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이 꿀처럼 달다? 왜 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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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샘물(water) 앞에 서 있다.

한 사람은 심하게 목마른 자요 다른 한 사람은 전혀 목마르지 않은 사람이다.

두 사람에게 각각 물을 한 잔씩 떠 주었다.
물을 마신 각각의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물이 꿀처럼 달다고 느끼는 이는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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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상식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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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 펼쳐 있고 그 앞에 역시 두 사람이 서 있다.

한 사람은 '하는 일마다 실패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원수가 되어 버려서 몹시도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다. 다른 한 사람은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칭송을 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다.

두 사람 모두 성경 말씀을 처음부터 읽어내려 간다.
자신이 읽고 있는 성경 말씀에서 위로를 얻는 이는 누구일까? 성경 말씀에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면서 그렇기에 말씀들이 꿀처럼 달다고 느낄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우리는 성경 말씀이 기록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3)


오늘 이 순간 이 말씀이 어떤 의도에서 기록된 말씀인지 풍성한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내 삶에 고난을 안겨 주시면서 '너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기를 기뻐하노라'라고 말씀하시는 야훼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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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에게 이토록 힘든 고통을 주시나요?"
"정령 당신은 전능하신 분 맞나요?"

라고 하소연 하는 자로 머물러 있기보다는, 고난이 오는 그 부분에서 눈을 돌려 주변을 볼 수 있는 담대함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극심한 갈증으로 인하여 목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해서 목을 부여 잡고 울지 말라는 뜻이다. 힘들지만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 보라. 그리고 샘물을 찾아 보라. 그럴 때 '물 속에 감춰진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 기회는 3번 찾아 온다고 하지 않던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회를 잡지 못한다. 그것은 기회가 내게 찾아 왔지만, 그것이 기회인지 혹은 기회였었는지 조차 분간할 능력이 없어서다. 문제에 빠져 버리면 그 순간부터 그의 시력은 흐려지고, 흐려진 눈으로는 사물을 명확히 볼 수 없게 되기에 분간할 능력 또한 상실하게 된다.

의롭지 못한 나를 능히 의롭다고 말해 주실 수 있는 그분을 믿어 보자.
그가 내게 주시는 것은 나를 더욱 단련시킬 수 있는 좋은 훈련 종목이라 믿고 극복하려 노력해 보자. 훈련 기간에 발생하는 훈련생의 실수는 이미 계획된 일이니, 실수 할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자. 자잘한 전투를 치르다보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승패에 연연하지 말자. 보다 더 나은 작전을 위해 현명한 지휘자는 의도적으로 전투에서 패하기 하지 않던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이요 (전투가 아닌) 그 전쟁에서의 승리를 취하는 자가 진정 전쟁에 능한 자다.



물 한 잔은 모두에게 물 한 잔일 뿐이다.

허나 그 한 잔의 물 안에 깃들어 있는 천국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목마른 자에게만 허락되었다. 이처럼 천국은 허락된 자에게만 침노당하나니, 우리는 침노해야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는 말을 귀하게 여기길 바란다. 요즘의 젊은 이들은 고생을 모르고 자란 세대다. 이건 복을 받았다는 뉘앙스로 주로 회자되고 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저주를 받았다는 뉘앙스가 더 옳다. 삶 곳곳에 숨겨 있는 천국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강탈당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모 세대가 스스로 자행한 범죄다.


도둑질하지 말라
(출20:15)

자녀가 마땅히 소유해야 할 바가 있으니, 그것은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자녀는 그 기회를 강탈당해선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이 시대의 부모는 자녀의 손에 물 한 방울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이마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아도 되는 편리로 가득채워진 삶을 주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자 자녀의 심령은 천국을 경험할 기회가 박탈되면서 점점 생명이 메말라가는 상태로 변해 버린다. 서서히 성령이 소멸되어간다. 그 결과 어린 나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심각한 범죄를 서슴치 않고 행하는 시대를 열어버렸다.

이것이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의 실제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들이 모여 사는 그곳을 가리켜 '지옥'이라 말한다.

'풍요 또는 풍족'이라는 말을 교회(공동체)는 몹시 좋아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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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은 공동으로 이용하는 곳으로서, 그 안에는 주차 가능한 공간이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주차장을 이용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마음껏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자신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다. 허나 주차 라인은 반드시 준수하여 주차해야 한다.
이것이 규칙 안에서 온전히 자유를 누리는 삶의 면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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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이는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주차 라인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주차한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민폐'라고 말하고, 공동체에 부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사실은 신앙 공동체의 여부를 떠나서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신앙 공동체 밖에 거하는 이들도 주차장 안에서 주차 규칙을 준수하면서도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있다. 규칙이 없어져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란 명료한 증거다.



(율)법이 없어져야 우리의 신앙에 자유가 찾아오는게 아니다.

(율)법 안에서 (율)법을 기쁘게 지켜 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 그 상황에서 우리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즉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율법 밖에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기쁨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율법 안에서 율법을 준수하려 하는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그때 자신의 믿음의 수준 또는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는 기쁨을 주시기 위함이다.
  • ※ 하루는 24시간이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게 중요하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하루에 몇 시간 이상 해야만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 그 같은 조건이 부여됨과 동시에 '24시간을 할애하는 자'를 제외한 모든 나머지는 신실하지 못한 자라 평가된다. 그래서 우리에겐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이 세워져 버린 셈이 된다. 주님은 이런 상황에 우리가 빠지지 않도록 믿음의 수준 또는 삶의 형편에 따라 기도와 성경 묵상 등의 시간 할애를 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주셨다.
  • 내가 기뻐할 수 있고, 내가 힘써 노력할 수 있는 수준을 기쁘게 선택해 보라. 그럴 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기도와 말씀 묵상도 장성한 자의 수준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어린 자녀에게 그리고 내 삶에 찾아오는 고난을 피하지 말자. 없애려 하지 말자.
오히려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까 걱정된다.

'동변상련'이란 말은 고난을 겪었다는 전제 안에서 사용되는 단어다.
※ 同 같을 동. 炳 질병 병. 相 서로 상. 憐 불쌍히 여길 련.

가장 소중한 것, 가장 값진 것을 누구나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안전한 곳에 두는 이는 없다.
그런 자는 미련한 자다.

누구도 손을 뻗을 수 없고, 누구도 뻗으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곳에 가장 귀한 것을 숨기는 자.
그가 가장 지혜로운 자다.



고난 속에 천국을 숨겨 보라.

세상의 모든 이들은 스스로 고난을 피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겐 절대로 침노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걷겠다는 믿음의 지체들에겐 다르다. 고난 가운데서 전진하기 위해 손을 펼치는 그의 손 끝에 천국은 힘없이 닿아 버리고 만다.

물 한 잔은 모두에게 동일하다.

그러나 그 물 한 잔 속에 깃들어 있는 천국문을 여는 열쇠는 우리들 자신과 삶 속에 있다. 고난 가운데 거하는 이 만이 그 열쇠를 소유할 수 있으니,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성경 말씀은 목마른 자에게만 꿀처럼 단 맛을 준다. 목마르지 않는 자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성경 말씀은 죄인에게만 꿀처럼 단 맛을 준다. 의인은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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