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드라이버를 꿈꾸며...




드라이버(운전수)를 꿈꾸는 이가 있다.

그는 자신이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자동차에 기름이 없다면 운전수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할지라도 움직일 수 없다. 바퀴 또는 엔진 등의 고장이 있다면 운전수가 고함을 치며 나무랄 지라도 자동차는 움직이질 않는다.


드라이버를 꿈꾼다는 것은 자신은 가야할 방향을 결정하는 일만 할 뿐, 그 외의 모든 일들은 다른 누군가가 해 주어야 한다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드라이버는 자신의 차량 상태를 누구보다 명확히 이해해야만 한다.


차량과 같은 하나의 시스템을 지휘/통제하는 드라이버라 할지라도, 그가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독불장군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 모든 시스템은 이처럼 '함께' 연합해야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현명한 드라이버라면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여 줄 그 시스템을 누구보다 존중하는 자여야만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세차를 하고, 실내에선 악취가 나지 않도록 청결상태를 유지해 주며, 더울 때와 추울 때를 대비하여 각종 상태를 점검하고 조율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명령을 내리는 자가 운전석에 앉아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정작 긴요하게 써 먹어야 할 순간에 차량은 드라이버의 명령을 배신하고 만다. 


하지만 평소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마다 관심을 쏟는다면, 그 시스템(차량)은 긴요하게 써 먹어야 하는 순간에 절대로 드라이버(의 명령)를 배신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기에 베테랑 드라이버는 자신의 차량을 누구보다 애지중지 하는 자를 의미한다 볼 수 있다.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그 무엇보다 노력하는 자다.


베테랑 드라이버의 이야기처럼, 정치를 꿈꾸는 이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정치를 꿈꾸는 이는 국가라는 시스템의 운영을 의미한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국가의 시스템이 운영되고 통제된다. 이러한 과정은 드라이버가 차량을 운행하는 것과 같음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국가 시스템을 운영하기를 꿈꾸는 이들은 반드시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고 따라주는 그런 대상을 전제로 자신의 꿈을 이뤄나간다.


이를 더욱 쉽게 말하면, 자신을 두목으로 여겨줄 부하들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를 꿈꾸는 이들이 간혹 '평등' 또는 '불평등한 계급 타파'를 부르짖으며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내세우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은 이상적인 평등을 구현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이 두목이 되려면 자신을 떠받들여 줘야 할 낮은 계급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낮은 계급이겠지만, 자신의 이념에 부합된 평등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계급 사회만을 유지를 해야만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적 사상이라 할지라도, 추종자 내지는 정치적 지지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정치적 성공을 이룰 수 있겠는가? 정치란 반드시 지지 세력이 있어야만 그 세력을 동원하여 상대 세력을 소멸 또는 규합함으로써 자신의 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다. 그래서 최소한의 계급 사회는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따라서 인간 사회에서 인간에 의해 구현되는 이상적인 평등 국가란 '무산계급'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계급을 난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계급으로 구성되는 그런 사회를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정치적 야망을 내세우는 이들이 간혹 '평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울 때, 그들에게 표를 던져주어야 할 국민이라면 '그가 말하는 평등'이 어떤 평등일지에 대해 분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가 말하는 평등을 위해 몇 단계의 계급이 필요한 것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겠다는 뜻이다.


교회(공동체) 내에서도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모두가 한 지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나의 몸을 구성하는 신체부분들이라는 의미로서. 그럼 신체의 부분들 중에는 특별한 계급의식이 주어질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는 생각으로 교회(공동체)는 운영된다.

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어떠할까? 교회(공동체)를 운영하는 중에 계급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교회(공동체)를 소개하는 문구를 보자면, 목회자, 장로, 안수 집사, 권사 등을 가리켜 '섬기는 분들'이라고 말한다. 그분들을 가리켜 절대로 '섬김을 받는 분들'이라고 하지 않고, 교회(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라고 말한다. 본시 섬김 또는 헌신이라는 말은 자신의 몸을 버리듯 사용하여 타인을 왕처럼 돌본다는 것을 뜻한다. 고로 섬기는 자 혹은 헌신하는 이들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노예로 여기는 이들을 가리키는 게 올바른 인식이다.

특히나 목회자 분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하나님의 종(slave)'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설교를 듣는 이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price or princess)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스스로 계급 사회를 인식하고 있으며, 그 계급의 대상들이 어떤 이들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교회(공동체)가 주장하는 그 계급이 그대로 지켜 유지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섬기는 일을 자청하는 가운데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하나님의 종slave'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결국엔 자신보다 더 낮은 단계의 행동부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기는 일의 영역을 '두뇌 플레이'수준으로 여기는 일들이 많아서, 자신은 드라이버에 해당된다고 여기는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그럼 그게 섬기는 자의 모습이라 여길 수 있을까? 앞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드라이버는 나라의 국정을 운영한 정치인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교회(공동체)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꿈꾸는 이가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자가 된다. 자신의 두뇌 플레이를 떠받들어 지지해 줄 수 있으면서 그대로 실천해 줄 수 있는 행동부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것이 교회(공동체)가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많은 이유들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세상은 드라이버를 꿈꾸는 이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누군든 자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그런 세력기반을 얻고자 노력하는 중에 당연히 자기 자신을 신격화 하는 단계로 밀고 올라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교회(공동체)는 다르지 않는가?


섬기는 자로 스스로 서약을 했다는 것은 연약한 자를 왕의 자녀로 여기고 자기 자신은 그의 하인처럼 행동하겠다는 결단을 서류화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어느 누구도 그보다 낮은 자는 없다.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는 누가 명령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물론 도움이 필요할 경우, 주변분들에게 도움을 청할 순 있겠으나 스스로 명령하는 자의 모습을 갖고자 노력하지는 않는다. 


  • 목회자가 먼저 인사하고
  • 장로가 먼저 복도와 계단을 청소하며
  • 안수집사가 먼저 주변 도로의 쓰레기를 줍는다면,


어느 누가 그들의 직분을 완장이라 조롱할 수 있겠는가?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직분에 맞는 영성이 있는 분들'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목회자이기에, 장로이기에 그리고 안수집사이기에 누구보다 앞서서 먼저 명령하고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강요를 한다면 어느 성도가 그들의 명령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교회(공동체)는 스스로 모여드는 단체이기 때문에, '나를 당신들의 종으로 삼아, 당신들의 뜻대로 혹독하게  부려먹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성도분들이 어디있겠는가? 교회(공동체)는 절대로 강요로써 운영을 도모해선 안 된다.


모두가 자신들의 약함을 위로받기 위해서 찾아오는 발걸음들이다.

그래서 먼저 위로를 받은 이들은 위로받기 위해 찾아든 약한 이들을 왕의 자녀처럼 섬겨주어야 한다. 절대로 그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일 없이, 오로지 그들의 종salve인양 행동해야 한다. 교회(공동체)가 말하는 최소한의 계급은 바로 이와 같다.


올바른 교회(공동체)는 이처럼 먼저 위로 받은 자 또는 영적으로 건강해진 이들이 스스로 하인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 집단은 계급으로 인해 빚어진 차별은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 안에는 계급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주된 의미로 인식이 된다.


교회(공동체)가 이러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기를 누구보다 바라며, 우리가 함께 애써 나가기를 바란다.

교회(공동체)에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면, 그래서 그 경험을 통해 좋은 기억을 갖게 된다면, 교회(공동체)를 떠나 집과 직장으로 나아가는 성도들 역시 그 곳에서 마땅히 '자신이 받은 대로 베푸는 자'의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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