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좋아하는 이가 깨닫게 된 성경의 진리

라면을 좋아하는 이가 깨닫게 된 성경의 진리


나는 라면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하루 세 끼는 물론이고, 일주일 내내 먹어도 물리지 않을 정도다.

이토록 라면을 좋아하다 보니, 웬만큼 조리하더라도 남김없이 다 먹는 식욕이 있다.
남들은 맛 없이 조리된 라면이라고 핀잔을 놓더라도, 내 입엔 꿀처럼 달게 느껴진다.
너무 싱겁다는 핀잔을 듣는 라면이지만, 내 입엔 부족하지 않게만 느껴진다.

나는 라면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세상의 다른 어떤 음식보다 라면을 월등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조리된 라면에 묻어 있는 "그 허물"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라면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하루 한 끼는 고사하고, 한 달에 한 번 먹는 것조차도 심히 꺼려한다.
그녀는 웬만한 요리사급 조리의 라면인데도 맛없다고 말하기 일쑤다.
7성급 호텔 요리사의 손에서 조리되었다고 할 성 싶을 때에 마지 못해 "음... 괜찮군"이라고 말한다. 그 정도가 되어야 겨우 평범한 말에 칭찬을 조금 섞을 정도다.

그래서 라면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몹시도 냉정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모두가 맛 있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이정도 밖에 조리를 못하는가?"라고 핀잔을 놓는다.
황홀한 맛이라고 모두가 칭찬하는 그 순간에도 "간이 맛지 않는데?"라는 핀잔을 여전히 내밷는다. 라면 앞에서 불평을 놓지 않는 순간을 찾을 수가 없다.

그녀는 무척이나 라면을 싫어한다.
세상의 그 어떤 음식도 그녀 앞에선 라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라면에 대한 글을 나누었다.
이제는 신앙으로 내용의 초점을 돌려 보자.

누군가가 어떤 주제를 놓고서 이야기를 한다.
지루한 내용이라 느껴질 수도 있겠고, 흥미롭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강연을 혹은 소규모 교제 중의 한 대화를 듣던 중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라면을 이야기 했던 것처럼, 두 모습 중 한 가지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이는 고개를 돌려서 다른 상대를 쳐다 보는가 하면, 어떤 이는 편하게 턱을 받치고선 그 대화 속으로 더욱 깊게 흡입된다. 신앙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자신의 믿음은 높은 반열에 속한다고 스스로 자부하는데, 자신의 대화중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교회(공동체) 안에서 리더로 활동하면서, 대화 중의 모습은 어떠한지 스스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필자 본인에게도 강하게 도전을 주는 내용이란 고백을 피할 수 없네요.

흔한 세상 속 모습은 자신의 관심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여길 경우, 가차없이 고개를 돌려버리고 만다. 그 내용은 물론이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관심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이 깊게 패인 어머니의 얼굴은 다르다.

pixabay

사방이 굳은 살로 뒤덮힌 어머니의 손길은 다르다.
비록 외적인 모습에선 자랑할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없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뜨거운 국그릇을 마다하지 않고 맨 손으로 잡아 옮기신다.
땀이 비가 오듯 흐르는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먼 발치에서 들려오는 자녀의 소리에 부드럽게 환한 미소로 웃음을 보여주신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

내게 어떤 특별한 은사가 필요한가?
치유와 예언을 하는 화려함이 있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그저 둔탁한 외모요 자랑할 만한 것들이 하나도 없는 보잘것 없는 삶이지만,
누군가의 말을 들어만 주는 것.
누군가의 국그릇을 그가 먹기에 합당한 곳으로 옮겨주는 것.

그것 만으로도 그는 한 없는 사랑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이는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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