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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숨겨진 비화] 예행연습 이후에 치뤄진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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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숨겨진 비화] 예행연습 이후에 치뤄진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시험. bibleseriesguide.com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전대미문의 대단한 영적 인물이다. 당시 시대는 자신의 아들들을 제물로 바치는 우상행위들가 몹시도 성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쳐라"는 메시지를 사단의 음성으로 듣지 아니하고, (정확히 분별함으로써) 야훼 하나님의 음성으로 확신할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그 놀라운 믿음.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믿음이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 칭함을 받는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시험에 대해서 단번에 합격할 수 있었을까?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단 번에 성공할 수 있는 그런 류의 "난제"는 없다. 난제는 숱한 시행착오 등을 통해서 겨우 풀 수 있는 어려움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브라함에 대해 그의 가치를 깎아 내리기 위함은 아니다. 다만 우리네들이 "전통처럼 여겨오는 아브라함에 관한 신학적 내용"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측면에서 오늘 "아브라함의 숨겨진 비화"를 나누고자 한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라는 아들만 있지 않았다. 이스마엘 이라고 하는 아들도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생애는 "한 아들과의 이야기"로만 설명될 순 없다. "두 아들을 가진 아브라함의 이야기"로서 우리들에게 설명되어야 함이 옳을 줄로 믿는다. 아브라함에게 큰 시련이 찾아온 일이 있다. 바로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mocking; צָחַק )하였다. 솔직히 조금 놀렸거니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삭을 놀렸다는 "조롱"의 수위는 다음의 상황에서도 동일한 히브리어로 표현되어 있다. 창18장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וַתִּצְחַ֥ק )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삶에 어려움이 올 때, 벗어나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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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어려움이 올 때, 벗어나는 길은? pixabay (이하 모든 그림) 삶에 어려움이 왔다. 이때 우리는 전문가를 찾아간다.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가고 재정이 힘들면, 금융 상담사를 찾아가며 신앙과 삶이 힘들면, 목회자를 찾는다. 우리는 왜? 왜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내게 있지 않는 지식 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배운 바도 들어본 바도 없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은 현재의 어려움을 능히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신의 가난과 어려운 상황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자녀들에게 공부해야 한다고 하셨다. 배움은 (지금의 고난을 돌파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 이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고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교육"이 갖는 의미는 실로 대단하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 장차 올 알 수 없는 고난이 올지라도 교육을 제대로 받은 자는 스스로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 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교육하기에 유익 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 이라 (딤후 3:16-17) 집 안의 자녀를 둘러 보십시오. 배우는 과정에서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는 아이는 없습니다. 배우는 과정에서 실수나 실패가 두려워 뒤로 물러나려 하면, 모든 부모는 말합니다. "배우는 학생은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실패 속에서 더 나은 실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항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서 실패를 오히려 너를 향한 교훈으로 여겨보라."

그런 식으론 물을 마시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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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론 물을 마시지 마십시오. pixabay (이하 모든 그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들은 물을 마시는 생활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손 쉽게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돕는 생활 용품이나 아이디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전보다는 많은 물을 마셨을까? 그럼 우리들의 건강은 예전보다 더 좋아졌을까? 가정의 의료 지출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는가? 본 자료는 보건복지부, 연세대학교 의료복지연구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6.07) 공동 작성한 "2014년 국민보건계정"에 수록된 경상의료비 규모의 추이(1970~2014년) 통계 자료입니다. 물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방송 또는 전문 지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물을 많이 마십시오"라고만 한다. 과연 그래도 될까? 바닷물은 "물"에 소금이 과하게 녹아 있는 상태다.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예로써, 염도가 (가령)70%인 바닷물과 체내 혈관의 염도가 (가령)30%인 혈액을 비교해 보자. 둘 간의 차이는 40%가 난다.  바닷물이 들어있는 장기 쪽은 고 염도, 혈관 속은 저 염도다.  물은 "혈관 속(저염도 지역) → 장기 속(고염도 지역)"으로 흘러간다. "두 지역의 염도가 동일"하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즉 40%의 차이가 없앨 때까지 혈관 속에 들어있는 물은 혈관을 빠져나와서 장기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결국 혈관 속의 수분은 줄어들고, 혈액은 심하게 끈적거릴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탈수라고 말하고, 김치의 숨을 죽이는 과정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김치에 소금을 뿌려 놓으면, 물기가 하나도 없던 (김치가 들어있던)바구니에 한 가득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짜게 먹은 자는 물을 과

라면을 좋아하는 이가 깨닫게 된 성경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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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좋아하는 이가 깨닫게 된 성경의 진리 나는 라면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하루 세 끼는 물론이고, 일주일 내내 먹어도 물리지 않을 정도다. 이토록 라면을 좋아하다 보니, 웬만큼 조리하더라도 남김없이 다 먹는 식욕이 있다. 남들은 맛 없이 조리된 라면이라고 핀잔을 놓더라도, 내 입엔 꿀처럼 달게 느껴진다. 너무 싱겁다는 핀잔을 듣는 라면이지만, 내 입엔 부족하지 않게만 느껴진다. 나는 라면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세상의 다른 어떤 음식보다 라면을 월등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조리된 라면에 묻어 있는 "그 허물"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라면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하루 한 끼는 고사하고, 한 달에 한 번 먹는 것조차도 심히 꺼려한다. 그녀는 웬만한 요리사급 조리의 라면인데도 맛없다고 말하기 일쑤다. 7성급 호텔 요리사의 손에서 조리되었다고 할 성 싶을 때에 마지 못해 "음... 괜찮군"이라고 말한다. 그 정도가 되어야 겨우 평범한 말에 칭찬을 조금 섞을 정도다. 그래서 라면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몹시도 냉정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모두가 맛 있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이정도 밖에 조리를 못하는가?"라고 핀잔을 놓는다. 황홀한 맛이라고 모두가 칭찬하는 그 순간에도 "간이 맛지 않는데?"라는 핀잔을 여전히 내밷는다. 라면 앞에서 불평을 놓지 않는 순간을 찾을 수가 없다. 그녀는 무척이나 라면을 싫어한다. 세상의 그 어떤 음식도 그녀 앞에선 라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페르마의 원리가 밝혀주는 "빛 되신 주님"의 성품, 그리고 "속히 일어날 일"의 깊은 의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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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원리가 밝혀주는 "빛 되신 주님"의 성품, 그리고 "속히 일어날 일"의 깊은 의미들 빛이란 직진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오해하여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물리학을 잘 아는 분들은 그렇지 않지만. pixabay 서로 다른 두 지점을 빛이 이동하려 할 경우 최단 거리를 택하여, 최단 거리인 직선거리를 이동한다고 여길 수 있다.  그 가정을 따르면, 두 점을 잇는 최단 거리는 직선뿐이다. 그래서 빛은 항상 직선 경로로만 이동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그릇된 생각이다. 특정한 공간 내에서는 그처럼 생각해도 별반 틀리지 않지만, 특정한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에서는 현상들을 전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이면 물, 공기면 공기. 한 종류의 물질(매질)로만 채워진 곳에서 빛은 직선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다양한 매질로 채워진 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매질들이 만나는 경계(면)에서 직선 방향을 벗어나 굴절되어 버린다. 가령 빛이 공기 중을 지나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 굴절된다. pixabay 물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과학적 사고에서는 페르마의 원리에 의해 "빛의 직진성"이 더욱 명료하게 설명되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려 할 경우, 경로를 선택할 때 2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첫째는 가장 짧은 경로를 택하는 이와 둘째는 가장 짧은 소요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택하는 경우다. 가장 짧은 경로를 택한 이는 "차량 정체"에 대해선 예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소요 시간이 매우 길어질 수 있다. 한편 가장 짧은 소요시간이 걸리는 경로는 정체를 피하는 경로이기 때문에 이동 거리는 멀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짧은 시간에 도착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어떤 경로로 여행하고 싶은가? 빛도 마찬가지다. 가장 짧은 거리, 즉 최단 거리로 이동한다는 것은 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말씀의 깊이를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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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말씀의 깊이를 깨달아... pixabay (이하 모든 그림) 진귀한 보석반지가 있었다. 세상의 그 어떤 반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귀한 것이다. 어느 날 자신의 온 생애 동안 전심을 다해 그 반지를 찾아 헤맸던 한 남자가 그 보석 앞에 이르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석이요 그 아름다움을 이길 반지가 어디 있겠는가? 노래가 그의 목 안에서부터 울려 퍼진다. 그 반지를 고이 간직한 체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 반지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의 손가락에 고이 끼워 주었다. "내 사랑하는 아내여."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으로 당신을 수 놓았노라." "당신은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도 더 존귀하고, 당신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다운 빛을 내며, 그렇기에 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남자는 아내를 사랑하던 자였습니다. 그 아내를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장식해 주어 그녀가 더욱 기뻐할 수 있게끔 해 주기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석을 찾아 헤맸던 것이죠. 아버지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 예슈아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세상"(a world)을 이미 사랑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사랑하는 "그 세상"(The world)에 예슈아를 보내신 것 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자녀된 여러분은 이미 그 분의 사랑을 받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 된 분들이 여러분 앞에 오게 된 것입니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이 존귀한 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미 더 큰 사랑을 받고 계신 분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a)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셨더라면,

유다에게 주어진 험난한 인생. 왜 그런 삶이 주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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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에게 주어진 험난한 인생. 왜 그런 삶이 주어졌을까? 아버지 야곱은 자신의 아들 유다에게 유언을 남김으로써 축복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 창49:9) ※ (사자)새끼의 히브리 원어 gur(גּוּר)는 "cubs"의 의미로써 "young"이라고도 표현된다. 그런데 gur(גּוּר)의 어원인 gur(גּוּר)를 살펴보면 "assails"라는 의미에서 출발된 것으로 "to stir up strife, quarrel"(분쟁을 야기하다)는 뜻을 갖는다. 사자라는 단어는 비단 유다에게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다"는 표현은 "유다의 사자"라는 표현으로 다시 불리면서 이 표현에는 메시아의 형상이 담겨 있다. 그런데 분쟁을 야기하는 의미에서 비롯된 사자 새끼에 대해 심판자(judges)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 물론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것이다. 삼손의 이야기를 보자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삿14:5-6) 삼손이 만난 사자는 젊은 사자(kephir; young lion)(כְּפִיר)다. 이때 대부분의 삽화는 삼손이 성체 숫사자의 입을 찢는 것처럼 묘사한다. highlander0423.deviantart.com 하지만 young lion을 검색해 보면, 새끼 사자 또는 갈기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숫사자 등의 모습을 보게 된다. 따라서 필자는 젊다는 의미가 강한 모습의 사자 모습으로 추론을 진행하기로 하면서 유다를 축복한 야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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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것은 현재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그래서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다. 오늘 이 순간이 지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시간. 바로 현재.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강하게 말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표준새번역)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에 대해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자. 그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의 일에 대해서만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기에 일용할 양식, 곧 그날 그날 주시는 하늘의 양식 또한 현재의 시간만에 들을 수 있는 아버지의 음성입니다.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순간이 가장 소중하기에 사랑은 항상 현재다. 사랑하는 연인의 음성을 들음이, 매 순간 순간이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할 수 있는 친밀함이 매 순간 순간 있으니 그 연인과 함께하는 내 마음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ixabay. 이하 모든 그림 여러분. 선물은 귀중한 것입니다. 그 선물을 놓치거나 헛되게 보내지 마십시오. 오늘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그래서 오늘을 이루는 아내의 오늘 모습은 평생 단 한 번만 볼 수 있는 선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순간 자녀의 모습도 평생 되돌릴 수 없는 단 한 번 뿐인 선물입니다. 그런 모습들을 아름답고 복되게 기록(mem; memo)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기억(memory) 속에...... 그리고 당신이 힘들 때 그 기억들을 회상(remember)하심으로 큰 힘을 얻게 되시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오늘은 선물(present; 현재)입니다.

나는 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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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온 들판에 녹음이 든다. 그 녹음이 짙어지면서 각양 각색의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들은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서 장차 열릴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제 철이 되면, 채소는 먹음직스럽게 자라고, pixabay. 이하 모든 그림 열매 맺는 나무들은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왜 열매를 맺지 못할까? 나도 나무인데. 나도 열매를 맺는 나무인데. 왜? 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일까? 채소의 씨는 그 해 봄에 땅에 뿌려진다. 그리고 그 해 여름이면 먹음직스럽게 자란다. 그런데 채소는 일년생이다. 열매 맺는 나무의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진다. 그 해 여름에 아주 조금 자란다. 작은 낙엽 몇 장을 맺는게 전부다. 가을에는 낙엽이 물들고, 그 낙엽마저 떨어져 버리고 앙상하고 가느다란 줄기 하나 남는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면,  어느새 열매를 견딜 만큼 줄기가 장성하게 자란다. 그 순간 그 나무는 비로서 기대감을 품을 수 있다. "아~ 나도 올해엔 열매를 맺을 수 있구나." 그렇다. 제 철이라고 해서 열매를 맺는게 아니다. 장성하게 자란 줄기는 다가오는 제 철에 열매를 맺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연약한 줄기는 다가오는 제 철에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이는 그 줄기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창조주 야훼 하나님의 배려다. 한 번 뿌려진 씨앗만으로 영원토록 열매를 맺는 나무는 매년 씨를 뿌려야 하는 채소와 다르다. 영원토록 열매를 맺는 자는 씨앗이 뿌려졌다 할지라도 비록 제 철이 온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준비해야 할 계절이 있다. 그 계절이 몇 번을 반복적으로 지나야 할지는 씨앗의 종류마다 다른 법. 고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지 아니 맺히는

황순원씨의 소나기,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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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ibooks.tistory 어린 시절 황순원씨의 "소나기"를 영화로 본 적이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40 중반의 지금까지도 그 내용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가끔은 이루지 못한 애틋한 어린 사랑을 생각하면 아직도 내 마음이 아려온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전공 서적을 보았지만, 그 내용이 아직까지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적은 없다. 그저 필요한 순간에 기억을 더듬어야만 기억 날 뿐. 황순원 씨의 소설이 생활에 필요한 전공서적보다 내 마음을 더 강하게 사로 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루지 못한 어린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애절함이 결말을 맺지 못한 체, 끝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여운(餘韻)이라 말한다. 이렇게 마음이 아리다 할 만큼 그 마음을 강하게 사로 잡을 수 있는 표현은 다름 아닌 여운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밝히 드러내 보이기 보다는 살포시 감추는 그 묘미가 오히려 읽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래서 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여운을 남긴다.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을 항상 부분적으로만 드러내고 있다. 우리에게 늘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 여운에 심취할 수 있도다.

[질병은 없다] Ep-2.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있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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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못한 질병들에 대해 "비전문가의 입장"으로서 규명해 보고자 한다. "비전문가"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 드린 점은 "필자의 글에 대한 맹신"을 우려해서다.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하시길 바란다. 의학분야에는 비전문가이지만, "많은 학자들에게 이미 과학적 증거로 제시되었던 다양한 분야의 연구결과"를 어떻게 검색하고 활용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익혔다고 말할 수 있는 물리학 박사임을 아울러 밝히는 바이다. 그러한 연고로 이 글은 일명 "썰"을 중심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입증된 "다양한 과학적 증거"들을 토대로 추론을 전개할 뿐이다. 이미 증명된 사실들을 "물리학자가 바라본 질병의 세계관"이란 시점으로 이해의 폭을 나누고자 하였다. 이러한 이해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실로서 확인된 과학적 자료들을 모으고 모와서 "생명 또는 건강"이라는 개념 안에서 서로간의 연관성을 지어 보고자 시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야와 분야를 초월하는 이해가 필요했고, (자연의 섭리에 준하는) 상식을 기준삼아 "가능성"이 엿보이는 사실들만을 연관짓고자 하였다. 이해는 가능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상식"(common sense)으로 여겨지는 자연의 섭리는 만인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가장 확실한 "참된 명제"(true)이기 때문이다. 이해의 수준은 "초중고"수준의 학문이면 충분하리라 믿는다. (기본 교과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지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건강은 오직 자신만이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누구나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의료 지식을 나누고, 이로써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필자와 마찬가지로 중증근무력증과 같은) 희귀성 불치병 때문에 고생하

믿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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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있을까? 무섭게 생긴 식칼 한 자루가 있다. pixabay 어린 아이에게 이 식칼을 맡기면, 그는 식칼의 두려운 부분만을 보게 된다. 곧 그 칼은 어린 아이를 상하게 한다. 그래서 보호자는 어린 아이와 식칼을 한 자리에 두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식칼을 둔다. 언제까지? 어린 아이가 성장하여 그 칼을 다룰 수 있겠다고 보호자가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pixabay 복 있는 사람은 ...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1:1)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눅16:26) 어린 아이가 점점 성장한다. 이런 일 저런 일 등을 겪으면서 성공과 실패를 번갈아가며 체득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신중하게 행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는 일들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자라게 된다. 그러자 보호자는 그에게 칼을 맡긴다. 그런데 이때의 그는 예전의 어린 아이가 아니다. 비록 여전히 그 칼은 자신에게 위협적이지만, 성공과 실패를 통해 체득한 경험들은 그 칼을 얕잡아 보지 않게 한다. 허나 더 이상 두려운 존재로 두진 않는다. 능히 다스릴 수 있는 존재라 여기게끔 한다. 그는 무섭게 생긴 식칼을 잡아 든다. 그리고 그 칼을 통해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지를 생각한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무엇이지? 내 재능은? 그 재능 가운데서 이 칼과 함께 할 수 있는 재능은 무엇일까? 내가 칼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재능은 어떤 분야일까? 등등 결정이 되었다. 그는 서서히 칼을 집어 든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칼을 손바닥에 붙이고서, 요리 재료들을 하나 하나 다듬어 간다. 이내 칼을 든 그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자신감이 깃드면서 도마를 두들기는 칼의 소리가 더욱 빨라진

가상인식(Cyber cognition)에 관한 쉬운 이해, 그리고 그 출발을 이해하기

가상인식(Cyber cognition)에 관한 쉬운 이해, 그리고 그 출발을 이해하기 가상인식 또는 가상현실 용어만 들어도 "어려운 내용"이라 쉽게 생각된다. 그래서 쉽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일수다. "The Holographic Universe"라는 영상은 "가상인식"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그내용의 일부를 나누고자 한다. 모든 설명은 "외부 자극(or 외부 물체)을 인지하는 인체의 과정이 전기적인 신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더욱 명확해 질 것이다. 이 영상들을 나누는 이유는 단 하나다. "특정한 사실에 대해 인지하는 것" 이 사실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즉 "인지"하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기존의 삶과 다른)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깨달음은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이전의 삶에 대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이전에 살았던 삶의 내용들이 "죄를 짓는 것"이라고 깨달았다면, 그 깨달음은 반.드.시 당신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인도할 것이다 . 진리가 있는 곳까지 이 사실들을 알게 되길 바란다. 입술로는 "깨달았다." 혹은 "인지했다"고 말하면서도,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 자신을 경험하곤 할 것이다.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면, 오늘은 알게 될 줄 믿는다. 사실 당신은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지(cognition) 또는 깨달음(understand)은 쉽게 얻는 것이 아니다.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다. 성경은 말한다. 너희가 들어도 듣지 못한다. 너희가 보아도 보지 못한다. (마13:13)  이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감춰 버리셨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