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 바라보는 자녀 교육

| 모든 경제는 순환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처럼 순환하는 구조를 갖는 만물의 이치는 많다. 그 중에 물(water)도 순환한다.

그래서 일까?
경제에서 순환하는 매체를 currency라고 말하고서 이를 화폐라고 말할 때, 물의 흐름 자체도 current라고 말한다.

고대 중국에서 선왕의 조건 가운데 하나는 범람하는 중국 황하강을 제대로 치리할 줄 아는 자라 했듯이, 물을 다스릴 줄 아는 또는 물을 제어할 줄 아는 것은 이토록 힘들고 어렵다. 그처럼 경제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것도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큰 틀에서 바라볼 때, 어느 일각에서 만큼은 물을 다룰 수 있는 비법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물 속의 분자 단위 하나 하나까지 그 흐름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령 양동이 하나를 가져와서 그 안에 물을 담아 둠으로써 일정량에 해당하는 물의 흐름 또는 이동은 제어할 수 있다.

이 같은 원리는 별것 아닌것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든 곳에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며 적용되고 있는 만물의 이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국의 국가 주석인 등소평과 미국의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였던 하이에크의 만남이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를 꼽으라 한다면 하이에크와 케인즈라 평가된다.

중국 국가주석 등소평은 기아에 허덕이는 무너진 중국 경제를 회복하겠다는 의지에서 경제학자 하이에크를 초청한다.

만화로 보는 맨큐의 경제학에서 (이하 모두)


그리고 그에게 중국의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농작물을 다루는 부분에서 있어서, 그것을 정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개입해서 국민은 그저 생각하지 말고 따라오라는 식의 구조는 기아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하이에크는 농부에게 자신의 농작물(중에서 정부에 세금으로 바치는 난 그 나머지)을 처분할 수 있는 권리(내지는 차별화 된 방식, 또는 자유)를 보장해 주라고 조언을 한다.


간단하지 않는가?


사실 내가 농사를 지어서 수확한 농작물이다.
이 농작물을 내가 내 마음대로 처분한다는 것이 무엇이 대단한 생각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상식(common sense) 그 자체다.

그런데 중국에서 발생한 거대한 경제 불황을 해소하는데 주요하게 처방된 그 해법은, 바로 '상식을 바로 세우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어느 누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손쉽게 다스릴 수 있겠으며, 그 거대한 나라가 처한 경제적 빈곤 상태를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겠는가? 소위 손자병법의 나라로 잘 알려진 중국에 만물의 이치를 아는 지식인이 없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지만 '상식'이라는 측면에서 상식이 갖는 가치를 눈여겨 보는 이는 그 순간에 등소평 정부엔 없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상식을 회복하자,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거대한 중국이 기아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을 전세계가 목격하게 된다.


여러분.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부모의 마음은 자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있으나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합니다.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고자 하는 부모의 노력이 얼마나 절실한지 그 수준에 대해서도 모두가 잘 압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자녀 양육법 또는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왜일까요?

자녀가 부모가 되고, 그 부모에게서 다시 자녀가 나오는 이러한 연결도 결국엔 순환 구조입니다. 어찌보면 순환 구조를 갖는 부분들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영역과 다룰 수 없는 영역이 명백하게 혼재되어 있는 부분들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가 들려준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상식적인 조언 하나를 우리들 자녀에게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요? 물론 하이에크의 조언은 case by case를 적시해준 모범답안은 아닙니다. 하이에크의 조언은 스스로 사고하려는 이에겐 명료한 답안을 제시해 주겠지만, 스스로 사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이에게는 어떠한 답변도 될 수 없는 그런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자신의 삶에서 그 일부만을 부모의 뜻에 순종하는데 할애하고, 나머지는 자기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함으로써 살아가'도록 부모가 결정해 보자는 것입니다. 부모가 최소한의 영역에서만 자녀의 삶에 개입하고, 나머지는 자녀가 스스로 행하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 중에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그런 과정을 허락한다는 뜻입니다.

자녀가 부모와 다르다는 그 차이점을 인정함으로써 자녀 자체의 다양성, 곧 차별성을 인정해 줄 때 자녀는 부모로부터 자신이 존중 또는 인격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자신이 인격적 대접을 받는다고 여기는 자녀는 이후엔 다른 형제를, 그리고 부모님을 대해서도 인격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일을 계획하고픈 미래의 소망을 품게 되면서, 자신의 바램을 성취하기에 필요한 학문들을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자기주도적인 인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에 있어서, 그럼 부모는 "학원을 보내야 할까? 아니면 보내지 말까?"라는 질문이 필요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학원에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는 부모의 의견이 아닌 자녀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이죠.

자녀의 문제에 대해 '상식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자녀 자신의 삶은 부모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자신이 스스로 처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고의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그리고 중국의 국가 주석인 등소평 조차도 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얻은 중국의 거대한 변화를 세계가 모두 놀라워 하지 않았습니까?

상식을 회복할 수 있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부모인 우리는 과감하게 결단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내 삶이 아니라는 그 차이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그 소유자에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이제는 돌려줘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마땅히 가졌어야 할 권리를 부모가 대신 혹은 빼앗은 거라 할 수 있겠죠.

이 사실은 저 자신도 최근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이에크를 믿는다는게 아니라, 만물의 이치가 적용되었던 그 사실을 신뢰하기에 저는 오늘도 그러한 결단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려 합니다.

자녀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사할 수 있는 그런 부모세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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