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의 교훈(비유)을 배우다.


호두알과 전쟁

전쟁을 뜻하는 히브리 단어 מלחמה(milchamah)은 호두알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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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알은 단단한 껍질과 함께 부드러운 호두 알맹이로 이루어져 있다.
단단한 껍질은 부드러운 호두 알맹이를 감싼다.
이러한 구조를 전쟁이라는 단어에 적용해 보면,

  •  단단한 껍질은 mah(מה; 만나)
  •  그 안의 호두 알맹이는 lechem(לחם ; 빵)

에 속한다.


호두알의 껍질은 먹어도 소화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호두 알맹이는 다르다. 부드러워서 먹으면 소화가 되어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영양 성분을 흡수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


전쟁의 표면적인 모습 그대로를 본다면,

우리들이 쉽사리 받아 들일 수 그런 상황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생명보다는 죽음을 안겨준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요6:49)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우리를 단련하고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는 생명의 양식이 숨겨져 있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6:50)


그래서 이런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라 "진리의 전쟁"을 의미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그런데 이런 전쟁 곧 진리의 전쟁은 어디에서 펼쳐질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율법"(계명)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행15:10)

율법은 유대인 조차도 능히 메지 못하는 멍에다. 하물며 이방인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예슈아는 "가벼운 멍에 곧 능히 맬 수 있는 멍에"를 주시겠다고 강조하여 말씀하시니 율법을 아는 자들과 정면으로 대립된다.

이 사실을 "호두"에 비유하여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율법을 아는 자들은 자신들도 소화할 수 없는 "호두 껍질"을 먹거리로 준다. 그래서 그들이 전하는 내용은 호두 알맹이인데 불구하고 그들이 직접 행동하는 것은 호두 껍질을 내어 놓는다. 그래서 예슈아는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마23:3) 

음식이란 먹는데 중요성이 있지 않다.

무엇을 먹더라도,

  • "소화되지 않는 음식"이라면 그에겐 어떠한 유익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 "소화되는 음식"이라면 그에겐 유익함만이 나타난다.


율법 곧 계명은 이와 같다.

지킬 수 없는 수준을 할당한다면, 할당받은 이에겐 무엇하나 유익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지킬 수 있는 수준 곧 그가 지닌 믿음의 수준에서 능히 할 수 있는 수준을 제시한다면 그는 계명을 즐겁게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여러분을 향하신 야훼 하나님은 "여러분이 능히 맬 수 있는 멍에"를 예비하시고,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삶 속에 허락된 고난은, 여러분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 허락된 것임을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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