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배움을 얻는 시기는 ...
농사는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늘 부족하다.
한 번은 풍년을 이루었다지만, 그 다음 해엔 여지없이 흉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농사는 (사람의 노력을 무시할 순 없겠으나) 하늘의 도움이 없다면
이룰 수 없는 천직(天職)이다.
자녀를 키우는 것 또한 우리는 농사로 비유하여 말하곤 한다.
그렇기에 자녀를 양육하는 것에 있어서도 "장담할 수 있는 부모"는 없다.그렇다고 모두가 손을 놓고 마냥 방관해야만 할까?
그렇지 않다.
자녀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평범한 표현이 있다.
저 부모는
(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그래서 흔히들
넌 네 부모에게서 무엇을 배웠길래
그처럼 행동하는 것냐?
라고 말한다. 결국 자녀의 됨됨이는 부모의 자녀 교육 또는 부모의 자식농사에 대한 평가를 시사한다. 이는 "부모가 가르쳐 준데로 자녀는 행동한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부모라는 이는 자녀에게 있어서 평생의 "교육자" 또는 "선생"인 셈이다. 이런 사실을 회피하고 싶겠지만, 피할 수 없는 관계다.히브리어는 이러한 사실을 부모의 마음인 Leb(לב)로 표현한다.
히브리 성경인 Torah는
- 첫번째 단어 "בראשית"(창1:1, 태초에)의 첫 알파벳 "ב"(beit)와
- 마지막 단어 "ישראל"(신34:12, 이스라엘)의 마지막 알파벳 "ל"(lamed)
에 의해 둘러 싸여 있는 형상으로서, 이것을 문자화 한 상형문자다.
마치 부드럽고 영양 많은 호두가 단단한 호두껍질에 둘러 싸여 있는 것처럼.
그래서 Torah는, 만나(manna)는, 아버지의 마음(Leb)은 호두껍질에 해당하고,
생명되신 빵(lechem; 레헴)은, 자녀가 감당할 수 있는 교훈과 가르침은 호두에 해당한다.
참고) 왜 “야훼 하나님은 자신을 전쟁에 능하신 주”라고 말씀하실까?
부모는 자녀에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지속적으로 배움을 주고 있고, 줄 수 밖에 없다.
(이런 관계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그런데 어떻게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
사실은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이 글을 작성하는 필자 조차도 늘 버거워하고 힘겨워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어떻게 가르침을 주지?
사실은 우리의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옷을 올바르게 입기 위해선 반드시 "첫단추"를 제대로 끼워 맞춰야 한다. 첫단추가 잘못되었는데 어떻게 나머지 단추들이 올바르게 끼워 맞춰질 수 있겠는가?
"첫단추를 맞춰야 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기본 상식이다.
우리는 이렇게 상식이라는 개념 안에서 부모와 자녀의 피할 수 없는 연관성을 찾아보면 실마리를 쉽게 풀 수 있지 않을까?
부전자전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요5:19a)
아버지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그러면 그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닮아간다.
수학에는 합동과 닮은 꼴의 정의가 있다.
"A is B"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합동이다. 반면 "A is not B"이고 "A is a part belong to B"라고 말할 수 있을 때, A는 부분적인 것이고 B는 온전한 것이지만 서로 닮았다고 말한다. 이것이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로서 오직 닮은 꼴만 존재할 수 있는 부자지간을 설명한다.
어떤 자녀가 "나는 내 아버지와 같다."고 말하겠는가? 상식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자는 없다. 다만 "나는 우리 아버지와 닮은 점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는 마치 아버지처럼 행동한답니다."라고 말하는게 상식이다. 이를 두고 "네 놈이 네 애비냐?"라고 핀잔을 주는 무식한 자는 없다.
우리가 예슈아를 닮아야 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나는 예슈아다"라고 말하면, (자연의 섭리에서 합동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이는 "거짓 선지자 또는 거짓 그리스도"다. 한편 "나는 예슈아처럼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두고 "그럼 네가 예슈아냐?"라고 비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말은 상식에 준하여 자연의 섭리를 지켜 나가는 모든 자들이 인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측면에서 성경에 이를 입증할 만한 구절이 있을까 하고 반문할 수 있다. 그 반문에 답을 한다면 그것은 Shema israel(신4:6~ )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말하면서 이어지는 내용을 기억해 보자.
Shema Israel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
(신6:6b~7)
매사의 모든 모습을 통해 가르침을 주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이 사실을 바꿔 말하면,
부모 스스로가는 뜻과 같다. 그렇지 않고는 매사에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자녀를 아름답게 교육하기를 원한다면, 올바르게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앞서 이야기 했던 것으로 농부가 배움을 얻는 시기가 언제인지 아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올바르게 살아가면 된다.
photo by Erik-Jan Leusink on Unsplash |
삶이 평안할 때, 부모의 그 모습 배우지 않는다.
자녀는 어려움 앞에 서 있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
즉 어려움을 직면하는 부모의 모습,
어려움을 상대하는 부모의 모습을
자녀는 배운다는 뜻이다.
고난 앞에서 비겁하게 피하는 모습을 보이는지
혹은 고난이 무섭고 강해 보일지라도, 무릎꿇지 않고
부들부들 떨리는 두 다리를 지탱하고서 고난을 강하고 담대하게 서 있는
그 아버지의 넓은 어깨.
자녀는아버지의 그 어깨를배운다.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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