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에게 주어진 험난한 인생. 왜 그런 삶이 주어졌을까?

유다에게 주어진 험난한 인생. 왜 그런 삶이 주어졌을까?

아버지 야곱은 자신의 아들 유다에게 유언을 남김으로써 축복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창49:9)

  • ※ (사자)새끼의 히브리 원어 gur(גּוּר)는 "cubs"의 의미로써 "young"이라고도 표현된다. 그런데 gur(גּוּר)의 어원인 gur(גּוּר)를 살펴보면 "assails"라는 의미에서 출발된 것으로 "to stir up strife, quarrel"(분쟁을 야기하다)는 뜻을 갖는다.


사자라는 단어는 비단 유다에게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다"는 표현은 "유다의 사자"라는 표현으로 다시 불리면서 이 표현에는 메시아의 형상이 담겨 있다.
그런데 분쟁을 야기하는 의미에서 비롯된 사자 새끼에 대해 심판자(judges)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 물론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것이다. 삼손의 이야기를 보자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삿14:5-6)

삼손이 만난 사자는 젊은 사자(kephir; young lion)(כְּפִיר)다. 이때 대부분의 삽화는 삼손이 성체 숫사자의 입을 찢는 것처럼 묘사한다.

highlander0423.deviantart.com


하지만 young lion을 검색해 보면, 새끼 사자 또는 갈기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숫사자 등의 모습을 보게 된다. 따라서 필자는 젊다는 의미가 강한 모습의 사자 모습으로 추론을 진행하기로 하면서 유다를 축복한 야곱의 유언과 연관성을 지어보려 한다.

  • 너무 어린 새끼 사자는 위험성을 논할 수 없으리라 본다. 이는 유다를 축복하고자 함도 아닐 것으로 추론하기에, 다만 노련함이나 성숙하지 못한 혈기 왕성한 상태로서 young의 의미로 이해하고자 한다.



젊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좌충우돌의 성향을 갖는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많은 곳에는 생기가 넘치는데, 그 중에는 잦은 다툼과 충돌의 모습이 있다. 이처럼 young lion 또한 분쟁을 야기할 수 있는 충분한 혈기의 소유자로서, 오랜 경륜으로 혈기를 다스리기 보다는 혈기를 따라 분쟁에 스스로 달려드는 그런 모습이 우선 연상된다 할 수 있다.

심판자(judge) 삼손은 그런 사자에게 "염소 새끼를 찢는 것처럼 그를 찢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사자의 입"이란 표현은 없다. 이때 심판자가 찢은 것은 젊은 사자였으나, 그 사자는 염소 새끼로 비유된다. 왜 염소 새끼로 비유되었을까? 다음의 구절을 함께 살펴보자.

창세기 38장(개역개정)
15.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자신의 며느리 다말을 창녀로 여기고서 동침하려는 순간이다. 이때 어떤 말이 오가는지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유다는 다말에게 동침의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말한다. 그 대가는 "염소 새끼"다. 그럼 염소 새끼는 좋은 의미로 지불되는 대가일까? 아니면 죄에 대한 대가로 지불되는 것일까? 물론 후자다.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창34:31)

  • 야곱의 아들들이 야곱에게 하는 말이다. 디나를 창녀 취급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처럼, (비록 몰랐다고 하지만) 유다가 다말을 창녀로 여기는 것 또한 옳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염소 새끼는 당연히 짐승의 의미가 아닌 "속죄양 예슈아"로 여긴다. 그런데 다말이 이 순간 엉뚱한 말을 덧붙인다.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다말)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염소 새끼를 다말 자신이 얻게 되기 전까지 어떤 담보물을 달라는 것이다. 곧 그녀는 이후에 담보물로서

창38:18a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 도장: chotham (a seal, signet ring; חוֹתָם), 보이지 않게 봉인하는 도장.
  • 끈: pathil (cord, thread; פָּתִיל), 비뚤어진 분쟁을 일으키는 끈의 의미.
  • 지팡이: matteh or mattah (a staff, rod, shaft, branch, a tribe; מַטֶּה) 특정 방향으로 눕거나 뻗어있다는 의미.


다말은 유다에게서 이 세 가지를 받는다. 유다가 스스로 준 물건들이다.

그런데 이 물건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유다의 직업군을 살펴보자.
그는 유목민으로서 양 떼를 거니는 자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도장과 끈, 그리고 지팡이의 역할 내지는 기능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도장은 자신의 양이란 증거를 새길 수 있는 절대적 권위다.
은 "대제사장직을 수행할 자의 의복"(영광)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정교하게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떨어지지 않게 하라(출28:28)


즉 에봇과 흉패가 잘 붙어서 고정될 수 있도록 돕는 끈이 pathil(cord)이다. 이는 야훼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는 것을 온전하게 매는 띠다. 중요하지 않을까?
지팡이는 규칙이라는 단어의 "규"(컴파스; compass)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상벌을 정하여 주시는 "은혜와 자비"를 뜻한다.

  • 자(scale)는 "칙"으로서, 공의를 뜻한다. 공의 앞에는 은혜와 자비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규칙"에 의해서 운영된다. 이는 "자와 컴파스"만으로 공리의 근본을 세운다는 그리스 철학의 근본 사상이라 할 수 있겠으나, 실제는 성경의 사실도 마찬가지다. 
  • scale은 공의(계명)을 뜻한다. 그런데 이 계명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 일은 compass에 의해서만 척도가 정해지는데, 컴파스가 길게 펼쳐지면 기준(a unit)이 매우 크다. 반면 짧게 펼쳐지면 기준이 매우 작다. 
  • 이러한 개념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규빗"이다. 가령 "300 규빗의 방주를 지어라"는 계명은 "칙"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규빗(팔꿈치에서 펼친 가운데 손가락까지의 길이)은 모두 다르다. 1규빗이 30cm인 사람이 300 규빗의 방주를 만든다면 9000cm다. 그러나 1규빗이 40cm인 사람의 경우는 12000cm가 된다. 즉 규빗은 컴파스로서 "은혜 or 자비"를 뜻한다.
  • 규빗이란 히브리어에 담긴 비밀(http://yimychan.blog.me/220886315703)


이방 여인 다말은 유다의 손에서 지팡이(규; 은혜)를 받아 낸다. 이렇게 이방 여인 다말은 유다의 실족함을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중요한 것"을 몽땅 받아 낸다. 유다는 스스로 내어준다. 곧 유다가 넘겨준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모든 권위와 영광"을 나타내는 징표가 된다.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4:6)

이스라엘 백성인 유다가 바라보기에 이방 여인 다말은 "창녀"일 뿐이다. 야곱의 두 아들들이 디나의 강간당한 사건에서 말했듯이, "창녀로 대하는 일"은 옳지 못한 일이다. 왜? 창녀는 야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언약을 가진 민족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언약의 백성이 행한 모든 일들은 떳떳할 진데,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창38:23)

"도장과 끈, 그리고 지팡이"를 지니고 있던 자가 다말의 임신한 사실을 보고 심판하려 한다. 그 심판의 결과는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창38:24b)

죽음으로 대가를 지불하게 한다. 왜 악한 일이었기에.
그런데 그때 악한 자, 이방 여인 다말은 어떤 담보물을 내민다. 담보물은 자신의 죄값을 대신할 수 있는 속죄물을 뜻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시아버지 유다 앞에서 그 담보물을 제시했을까?

그녀는 이미 말했다. 창녀의 신분이던 상황에서.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창38:17)

이는 현대인의 성경에서 더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 유다 曰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보내 주겠다'
  • 다말 曰 '좋습니다. 그 염소를 보낼 때까지 담보물을 잡히시겠습니까?'


즉 다말이 "불태워 죽기 일보직전"의 순간에 담보물을 제시하는 이유
바로 그녀가 "염소 새끼"를 받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해 보자.
담보물은 죽음을 면하게 하는 대속물이다. 하지만 정결의 표증은 아니다. 그러면서 권위와 영광을 소유하고 있던 유다가 "잘못을 행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이는 모든 이스라엘, 곧 언약의 백성들은 언약 밖에 속한 이방인들보다 "야훼 하나님을 더 잘 경외하는 자들이다"고 스스로 여기기에 그들은 이방인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 지혜롭다고 여겼던 행실이 이방 여인의 결정적인 증거로 인하여 "거짓"으로 판명된다.

그리고 다말은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4:6)

유다가 스스로 다말에게 넘겨준 "도장과 끈, 그리고 지팡이"(그 권위와 그 영광)를, 염소 새끼를 줄 수 있는 자로서 다말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 주었다.

이렇게 준 이유는?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창38:1)

유다는 당시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나와 홀로 살던 상황이었다. 현재의 이스라엘은 유대인이지 않는가? 그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참된 가르침(창18:19)과 그 형제들을 떠나서 사는 유다(유대인)는 "야훼 하나님의 율례와 도를 따른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다말, 곧 이방 여인 혹은 예슈아의 신부로서 믿는 이방인이 어떤 증거를 제시할 때 유다(유대인)은 깨닫게 된다.

자신이 야훼 하나님의 율례와 도를 따르지 않았기에 지혜롭지 못했음을.
그리고 이방 여인 다말이 더 지혜롭다는 사실을.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창38:26a)

유다는 이방 여인에게 "셀라"(shalah or shale)를 "반.드.시" 주어야 했다.

  • 셀라(shalah or shale) (to be quiet or at ease; שָׁלָה)
  • 나에게는 평온(shalah)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욥3:26)


이방 여인에게 셀라를 주어야 함이 마땅한 일인데, 그것이 아버지(조상) 아브라함의 가르침이건만 유다는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다말의 행동은 유다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했고, 뉘우치게 함으로써 회개의 길에 서게 하였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3:8)

이 일 이후에 유다는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이 거하는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가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가게 되자, 이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면.

야곱과 그의 가족에게 큰 환란이 다가온다.

29.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창44장)

하지만 환란 날 유다의 고백은 이방 땅 통치자(요셉)의 마음을 바꿔 놓는다. 이 순간을 위하여 유다의 심령은 다말에 의해 변화를 받아야만 했었다. 자신의 옳다 여기는 신념이 사실은 야훼 하나님의 것이 아니었던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유다의 고백은 온 세상에 혹독한 기근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와 그 온 가족들을 가장 좋은 땅으로 인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리고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창44:28)

이미 죽임을 당했을 걸로만 여기던 사랑하는 아들을 아버지가 친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야곱의 기쁨을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 요셉은 온 세계를 구원한다. 혹독한 기근으로부터.
※ 물론 혹독한 기근은 온 세계가 스스로 창조주 야훼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끔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창 47:25-25(쉬운성경)
백성들이 말했습니다. 
"총리님은 우리 목숨을 구해 주셨습니다."
"총리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파라오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이집트에 법을 세웠습니다. 그 법은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의 오분의 일은 파라오의 것입니다. 파라오의 것이 되지 않은 땅은 제사장들의 땅뿐이었습니다.

유다의 거칠고 험난했던 삶은 결국 온 세상을 왕의 소유(노예)가 되게 하는 것과 아울러 그 땅에 새 법이 선포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초석이었고, 그 계획하심 안에서 야곱의 집이 소멸되지 않고 더욱 온전해 질 수 있게 되기 위한 통로로써 쓰임받기 위한 것이었다.

여러분,
유다의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한다면 어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두 아들을 잃었고, 나머지 아들을 잃지 않기 위해 며느리를 버렸것만. 도리어 그 며느리를 범하는 치욕적인 일을 겪고 말았습니다.
그 삶처럼 애환과 치욕이 뒤섞인 삶을 보셨나요? 자부심을 느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유다로 인하여 (유다를 깨우친 이방 여인 다말과) 이스라엘의 온 집과 온 이방 땅의 족속들이 구원받게 하였습니다. 이는 아버지(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미 전하여 주신 야훼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성경은 장차 일어날 일,
곧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줄 것을 미리 일러 주었습니다.
이 복음을 먼저 아브라함에게 전했는데 
그것은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갈3:8. 쉬운성경)


  • 장차 일어날 일입니다.
  • "속히 일어날 일"(베레슅; בראשית)입니다.

참조)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

곧 모든 민족, 또는 모든 이방 민족들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 유다는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그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유다를 이해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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