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종이 되길 선택한 자

pixabay (이하 모두)

사랑하기 때문에
종(slave)이 될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이러한 관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약1:1)


예슈아 하마쉬아흐(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입니다.

신랑(예슈아)과 신부 사이의 관계입니다.

온전한 부부요 둘이 온전한 하나(א)를 이루는 그런 관계에서만 허용되는 사실이
다름아닌 "사랑하기 때문에 종이 되는 것"이요.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육의 생각)은 어떤가요?

그들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탐욕과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우리들을 자신의 종(slave)으로 삼으려 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각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바보 상자(TV; 영상 매체)를 즐겨 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자신들 마음대로 다스리고자 "편리를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저주란 무엇일까? 죽음보다 더 저주스러운 삶. 그것은 단조로운 일상

당나귀가 된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잊지 않으셨죠?

누군가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모든 탐욕과 즐거움을 마땅히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제안하죠.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는 반드시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부부 사이"는 아름답습니다.
이면에 탐욕과 사리사욕을 숨기고 있는 자와 맺는 계약 관계에서는 아름답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필요를 채움받지만, 이후에는 우리들이 그들의 필요만을 채워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이 있고 없고를 논하려 하지 않기에 강권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온전한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이권집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병원도 영리집단이요 국가도 이익집단이며 대중매체(신문과 방송)도 이익집단입니다.

부부사이는 이익집단이 아닙니다.

허나 최근에는 이익집단의 모습으로 점점 변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부부생활은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 맞춰진 출발입니다.

올바르게 바꾸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윤을 추구하려 했던) "자신의 첫 마음"을 비우시고,
배우자를 위해 "돕는(헌신하는) 자의 마음"으로 바꾸셔야 합니다.

그런 부부사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구 사이가 됩니다.
젊어서 서로를 깊게 도와주면, 훗날 노년에 세상보다 더 든든한 친구를 얻게 됩니다.

그런 여러분들과 그런 가정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라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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