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던 의외의 장소는?
사도 바울은 성경 곧 예슈아를 누구에게 증거했을까?
이방인?우리는 주로 그렇게 이해하는 편이다.
그런데 의외의 장소에서 예슈아를 증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바울과 실라는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지나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인 회당이 있었습니다.
- 바울은 습관대로 회당으로 들어가 삼 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유대인들과 토론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7:1~2(쉬운성경)
바울과 실라가 평소의 습관대로 회당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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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ynagogue is a place of Jewish worship. In addition to housing a sanctuary for services, synagogues often serve as the centerpoint of Jewish life. The word “synagogue” is the Greek parallel to the Hebrew term beit knesset, “house of gath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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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회당에는 누가 있었을까?
이방인? 아니면 유대인?그곳에는 유대인이 있었다. 모세의 글(모세오경; Torah)을 읽고 열정적으로 토론하기를 즐거워하는 유대인들의 소굴이 있다면 그곳은 유대인의 회당이다. 바울과 실라 또한 3주간 모세의 글(성경)을 놓고서 다른 유대인들과 열정적인 토론을 했다. 어떤 내용을 토론했을까?
- 바울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이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행17:3)
바울과 실라는 예슈아라는 이름은 거론하지 않고, 유대인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메시아'(그리스도)를 거론하였고 그 메시아에 관하여 드러나지 않았던 비밀들을 이야기했다. 그 비밀이란 메시아의 오심과 죽으심이 함께 진행되어야만 하는 필연성으로서, '모세의 글'(성경)을 통해 증명(proof)하는 식으로 토론은 진행되었다. 유대인의 토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명(proof)다. 그 이유는 모든 사실은 반드시 두 증인을 통해서 입증되어야 한다는 모세의 율법을 반드시 준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이 사실로서 입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분한 수의 증인 또는 증거'(ex,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인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오늘 날의 법정에서도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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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실라는 사람의 말로 유대인들을 설득했을까? 사람의 충분한 지식으로 설득을 시도했을까? 아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또 다른 서신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그러는 중에 이곳 데살로니가의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의 메시아(그리스도)에 관한 설득력 있는 증명들을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2:13.개역개정)
사람의 말로 설득력 있는 이해를 주고자 했다면, 분명 그 말을 듣던 이들은 이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논쟁이 격화되면서 급기야 심각한 충돌이 야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이 익히 알고 있던 토라(성경)의 지식으로 하지 않았다. 바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서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음에도.
유대인 회당 안으로 들어가서 성령의 흐름을 감지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특정한 주제가 토론의 화두로 삼아지는데, 그 화두를 대화 가능한 주제삼아 유대인들과 토론을 시작했을 것이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은 그 종착지가 예슈아가 된다. 성경 곧 Torah가 과녁을 향하여 정확하게 조준한다는 말인데, 그 과녁의 한 중앙에는 예슈아가 있다. 그래서 성경을 토대로 이루어진 모든 토론은 반드시 예슈아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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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과 바울(과 실라)의 토론은 이처럼 예슈아, 곧 메시아로 귀결이 되는데 사도 바울은 이러한 흐름을 잘 따랐으리라. 모든 이야기는 (기승전결의 기법처럼) 강할 때와 약할 때, 단단할 때와 부드러울 때를 적절하게 섞어갈 때 감동을 매우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 그것을 가장 잘 인도하시는 이가 바로 성령님이시다. 바울과 실라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그 흐름을 따라 토론을 이어갔기 때문에 토론에 참여했던 여타의 유대인들 또한 성령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된다. 그리하면 토론에 참여했던 유대인들에게 어떤 역사가 펼쳐질까?
-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삼상10:11.개역개정)
주님의 영이 함께 임하게 되니, 성령의 감동을 동시에 받을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로써 바울과 실라의 메시지를 인정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결과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이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행17:3b.쉬운성경)
라는 말로 토론의 마지막을 장식하자, 토론에 참석했던 유대인들의 강팍했던 그 마음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 유대인 중에 그 말에 설득되어 바울과 실라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많은 그리스인들과 적잖은 귀부인들도 바울을 따랐습니다.
(행17:4.쉬운성경)
여기까지는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바울과 실라의 사역이 진행된 모습이었다. 그럼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야밤도주하듯 베뢰아로 이동한 이들은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회당
으로 들어갔습니다.
(행17:10b. 쉬운성경)
역시 유대인의 회당으로 들어간다. 그럼 이곳에서는 누구에게 어떤 내용을 전했을까?
두 말하면 잔소리이지 않을까?
유대인의 회당에서 만날 수 있는 이들은 역시 유대인들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보편적인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 모세오경(성경)의 내용을 전했을까? 분명 유대인의 회당에서 습관적으로 읽혀지는 글은 모세오경이다. 그리고 어떤 랍비는 모세오경의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해왔다. 이것이 전형적인 유대인 회당의 모습이다. 바울과 실라도 이처럼 설교했을까? 만일에 그랬더라면 (데살로니가의 시기하는 무리들처럼) 바울과 실라의 설교에 분노하는 이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전하는 메시지는 보편적인 랍비 또는 바리새인들의 것과 매우 달랐다.
-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중략)...그들은...(중략)...예수라 하는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17:6b~7)
바울과 실라가 전하는 내용은 유대인들이 익히 알고 있던 성경(Torah)의 일반적인 해석과 전혀 달랐다. 메시아(그리스도)라고 인정할 수 없는 이를 메시아라고 전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전파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 회당에서도 있었고, 베뢰아의 유대인 회당에서도 있었다. 그리고 여타의 다른 지역에서도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다.
자.
이야기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바울과 실라는 예슈아의 메시아 되심을 누구에게 전하고 있었는가?
이방인? 아니다.
이스라엘 지역을 벗어나 이방인의 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즉 디아스포라 된 유대인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오늘의 나눔은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마15:24.개역개정)
-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마태복음 10:5~11(개역개정)
'이방인의 길(삶; 사회)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지역으로도 가지 말며, 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예슈아의 말씀이 정확하게 절충되고 있다.
메시아이신 예슈아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
그들을 향해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복음의 소식을 전하고자 하셨다. 그들에게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로 전하기 위해 '성령의 기름부으심'(사61:1~3)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자들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로 받아들이는 그런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제자들은 자신들이 그 지역을 떠나기 전까지 그곳에서 유숙하며 교제하기를 즐겼다.
여러분.
이방인을 향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갈3:8, 창12:3)은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는 유대인의 왕이기에 이방인을 위한 사역을 펼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하지만 이방인을 구원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해결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온 세상, 곧 온 이방인의 지역에 흩어버리셨습니다. 그 결과가 디아스포라 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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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디아스포라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디아스포라 된 자신조차도 정작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오늘 바울과 실라의 메시지가 디아스포라 되었던 데살로니가 지역의 유대인과 베뢰아 지역의 유대인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처럼, 홀연히 디아스포라 된 유대인들의 마음에 들려오게 될 것입니다. 마치 회귀본능에 이끌리어 바다에서 살던 물고기가 전혀 다른 지역인 민물을 향해 길을 떠나듯, 디아스포라 된 이들에게도 그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에겐 디아스포라 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을 후대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인생에는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습니다.
오늘 그 3번의 기회 중 한 번의 기회가 여러분에게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약한 자를 홀대하지 마십시오.
약한 자로 강하게 하시는 이는 홀대하였던 당신을 부끄럽게 할 것입니다. 당신이 홀대하였던 그 약한 자를 당신 앞에서 강한 자로 바꾸심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축복하는 이방인 만이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매우 단호하면서 명료한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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