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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 들려주는 이솝우화] 회초리와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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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 들려주는 이솝우화]  회초리와 형제들 나눗셈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면 대개 초등학생 수준의 이야기를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나누게 될 나눗셈에 관한 이야기는 초등학생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 실질적인 삶의 지혜 수준에서 나눠보고자 한다. | 이솝 우화 가운데 '회초리와 형제들'이라는 내용이 있다. 서로간에 우애라고는 찾아보기도 힘든 3명의 형제들과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의 이야기다. 어느날 아버지는 3명의 아들을 모두 모이게 한다. 그리고 회초리 12개를 들고 온다. 이를 본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혼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즈음 아버지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 애들아, 이 회초리 묶음을 한 번에 부러뜨려 보아라. " 3명의 아들들은 차례로 돌아가면서 12개의 회초리가 묶여있는 묶음을 부러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 그렇다면 이번에는 하나씩 꺾어 보아라 " 아버지의 또다른 제안에 형제들은 한 명씩 회초리 하나씩을 너무나도 쉽게 꺾어 보였다. 묶음을 꺾지 못했다는 실패감에서 이제는 꺾을 수 있다는 성취감이 드니 재미가 생겼다. 형제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12개 회초리 모두를 자랑스럽게 꺾어 보였다. 그들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묵묵히 지켜보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 회초리를 하나씩 흩어 놓으면 누구라도 쉽게 부러뜨릴 수 있단다. " " 하지만 한데 묶어 놓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부러뜨리지 못한단다. " " 너희도 마음을 하나로 합한다면, 아무도 너희를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란다. " " 그런데 하나씩 제각각 흩어져서 싸움만 해대면 사람들은 너희들을 무시하고 얕볼 것이다. " 우리들이 흔히들 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 나눗셈의 또다른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 하나의 묶음을 12개의 낱개로 흩으려 한다면 이는 '1set ÷ 12' 를

아버지가 포도밭에 숨긴 보물을 찾겠다며 포도밭은 온통 파헤친 아들들이 발견한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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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솝우화] 포도밭에 묻혀 있는 보물 어린 두 자녀와 함께 동네 도서관에 간 그곳에서 어린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책들이 즐비하게 비치되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이솝우화에 눈길이 사로잡혔다. 그래서 잠시 책장을 넘기는데, 다른 때와 다르게 거대한 감동이 내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 감동을 함께 나눠보려 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넓은 포도밭을 가진 농부가 네 아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일하는 데 힘이 부쳤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밭을 갈고 포도나무를 정성스럽게 가꿨습니다. 종일토록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도, 아들들은 빈둥거리고 놀고먹으며 잠만 잘 뿐 아버지 일을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첫째 아들은 하루 종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로 시간을 보냈고, 둘째 아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하루 종일 누워서 빈둥거렸습니다. 셋째 아들은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넷째 아들은 아버지가 담가서 창고에 보관해 둔 포도주를 꺼내다가 밤낮 가리지 않고 홀짝 홀짝 마시면서 늘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네 아들을 보고 화를 내거나 미워하지보다는 너무나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네 아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 애들아!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너희들이 포토밭을 돌보지 않으면, 머지않아 포도밭이 황폐해져 더 이상 포토를 딸 수 없게 된단다. 이제는 그만 놀고, 정신 차려서 일을 하도록 해라. " 그러나 네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건성으로 들으며 딴청만 피워 댔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아들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나이 탓인지 자주 피로한 기색을 보이다가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병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직감하고, 네 아들을 불렀습니다. " 나는 이제 일어나기가 힘들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의식이 있을 때 해둘 말이 있어서

5초만에 '자존감 & 자존심 ' 구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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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사용하는 말 가운데 '자존감'Self-esteem과 '자존심'pride이라는 표현이 있다.  brickandmortarbar.com 어떤 경우에는 둘의 경계가 모호해서 대개 혼용하며 사용한다. 하지만 쉽사리 구분할 수 있는 설명이 있다. 단 5초만 여유가 있다면 쉽게 구분하게 된다.  by naver blog 자존심 pride         ' 품위 '를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굽히지 않는 마음이다.  자존감 Self-esteem        ' 신념 '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굽히지 않는 마음이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이렇듯 간단하다.  품위 Vs. 신념   품위는 달리 표현하면 ' 허세 '라 할 수 있다.  품위를 지키려고 하는 단호한 행동인지 혹은 신념을 지키기 위한 단호한 행동인지를 '스스로가 구분'할 수만 있다면, 자존심에서 행하는 것인지 혹은 자존감에서 우러나와 하는 행동인지를 구분할 수 있으리라 본다.

영적 지도자 그리고 왕 노릇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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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지도자 그리고 왕 노릇 하는 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모두가 복종하여 따르도록 했다.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는 이들은 가차없이 그 생명을 빼앗고,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이들 만을 자신의 백성이라 삼았다. 우리는 그를 가리켜 왕이라 말한다. 왕은 백성들 머리 위에 군림하는 자로서 왕이 옳다고 여기는 길로 백성들도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길 강요한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은 왕의 길로 걷는 인생을 살게 되는데, 그 왕이 사람이라는 이유에서 그 길은 사람의 길이다. 하지만 수 천년의 역사 동안 영원히 지속되는 사람의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영생을 꿈꾸던 왕들도 많았지만, 그들이 죽음과 동시에 왕의 길이라 불리던 사람의 길은 또다른 왕에 의해 바뀌고 말았다. 이렇듯 왕의 길이 매번 바꾸는 반복된 모습을 통해 우리는 사람의 길에서는 영원한 것을 볼 수 없다는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한편 또다른 사람이 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을 보필하는 자로 살아간다. 보필하는 그의 모습이 흡사 노예와 같다해서, 그런 보필을 우리는 '헌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뽑아 놓은 사람인데, 자신의 백성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스스럼 없이 그들의 노예처럼 백성들을 섬겼다. 물론 그릇된 길로 걷는 자에 대해서는 재판장의 모습처럼 단호한 모습으로 다가갔지만, 열심을 내어 올바르게 살아보려는 이들 앞에서는 그저 보잘것 없는 노예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지도자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어떤 길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다만 백성들 스스로가 보고 느끼며 들을 수 있는 올바름의 소리, 곧 양심의 소리에 이끌리어 살아갈 수 있기만을 바라면서 자신은 그의 백성들을 섬기는 일에만 헌신했다. 영적 지도자의 덕목이 care인 이유는 환자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이 지도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간호하는 이는 환자를 자신의 종(노

재미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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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책임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  그의 노래는 멈출 줄 모른다. 하염없이 흘러 나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의 노랫소리는 멈추었지만 흥에 취했는지 연신 가벼운 콧노래를 부르며 그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린다.  그의 노래가 듣기 좋았던 한 신사는 그를 찾아가 전문 가수로서의 제안을 한다.  노래를 부르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던 그는 흥쾌히 승락하고, 그는 가수를 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쉼없는 스케쥴 속에서 그의 노래도 쉼을 얻지 못한 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잠이 부족한 그는 늘 행사장과 행사장을 옮겨가는 차량 속에서 쪽잠을 잤다. 그런지도 벌써 3년 째.  노래를 불러야 하는 행사장을 벗어나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한다. 불러야만 하는 상황이기에 노래를 부르기 보다는 부르고 싶을 때 노래를 부르고 싶을 뿐 이다.  누구보다 노래를 좋아하던 그가 어떻게 이런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을까?  누구든 재미만을 위해 일을 할 때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보람을 더욱 크게 느낄 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책임이 전가되면, 상황은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린다.  이전에는 자신이 일의 시작과 끝맺음을 결정할 수 있다. 그는 자유가 있었다.   지금은 누군가에 의해 시작과 끝맺음이 결정된다. 그는 자유을 잃어버렸다.  시골쥐와 서울쥐의 이야기처럼,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었지만 자유를 빼앗겨 버린 이 순간만큼은 철저히 노예의 삶이었다.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노예가 멋진 옷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 차며, 최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인의 한 마디면 옷과 장신구를 벗어야 하고 자동 차에서 내려야 하는데.  이제는 노래를 부르더라도 흥이 나지 않는다.  목이 말라 온 몸이 불꽃에 타들어 갈것 같은 갈증을 느끼면서도 노래만은 멈추고 싶지 않았던 그런 날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책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