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8의 게시물 표시

나다나엘은 어떻게 예슈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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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나엘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설교자 분들은 다양하게 거론해 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분들은 그 이름을 익히 잘 알고 있다. pixabay (below all)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떠 올라서 질문을 해 본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슈아께서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던 너를 보았다는 그 말에 예슈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그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목숨조차 아끼지 않을 만큼 메시아에 대한 신뢰가 큰 이스라엘 백성인데, 그 한 마디에 예슈아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있다는게 너무 궁금합니다." 이같은 질문을 던진 이가 또 있을까? 필자는 너무 아는게 부족한 건지 혹은 쓸데없는 부분에서 의문이 생기는 건 아닌지 싶다. 하지만 궁금하다. 그래서 질문을 던지면 납득할 만한 답변을 주는 이가 없다. 왜 설명을 못할까? 일전에 한 연구소에서 잠시 근무하던 적이 있었다. 당시 3쪽 짜리 짧은 논문(paper) 하나를 골라 팀원 앞에서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광학이라는 학문을 약간 배웠을 뿐, 자세히 배운 적이 없었는데 그 논문은 광학에 관한 연구 자료였다. 책상 앞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발표 시간은 다가오는데... 발표 시간이 되었다. 내가 나름대로 요약정리한 내용을 팀원들 앞에서 설명해 나갔다. 그런데 내 설명을 듣던 팀장이 발표를 중간에 끊고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군요." 그렇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인터라,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이지 설명하는 나 조차도 모르면서 그저 "횡설수설"할 뿐이다. 팀장의 지적은 명확했다. 설명이 난해하고 복잡하다는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말

뗄래야 뗄 수 없는 인간과 미생물간의 공생관계. 이것을 지키는 자가 모든 질병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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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below all) 미생물과 인간과의 공생관계는 단순히 관계형성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공생관계는 반드시 "계약"에 의해서 체결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공생관계를 다 열거할 순 없겠으나, 한 가지 쉬운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남자와 여자간의 결혼은 가정이라는 경계(영역) 안에서 펼쳐지는 공생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체결해야 하는 계약식이다. 계약식에는 하객들이 초청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을 증인으로 삼아야 하기에 초청된다. 이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헌신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어떤 경우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주는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사마귀의 교미를 예로 들 수 있다. 사마귀들은 교미하는 동안에 암컷이 수컷의 머리를 먹어 버린다. 그리고 수컷은 죽음을 맞이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생명을 번식시키기 위해 짝을 찾고, 그 상대에게 자신의 후손을 갖도록 계약을 맺는 일에 수컷은 자신의 목숨을 조건으로 삼는다. 인간과 체내에 존재하는 약 2000여 종 이상의 미생물들 간에는 어떤 계약관계가 있을지 이런 가운데 궁금증이 더 할 수 있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거울을 통해서 반사되는 이미지를 통해서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요 창조의 질서다. 우리 인체 내의 신비를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 이유는 앞선 내용처럼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또는 다른 곳에서 투영되는 이미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나눔은 이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추론하고자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나츠메 우인장"이라는 인간과 요괴들의 이야기가 있다. 한 요괴는 인간과 계약을 맺어서 마치 친구처럼 지내는 가운데 악한 적들이 인간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면역의 개념처럼) 경호하는 것으로 계약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계약관계는 인간이 죽는

그것으로 송아지 주상(鑄像)을 만들었다(출32:4). 아론은 어떤 몹쓸 짓을 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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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아론)는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취하여 녹이고 틀에 부어 넣어 그것으로 송아지 주상(鑄像) 을 만들었다. 그들이 말하였다. 이스라엘아, 이것이 미쯔라임(애굽) 땅에서 너를 올라오게 한 네 하나님이다. " (출32:4. 히브리직역성경) 송아지 주상(鑄像)이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주상(鑄像)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불상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wikipedia (below all) 불상은 사용된 재질에 따라 석불상(石佛像) · 목불상(木佛像) · 주상(鑄像) · 화상(畵像) · 토상(土像)이란 종류로 나뉜다. 🔹석불상(石佛像): 돌을 조각하여 만든 형상 🔹마애불상(摩崖佛像): 바위를 새겨 만든 형상 🔹목불상(木佛像):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형상 🔹 주상(鑄像): 금속을 부어 만든 만든 형상    ☑ 금동불(金銅佛): 동을 부어 만든 후 금도금을 한 형상    ☑ 철불(鐵佛): 철을 부어 만든 형상 🔹화상(畵像): 천이나 종이에 그린 형상 🔹토상(土像): 흙으로 빚어 만든 형상 🔹이불(泥佛): 진흙으로 빚어 만든 형상 주상(鑄像)이라는 것은 동상을 만드는 하나의 기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상의 속 내부는 어땠을까?  시르 페르뒤 cire perdue(프)   ‘없어진 밀랍’이라는 뜻으로, 주조(鑄造)의 한 기법. 점토에 밀랍으로 살을 붙여 원형(납형)을 만들고, 여기에 고운 모래를 밀착시킨다. 밀착된 모래로 만들어진 주조 피통(被筒)을 가열하면 밀랍이 녹아 내리게 되고 그로 인해 생겨난 틈에 청동을 부어 넣은 다음, 속의 점토를 긁어내 면 주상(鑄像)이 된다. 시르 페르뒤는 원시 시대부터 사용된 보편적인 방법이다. 참조: http://monthlyart.com/encyclopedia/시르-페르뒤/ 속 내부를 채우고 있던 점토를 모두 긁어낸 금속 동상을 주상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하던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10:12) 이 말씀은 "그런즉"으로 시작하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 앞에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되었고, 결론부분으로서 핵심되는 메시지를 정리하고자 이 문장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열거된 사례에서는 홍해를 지남으로써 광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과 허다한 이방인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세례를 받았다"라고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또한 세례받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예슈아의 살(생명의 떡)까지 먹고 있는 이들"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서 순간 순간 실족하는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어 야훼 하나님을 심히 대적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음행을 저질러 하루 아침에 23,000명이 죽기도 하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야훼 하나님을 시험한 고로 뱀에 물려 죽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원망합니다. 야훼 하나님을요. 그 결과 멸망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례들이 소개된 이유는 본보기(role model)로 삼기 위함입니다. 즉 난 신앙의 연륜과 경륜이 있어서, 웬만한 죄로는 나를 넘어뜨릴 수 없지. 라고 자부하는 그 마음에 경각심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신혼 시절에는 눈에 꽁깎지가 덮혀 있어서 상대의 허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일 즐겁고 복된 시간을 보냅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게 됩니다. 그 허물은 부부싸움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그때부터 부부싸움은 시작됩니다. 철은 철로 다듬듯이, 사람은 사람으로 다듬어가시

성경은 왜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등장시켰을까? 그가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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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이 성령에 이끌리어 나간 광야로 내려간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행8:26) ※ 흠정역에서는 '가사'지역이 '가자'지역으로, 그리고 '광야'가 '사막'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난다. Bible Encyclopedia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행8:27~28a) 흠정역에서의 표현을 빌어오면 '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밑에서 그녀의 모든 국고를 맡아 큰 권세를 가진 내시 '라고 소개하고 있다. 즉 단순한 고급관리로서 대략 재무장관 즈음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운 더 고위직 관리임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국고를 맡을 수 있도록 여왕에게서 큰 권세를 부여받은 내시'라는 내용 중에서 '크다'는 성경 속 표현은 덩치가 크다거나 화려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울러 '크다'는 것은 'best'를 의미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 best of best '를 뜻한다. 그래서 '큰 권세를 가진 내시'는 곧 '신하'를 의미하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성경 속 표현으로 바꾼다면 '신하들 중에서 신하 된 자'다. 이는 파라오 왕에게서 '애굽의 모든 국고를 맡을 수 있는 신하'로 임명된 요셉과 같은 자 인것을 짐작하게 한다. 즉 너는 내 집을 다스릴지니라. 내 모든 백성이 네 말에 따라 치리를 받으리니 나는 왕좌에서만 너보다 높으리라, 하니라. (창41:40.흠정역) 의 내용처럼 '왕조차도 왕좌에서만 높을 뿐, 실무를 담당하는 부분에서는 가장 높은 자(신하)'란 뜻이다.그 위력이 참으로 막강한 자인 것

예언은 성취되는게 아니라, 내가 직접 노력할 때 성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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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예언자로부터 예언을 들었다. "당신은 이번 100m 달리기 경주에서 1등을 할 것이다." 너무나 복되고 기쁜 소식이다. 그는 이미 1등을 한 선수처럼 기쁨을 주체할 수 없다. 자. 경기 당일이 되었다.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나는 이미 1등이 될거라는 예언을 들었다. 이 예언은 진실이다. 나는 믿는다.' 그러면서 더 이상 힘써서 뛰기를 '거부'(reject)해 버렸다. 그는 1등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은 물어보나 마나 그를 향한 예언은 성취(fullfillment)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에게 향했던 예언은 거짓(false)'인 것을 증명(proof)해 버렸다. 주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예언(은혜)이 거짓이라는 것을 자기 스스로 명백히 증명한 셈이다. 곧 그는 야훼 하나님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증인이다. 이같은 상황 전개는 "상식"(common-sense)이다. 그럼 바꿔서 생각해 보자. 자신이 1등을 할거라는 예언을 들었지만, 경기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선을 다해 달렸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1등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차지하지 못했을까? pixabay 그는 1등을 획득 하였다. 예언을 받은 것에 멈추지 않고, 예언이 성취될 수 있도록 전심으로 조력(helper)했기 때문 이다. 즉 야훼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예비(prepare)하는 "진실한 삶"을 살았다. 그런 이에게는 예언이 성취되니, 그를 향한 예언은 참되고 그에게 예언을 주신 야훼 하나님 또한 진실된 분이신 것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었다. 여러분. 오늘날 이 땅을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분들이 많음을 압니다. Photo by David Beale on Unsplash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세대가 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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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는 일에 집중했을 뿐인데, 왜 그런 세대를 악하다고 말할까?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집중했을 뿐인데, 왜 그런 세대를 악하다고 기록했을까? 먹고 마시다. "먹고 마시다"는 의미는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켰다는 1인칭 시점을 가리킨다. 즉 배고픈 옆 사람에게 먼저 먹고 마시도록 배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배고픔을 먼저 고려하였고, 자신의 어려운 문제에만 집착하여 주변의 어려운 사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래서 자신의 배고프고 목마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삶을 살았던 모습은 "먹고 마셨다"는 것으로 표현된다. 소위 타인에 대한 배려를 "타인의 대한 무관심"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은 오늘날을 보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었더니, 도리어 보따리를 내 놓으라"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이 각종 매스컴의 핫이슈로 전달되었다. 이러한 메시지는 삽시간에 얼음장처럼 얼어 붙은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옆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냥 바라보고만 있다. 혹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수준은 '경찰 또는 119에 전화를 걸어 주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 된다. 심지어 미투(Me too) 사건은 이러한 사회적 풍조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젊은 세대는 물론 기성 세대까지도 "타인의 문제에 무관심하는 것이 타인을 돕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란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같은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맞는 이들끼리만 어울리고 식사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마음에 맞지 않는 동료에 대해선 전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그러한 태도는 "마음에 맞지 않는 동료에 대한 배려"라는 차원에서 합당히 여겨진다. 이것이 오늘날의 사회적 풍조로 인식되어지고 있고, 상당히 많은 이들에 의해서 합당하게 행해지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만 "먹고 마시는 것"이

교회(공동체) 안에서 마술 행위를 멈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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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들로서 가장 금기시 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마술과 점치는 일이다. 그래서 성경 속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에 관한 내용은 "오래전 과거의 흔적"으로만 여기곤 한다. 자기 아들딸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점치는 일과 마술을 행하고 자신을 팔아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분의 분노를 일으키니라.(왕하17:17.흠정역) 하지만 출애굽 당시에만 마술과 점치는 행위가 있었을까? 우리는 그 사실을 사도행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도행전 8장(흠정역) 9. 그러나 시몬이라 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전부터 바로 그 도시에서 마법을 이용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홀리며 자기를 어떤 대단한 자로 내세우매 10.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다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하나님]의 큰 권능이라, 하더라. 11. 그가 오랫동안 마법으로 그들을 홀렸으므로 그들이 그를 존중히 여기더라. 여기서 잠깐! "한 도시에서 가장 큰 자가 되었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잠시 알아볼 필요가 있다. 도시의 모든 사람이 "그의 말(voice)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사무엘의 한 마디에서 짐작할 수 있다.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흠정역) "순종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제사를 드리는 그 어떤 것보다 야훼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19:5b-6a.개역개정) 그런데 도시의 사람들이 (야훼 하나님이 아닌) 시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