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종처럼 섬겨야 하는 이유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자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아들을 남겨 놓은 채로 그의 종(slave)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만 여행 중에 심한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부자는 큰 근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잡에 남겨 놓은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유산을 물려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종에게 남겼습니다.

"내 아들에게는 내 재산중에서 하나만 유산으로 남긴다."
"그리고 그 모든 나머지는 (종) 네게 물려준다."

pixabay (below all)



이렇게 편지를 써 주고 난 후, 부자는 죽었습니다. 주인의 장례를 잘 치룬 종은 부자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한달음에 주인의 아들에게 달려와 자신의 주인이 죽기 전에 남긴 편지(유서)를 내밀고는 당당하게, '주인의 모든 재산 중에서 오직 한 가지만 당신에게 주었고, 그 외 나머지는 다 자기 것이라'고 선포하듯 말했습니다.
이 편지를 전해받은 아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습니다. 그 많은 재산 중에서 겨우 한 가지만을 남겨주신 아버지가 몹시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들고서 지혜로운 랍비를 찾아갔다. 아들은 랍비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랍비의 반응은 몹시도 달랐습니다. 심히 크게 감탄스러워 하였습니다.

"당신 아버지는 하나님이 특별하게 주신 지혜를 가지신 분이요."
"만일 당신 아버지가 이런 편지를 써주지 않았더라면, 종은 거짓말로 아버지가 재산을 다 자기에게 주었다고 말할 것이요."
"그런데 분명하게 이런 편지를 만들어 준 것은 특별한 지혜요."
"우리 나라의 법을 잘 아는 분이요."
"종은 재산이요."
"종이 가진 재산은 주인의 것이요."
"이것이 법이요."

"당신은 종에게 가서 아버지가 한 가지만 가지라고 하셨으니 종 하나만 갖겠다고 선포하시오."
"당신 아버지는 당신에게 모두를 그대로 물려 줄 방법을 곰곰이 생각한 것이요"

아들은 기쁜 마음으로 종에게 달려가서 힘차게 외쳤다.

"나는 너를 내 재산으로 택하겠다."




여러분.
이 세상의 이치 안에는 주인과 그의 자녀, 그리고 종(slave)이 있습니다. 

탈무드는 주인의 종을 주인의 자녀가 물려받을 수 있는 유산의 목록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야훼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 "자신들의 법"에 규정된 사실이라 자명하게 말합니다. 따라서 주인은 재산(의 한 목록에 포함되는 종)에 대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재산(이 되는 종)은 주인을 바꿀 수 있는 자유(권리)가 없습니다.

자!
여기서 질문을 드립니다.
스스로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slave)이라고 큰 자부심을 가지고 스스로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 된 자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또 다른 신분에 대해서 명료하게 말합니다.
예슈아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가진) 자.

그럼 묻겠습니다. (각자의 신분을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 입니까? 종 입니까?


자녀인 분도 있겠고 종이신 분들도 있겠죠?

그럼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여기시는 분은 누구의 재산입니까? 자신은 누구를 섬겨야 할까요? 쉽사리 답변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명확하게 이해한 상황에서 살아왔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럼 우리는 오늘 이시간 부터 좀더 심오한 생각을 해 보길 바랍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2:16(흠정역)
너희가 자유로우나 너희의 자유를 악을 덮는 도구로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들로서 행하라

그런데 이 말씀과 서로 상충되는 또 다른 말씀도 있습니다.

몬  1:16a(흠정역) 이제는 종으로서가 아니요 오히려 종 이상의 사랑하는 형제로서니라.
요15:15a(흠정역)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중략)...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나니

이 두 가지의 사실은 성경을 믿는 우리들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합니다. 특히 "둘 중 무엇이 옳으냐?"라는 시각으로 성경을 바라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옳다고 믿는 그 믿음에서 다시금 출발해 보길 바랍니다. 우리가 몰라서 일뿐, 두 상황의 말씀들은 서로 대적하지 않는다고 여겨보길 바랍니다. 그런 측면에서 말씀만을 그냥 떼어 놓고 서로 비교하듯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경 속 사건을 시간과 함께 연결지어서 바라보기를 제안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또다른 올바른 이해를 더욱 폭넓게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없는 경우, 우리는 "참된 증인 또는 참된 증거"를 요구합니다. 참된 증인(증거)가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결합될 때,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명확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연결된 참된 증인"을 찾아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의 글은 이러한 상황을 시간과 엮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흠정역)
1...(중략)... 상속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아이일 때에는 전혀 종과 다르지 아니하고,
2.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가정교사들과 감독하는 자들 밑에 있느니라.

성장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의 개념이 "자녀의 상황 변화"와 연결되어 설명되었습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역사(history)라고 하죠.




우리들이 왜 제대로 된 역사을 배워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사건만을 연구하고, 사건만의 의미를 파헤쳐서는 진정한 "섭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건들은 반드시 시간과 연결되어졌을 때, 참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건이 아닌,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역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성경의 역사 또한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시간의 굴레 안에서) 자녀와 주인의 종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이 글에는 주인의 자녀와 종(slave)의 신분인 가정교사와 감독관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를 줄이면 "자녀 Vs. 종"의 구도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모든 것의 주인인 아버지가 시간을 정했습니다. 그 "정한 때"(moed; 절기, 계절)가 오기 전에는 아들을 종과 같은 격으로 대우합니다. 즉 아브라함이 어린 이삭을 이스마엘과 동등한 관계로 여겼던 것과 같습니다. 이삭 자신도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의 어린 이삭은 노예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그저 형으로써 섬겼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흠정역)
8.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는 본래 신들이 아닌 것들을 섬겼느니라.

그러나 아버지가 정한 그 때가 오면, 동등하게 여겨졌던 관계는 분명하게 나뉘게 됩니다.

창21:8(개역개정)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그때는 아브라함이 무척이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었습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이 순간은 아버지가 정한 때인데,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 받을 수 있는 (자유한 자의) 아들이 도리어 종의 아들에게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발각됩니다.

창21:9(개역개정)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갈4:3(흠정역) 이와 같이 우리도 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의 초등 원리 밑에서 속박 당하였느니라.
    29(흠정역)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가 성령을 따라 태어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지금도 그러하도다.

그러자 아버지의 기업을 이을 자, 곧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가리는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창21:10(개역개정)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갈4:30(흠정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노예 여자와 그녀의 아들을 내쫓으라. 노예 여자의 아들은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하리라





아버지가 정한 때가 오면, 그 순간 "핍박받는 사건"이 일어난다.

곧 율법 아래 속한 자요 노예의 아들이 약속의 아들을 핍박하는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다. 이렇게 핍박 당하는 사건이 있은 후, 노예의 아들이 쫓겨나고 약속의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는 자로 확정된다. 즉 아들이 종(노예의 아들)에게서 지배당하던 시기가 지나고, 아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기가 온다는 뜻이다. 종(노예의 아들)을 아버지의 집에서 내쫓은 후.

요1:12(흠정역)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갈3:29(흠정역)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니라.

그래서 성경은 한결같이 젖을 떼야한다는 사실에 강조하여 말합니다.

히5:12(흠정역) 시간으로 보건대 너희가 마땅히 가르치는 자가 되었어야 할 터이나 ...(중략)...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도다.

젖을 떼고 단단한 음식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랍니다. 단단한 음식을 필요로 하는 그 시점이, 어찌보면 핍박이 다가오겠지만 여러분에겐 속히 기쁜 소식이 들려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아직 젖(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태예요"

라는 나약한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장해야만 합니다. 젖을 먹는 자로 멈춰버려선 안 됩니다. 그런 이에게는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줄 수 없기 때문이죠.

히브리서 5장(흠정역)
13.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니라.
14.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에게 속하나니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 선악을 분별하느니라.

젖을 떼야만 아버지의 기업, 곧 야훼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능숙하게 지켜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8장(새번역)
18.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9.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가르친대로 행하면" 야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것을 받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기업이겠는가? 그 기업의 풍성함을 어느 누가 깨달을 수 있으며 셀 수 있겠는지요. 그래서 우리는 젖을 떼고,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가 되기까지 장성한 자로 서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은 우리들이 주인행세를 할 수 없고, 도리어 종으로서 갖추어야 할 "섬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해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올바른 역사관, 곧 성경의 말씀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대로 나열되어야 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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