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