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의 대화는?
우리는 자녀와 대화를 나눕니다.
부모입장에서 "대화"라는 단어를 서슴치 않고 사용합니다.
"나는 내 자녀와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그 자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현시대를 사는 자녀들의 대부분은 말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대화가 안 되요!"
부모는 대화를 한다고 말하는데 반해 자녀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게 어떤 상황인가? 부모가 생각하는 대화의 개념과 자녀가 생각하는 대화의 개념이 다른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기획 방송은 당초 의도에 따라 촬영하는게 기본이다. 그러나 의도된 기획일지라도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서로가 부인하지 못하리라 본다. "대화"에 대한 우리네들의 생각을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다.
EBS에서 기획적으로 "부모와 자녀"를 한 자리에 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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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수준의 학생과 그 부모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양상을 살펴보았더니, (모든 부모가 이렇지는 않지만, 약간의 의도 안에서 진행된 내용으로) 0.1% 수준의 학생과 그 부모집단 간의 대화에 눈에 띄는 차이를 보였다.
먼저 부모와 대화를 마친 학생들의 표정에서 차이가 난다.
표정이 어둡다.
표정이 밝다.
대화 이후의 표정 차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의견 또는 생각을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았는지 혹은 묵살되었는지의 차이다. 물론 평소의 모습이 있었기에, 현재 나타나는 자녀의 모습을 지레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과거의 모습으로 현재의 모든 모습을 판단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는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
변화는
과거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이지 않을까 싶다.
허다한 사랑으로 과거의 모습을 덮은 채
지금 현재의 모습을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바라보아 주는
"부모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그렇기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부모의 마음에 수용된다면,
그리고 자녀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 자녀에게 있어서 대화는
즐거운 것이고 복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묵살되는 것, 곧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대화의 기회를 갖으면 갖을 수록 자녀의 마음은 피폐해질 것이다.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는
인격체와 인격체 간의 상호 의견 교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이를 위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서로간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있어야 할 것이다.
고로 성장된 부모가 성장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다.
자녀의 그릇됨을 지적하기 이전에, 부모된 자신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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