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마음씨 좋고 상냥하던 자가 갑자기 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까지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


모든 이들에게 신뢰를 주던
마음씨 좋고 상냥한 얼굴을 소유한 자가

갑자기
수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고

그것도 모자라
허다한 목숨을 앗아가면서까지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자신의 가족을
회복(부활) 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게 어려움을 줬던
지난 날의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복수에 집중하는 이를 가리켜 이 같이 말한다.
복수에
눈이 먼 자

라고. 

그렇다.

눈이 먼 자

는 눈 앞에 있는 것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단지,

자신이 보고 싶은 데로만
생각하고 행동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다.

| 그런 이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복수를 복수로 갚아야 할까?


만일 이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나는 가장 확실하다는 그 방법에 나의 모든 마음과 열정을 담고 싶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고 했다. 글을 읽을 순 있기 때문에 글을 읽어는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다음의 영상은 이해할 수만 없던 위의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를 수 있게끔 도와준다.




죄에 대해선 판결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죄의 무게 만큼에 해당하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으니, 사람 자신에게는 그 무게를 전가해선 아니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내리는 단 하나의 결단.

죄의 무게, 곧 죄의 삯을
사람의 마음에 새긴다.
면 어떨까? 사람의 마음 속에 새겨 놓되 어느 누구도 인위적으로 없앨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

그곳은 어디일까?

양심(conscience)
Leb; 아버지의 마음



양심에 죄의 삯을 새겨 놓게 된다면, 죄를 지은 사람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된다. 비록 그의 육신에는 어느것 하나 죄의 무게가 메달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죄인은 죄의 무게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이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양심의 가책을 소멸시킬 수 없다.

그가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가장 명확하고 지혜로운 이의 판결이지 않을까 싶다.


영상 속 국왕은 참으로 지혜로운 판결을 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바가 있다. 이 같은 판결이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여겨선 안 된다. 주역의 산수몽(교육)편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 규율을 견디는 아이가 있다면 그는 제자로 받아들여 가르치고, 참을성이 없는 아이는 제자로 받지 말아야 한다."

재판장의 판결을 의롭게 여기고서 스스로 판결에 순종하겠다는 '영접하는 자의 마음'을 가진 이에게만 적용해야 한다. 재판장의 판결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재판장에게 극진하게 아첨을 떠는 이에게 이 같은 판결을 내려선 안 된다. 성경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마7:6.개역개정)

일말의 양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는 자들, 곧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판결이란 뜻이다. 그렇기에 죄인을 대하는 순간에 죄인의 겉모습만 보고서 '그가 진정으로 뉘우치는 자일 것이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의 양심이 최소한의 크기만큼 이라도 남아 있는지 반드시 확인 또는 분별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죄를 지은 자가 아닐지라도,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 실수하는 이들을 대할 때가 많다. 그런 순간을 경험할 때라도 이 같이 분별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더욱 견고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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