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으로 보는 성경] 수열의 극한으로 미리 계산해 본 천국에서의 상급

신앙(교회) 공동체 안의 우리는 "야훼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역"을 위해 삶의 어떤 무엇보다 우선시 해야 할 것을 부분적으로나마 강요 아닌 강요를 받곤 한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간다.
어찌보면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즉 돌봐야 할 가족있고, 마땅히 생계를 위해 해야 할 업무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과 휴식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 있고, 그 외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알차게 봉사하고 기도하며 성경 말씀을 읽는다.

우리들의 모든 삶은 이렇듯 "조화"(harmony; balance)를 이루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한 편이다. 앞서 제시했던 삶의 모습은 신앙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봉사에 우선순위를 두게끔 유도받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가정사에 소홀 아닌 등한시 되며, 자신의 업무에 집중함으로써 더 개선된 성과 또는 소속된 기관에 더 나은 영향력을 끼치기 보다는 늘 시간에 쫓기듯 업무를 마무리 하게 된다. 그 결과 업무의 질적인 측면은 고사하고 양적인 측면까지 기대에 못미치는 일이 있곤 한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그대로 방치하듯 바라보아야 할까?

신앙 공동체에서 보다 많은 봉사와 헌신을 행해야만 천국에서의 상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런 그런 달콤한 말"에 우리는 오늘도 이리저리 이끌다녀야만 하는 것일까?

수학은세상의 모든 이들도 인정하는 "자명한 모습(값)"을 보여준다.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서도 인정받는 "자명한 증거"가 있으니, 오늘은 그 증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일정한 규칙 등으로 인하여 무한히 반복적으로 나열되는 수치들이 있는데, 이것을 "수열"(sequence)이라 한다. 수열은 쉬지 않고 무한히 반복적으로 시도하는 가운데 "특정한 값(수준)"에 도달하는가를 눈여겨보는 수학적 분야다.
그런데 수열에서의 숫자 배열 또는 나열은 끝이 없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 끝에 "무한"(infinite; ∞)을 두고, 우리들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으로 지정해 버리고서 계산을 한다.

다음의 계산을 보자.

  • 무한에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고로 아래의 표현에서 n은 창조주 야훼 하나님을 의미한다.
  • 아울러 n으로 나뉘는 수학적 표현은 "평가"(estimation; judgment)다. 모든 분자는 창조주 하나님의 크기(공의)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분자항은 인간의 행함을 의미한다. 그곳은 셀 수 없이 다양한 숫자(numbers)가 오는 자리다.


아래 내용은 위에 기록된 수학의 극한 값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수열의 극한값이 "0"(zero)인 표현을 보자.


분자에 "1"의 숫자가 올 경우,
수학적으로는 "0"(zero)에 수렴(도달)한다고 말한다. 곧 이 사람은 "nothing"(헛된 삶)으로 평가된다.

분자에 "1,000"의 숫자
곧 나름 엄청나게 많은 사역을 행한 자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역시 그 값은 "0"에 수렴한다. 그렇다는 것은 그의 삶도 "nothing"(헛된 삶)으로 평가된다.

분자에 "1억의 1억"에 해당하는 숫자를 놓을 지라도,
그만큼 엄청난 일을 행했을지라도 그의 삶은 역시 "0"의 값에 수렴한다. 고로 그의 삶은 "nothing"(헛된 삶)으로 평가된다.


반면 수열의 극한값이 "1"(one)인 표현을 보자.

분모에 있던 n이 분자에 이미 존재한다. 
어떤 일을 행하든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
를 뜻한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이가 있다. 그는 살아 생전에 겨우 (한 가지)"1"의 일을 행했다. 그래서 무척이나 수줍어 하면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자로서 세상에선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행함은 "1"(온전한 하나; אחד)의 값에 수렴(도달)한다. 즉 그가 세상에 있을 적에 행했던 한 가지의 일은 "온전한 선"이라 평가받는다는 의미다.
congregation-echad.org



  • "Hei" is the fifth letter of the Hebrew alphabet and it is a symbol of repentance. The daled, which means door or entry is a part of the construct of the letter hei”. The daled portrays an open door allowing the influence of the world to enter in. The independent segment of the “hei” portrays a small stroke pointed upward to illustrate that our influence comes from above.


또 다른 이가 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이가 역시 "1,000"의 일을 행했다. 이는 "1"의 일을 행한 자가 칭찬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칭찬을 기대할 것이다. 천국에서 받는 상급이 더 클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함은 역시 "1"의 값에 수렴(도달)한다. 그도 역시 "1"의 일을 행한 자와 동일한 평가를 받는다. "온전한 선"을 행한 자라고.


마태복음 20장(개역개정)
1.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수열의 극한이라는 수학적 표현이 믿는 우리들에게 시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역의 다양성 또는 사역의 비중"에 상급 또는 온전함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역으로 말하면,
모든 행함에 있어서
"야훼 하나님과 함께 했는지"의 그 한 가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는 뜻이다.

여러분.
우리들의 기준으로 "선하다" 또는 "선한 일"이라 평가하고서, 그 일을 힘써서 행하자고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기준으로는 절대로 "선한 일"을 고를 수 없습니다.

삶의 모든 부분을 반드시 야훼 하나님과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길 강권합니다.
그분이 행하라고 명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수학에 깃들어 있는 참교훈을 우리가 놓치지 않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라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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