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 그런데 어디까지??


자녀된 우리는 심지어 부모님이 불신자일지라도 순종해야 함이 옳다. 그러나 어디까지 순종해야 할까?





예슈아를 비방하는 많은 이들은 이 사실을 가지고 교회(공동체)를 조롱하기도 하며, 많은 성도들 역시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부모와 자녀간 신앙적 대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곤 한다. 이는 부모에게 복음이 전달되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인지 모른 채 당연한 것인양 자행되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한 예를 생각해 보자.


한 가정이 있다.

부모는 범법자로서 살아가고, 그 자녀들은 그런 부모 믿에서 여느 가정의 자녀들처럼 살아간다.





어느 날 부모가 큰 아이를 부른다.


"이젠 너도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나를 따라 소매치기를 하자."


부모가 그리 말할 때, (신앙을 떠나) 온전한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라면 어떻게 답하는 게 옳은 것인지 안다.


"아버지. 저도 기뻐요.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측면이 강조된 상황에서 볼 때, 이처럼 답변하는 자녀의 모습은 참으로 좋은 태도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권하고 제안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분별》하지 않은 그 자체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사회가 규정하는 법 안에서 이루어지는 순종이라면, 이것은 모든 자녀의 마땅히 행할 모습이다. 그러나 사회의 규범 또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부분까지 이루어진 순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같은 차이는 세상의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바다.





신앙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함 역시 이와 같다.


12제자는 대제사상을 비롯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명령에 순종해야 했다. 그러나 그 순종은 법 안에서의 순종이고, 법을 벗어난 상황에선 그들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 법은 무엇일까?


선한 양심(conscience)이다.


고린도후서 1장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였다는 그 판단은 (사람에 의하지 않고) 우리 안에 부어주신 양심의 증언에 따라 행하면 된다.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한다."


고 말할 때, 세상 역시 가장 진솔한 증언이라 평한다.


디모데전서 1장

5. 이 교훈의 목적청결한 마음선한 양심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선한 양심에서 비롯된 사랑을 가져야 하는 자들에게 향한 자유다. 어느 누구에게도 판단받지 아니한다고 하신 그 말씀이 바로 선한 양심을 가진 이들에게서 살아 역사한다.



베드로전서 3장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우리의 선한 양심의 간구가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구원의 표를 안겨 준다.


히브리서 10장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지만 '악한 양심' 역시 존재한다. 그래서 예슈아의 보혈로 사함을 받은 양심, 곧 선한 양심으로만 우리는 판단의 기준을 삼아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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