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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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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세계에서(도) 어미는 단순한 양육에 그치지 않고 새끼들에게 다양한 기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날짐승은 새끼에게 날개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고, 들짐승은 새끼에게 걷는 법과 생존의 기술을 가르친다. 이것이 곧 자연의 질서다.​ 아무것도 모르는 연약한 새끼는 부모의 보호와 인도, 도움과 지도를 필요로 한다.​ 사도 바울이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인들 역시 바로 이러한 자연의 질서에 속해 있다. 한편으로는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도대체 어쩌다 사람들이 자연의 질서에 내재된 자명한 원리마저 도외시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을까?​ 이 자명한 원리는 세상의 지혜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데 말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가족' 중에서 그렇다. 야훼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그리고 온 우주 만물을 지으셨고, 그 만물 안에 그분의 모든 뜻은 자연의 질서로서 깃들어 있다. ​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 이 그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느니 라.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창세로부터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롬1:19~20.흠정역 자연의 질서에 내재된 자명한 원리, 곧 만물에 깃들어 있는 창조주의 뜻을 도외시 하지 않는 신앙인의 자세가 필요하리라 본다. 자연의 질서를 깊이 있게 이해함으로써 성경(에 기록된)말씀들 속에 감춰진 주님의 비밀스런 뜻을 더욱 밝히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이들로 성장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함은 깊은 연구가 필요한 그런 학문적인 것들이 아니다. ​ 자연의 질서가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자명한 것으로 밝히 드러내고 있는 '순리'다. 그래서 그 순리가 옳다고 믿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주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신 가르침인 것을

죽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있는 건 아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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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았다는 말과 살아있다는 말은 다르다. 의미없이 살아가는 것은 사실 사는 게 아니다. #산다는_것'은 의미를 갖는 것, 가치를 찾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런 이유에서 죽지 않았다는 그 사실을  살아있다라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자는 그가 살았다 말하지만, 그는 #이미_죽은_자'요 #이미_심판을_받은_자'인 셈이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8b.개역개정 그는 장차 올 자신의 죽음에 대해 무슨 준비를 하겠는가? 어떠한 기대감도 없는데.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은 자는 다르다. 살아있는 자의 모습은 다르다.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가장 가치있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의미있는 죽음을 대면하고 싶어서다. 이를 위해 그는 기꺼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던진다. 가장 의미있는 죽음을 만나고 싶어서.

한 알의 밀알이 장차 받게 될 그 영광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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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서운 추위가 온 지면을 덮으면 살아 있는 것 하나 없는 세상으로 변한다. 어느덧 세상을 온통 죽음으로 뒤덮던 그 추위가 물러나면서 따스한 햇살이 찾아와 얼어붙었던 땅을 비춘다. 햇살 아래에 농부가 모습을 드러내 열매 맺는 것 하나 없는 그 땅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윽고 창고에 숨겨 두었던 씨앗을 들어 나와 그 땅에 뿌린다. | 농부는 왜 씨앗을 뿌린 것일까? 열매 맺는 것 하나 없는 그 땅에 무엇을 기대하며 씨앗을 뿌린 것일까? 과연 황량한 그 땅에 뿌려진 씨앗은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일까? 농부의 손을 떠나 땅으로 내려오게 된 씨앗.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6) 씨앗이 땅에 떨어지자 이를 본 모든 이들은 큰 기대를 바라며 환호했다. 이제 당장이라도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 믿고서. 그 씨앗이 황량한 세상에 변화를 이뤄줄 그런 존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  그런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를 본 주변은 아우성을 친다. "이제 일어나야지!" "당신이 손을 뻗기만 하면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거야!" "가만히 주저 앉아 있지만 말고, 무언가 해 봐!" 하지만 그 씨앗은 묵묵히 농부에 의해 뿌려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몰골이 일그러지면서 썩기 시작한다. 급기야 주변은 광분하듯 소리친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 또한 클 수 밖에 없듯, 분노어린 광기에 사로잡힌 그들의 악담만이 들려온다. "한때나마 너 같은 것을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지" "너는 나를 철저히 속였어. 우리를 오히려 희롱했어" "너는 저주받아 마땅해" 온 몸이 썩어가고 있지만, 사방에서 악담이 쏟아지고 있지만, 씨앗은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

경매 유예 제도가 예견하는 다가 올 부동산 시장에서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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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19년 2월 9일 코로나 팬더믹 이전에 작성(된 뒤 2021년 8월 17일에 업데이트)된 글 로서, 주변에서 검색 가능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설명되는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충분한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노력했지만, 독자 여러분 스스로가 추가 자료를 수집하심으로써 모든 내용들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분별하시기를 강권합니다. ☞ 원문 보러 가기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서민들이 있다. 정부는 이러한 취약계층의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금융회사가 연체자들의 집을 바로 경매에 넘길 수 없도록 최대 1년간 담보권 실행을 늦춰주는 대책'을 세웠다. 이로써 연체자는 1년이라는 유예기간 동안에 보다 나은 가격으로 주택을 처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경매 유예 제도는 이처럼 서민의 생활 안정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안전장치로서 여겨진다. 이로써 은행권으로부터 대출을 해야 하는 이들은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의 고사성어 가운데 조삼모사라는 내용이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많은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려움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려움에 처한 그는 뜻하지 않게 원숭이들의 먹이가 부족해지는 일을 겪게 되었다. 원숭이를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상황에서 사육을 유지해야 하는 그에겐 원숭이들의 먹이감이 줄어든 일은 무척 큰 고민이다. 고민 끝에 그는 원숭이들에게 지급하던 배급량을 줄여야 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종전에 얼마의 배급량을 지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의 도토리를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랬더니 원숭이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서 저공은 배급량을 바꿔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은 들은 원숭이들은 매우 흡족해 했다. 이 고사성어가 의미하는 바는 해석하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열악해진 상황은 바뀌지 않고 눈 앞의 현실만 바뀌었을 뿐인데 이러한 술책에 고스란히 속아 넘어

신앙의 대표가 되려는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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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의 대표가 되려는 세대 흔히들 영적리더란 표현을 곧잘 쓴다. 그리고서 자신이 나라와 민족에 관한 영적 예언을 한다는 분들 역시 많이 만날 수 있다. ​ 그분들의 예언이 나라와 민족을 대표하는 예언, 또는 그가 나라와 민족을 대표하는 영적리더인걸까? ​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는다. 예슈아께서 인류의 죄를 사하러 이 땅에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영접하는 자 에 한해서만 예슈아는 그의 구원자요 영적 리더인 목자가 되신다. 반대로 영접, 곧 마음으로 믿지 않는다면? 예슈아는 그의 구원자가 되실 수 없다. 그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 구원자는 스스로 간구하는 자에게 임하실 뿐, 그의 심령에 강압적으로 임하시지는 못한다. ​ 또한 통치자는 백성을 그들의 소유로부터 몰아내려고 학대를 통해 그들의 상속 재산을 취하지 말며 (겔46:18a) 마찬가지다. 누군가 신앙 고백 혹은 간증을 한다. 그 내용을 듣던 중 누군가를 가르치려 는듯 간증 도중에 또는 간증의 내용에 대해 훈계를 하려하곤 한다. 간증하는 이가 도움을 청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 그때 훈계하려는 이는 스스로 영적 리더요 신앙의 대표가 되려하는 순간이다. 허나 어느 누구하나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훈계, 곧 그에게서 어떤 훈계도 듣고자 원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 그 순간 그의 훈계는 돼지에게 진주를 던짐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 신앙의 대표 또는 훈계를 주려할 때는 반드시 갈급해 하는 자에게 다가가서 주어야 한다. 오직 그렇게 갈급해 하는 이가 여러분을 신앙의 리더요 대표로 인정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아울러 누군가로부터 예언을 들었을 때, 그 예언이 나라를 대표하는 게 아닐 수 있다. 듣는 이가 영접하게 될 때 나라를 대표하는 혹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예언이 되고, 예언자는 신앙의 리더(대표)라는 < 인정을 받게 되 >는 것이다. 그러나 영접되지 않는 자에게는 그저 (나라와 민족을 향한) 많은 예언들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한다. ​ 따라서 영접하는

하라(Do it) 그리고 하지 마라(Don't it)는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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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Do it) 그리고 하지 마라(Don't it)는 계명 성경은 66권으로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주님의 뜻하심과 계획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식민 통치를 받고 있던 당시 누군가가 '나와 함께 저 정복자들을 쳐서 그들의 보물을 빼앗자'라고 제안을 해 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그와 함께 도적질을 하는 게 옳은 것일까? 아니면 그의 제안을 거부하고 도적질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일까? 도적질을 하게 되면 식민 통치자들에게 항거한 애국자라는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도적질을 거부하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일삼는 부도덕한 일로 양심의 질책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막막한 상황이다. 조언을 구해 본다. 한 사람은 말한다. "성경 속에 기록된 그 말씀을 기억해 보세요. 그 말씀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힘쓰라고 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정복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옳은 일이라 했다. 그 옆에 있던 사람은 고개를 저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육신의 유익을 도모하는 일은 죽음에 이르는 일입니다." 애국지사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신분을 떠나 모든 이들에게 정당한 일을 행하는 그런 자가 되어야 할까?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고민하던 중에 두 사람에게 각각 이렇게 질문을 하여 보았다. "성경 속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힘쓰라는 내용 그리고 육신의 유익을 도모하는 일은 죽음에 이른다는 각각의 말씀들을 제외하고 나면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또다른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말씀들은 어떤 경우를 지지할까요?" 에덴의 동산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과실수들이 있었다. 원없이 먹는다 할지라도 그 많은 종류를 다 맛보기란 쉽지 않을 터, 그렇다면 그것들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은 부족하고 역시 1년 12달도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야훼 하나님이 하신 말씀, 곧 '중심에 있는

중증근무력증으로 건강을 잃은 자가 회복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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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근무력증으로 건강을 잃은 자가 회복 될 때 | 남들보다 건강한 신체 조건을 타고 났던 나는 밤샘을 즐겼다. 누구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 걸 자랑삼아 했고, 자판기 커피를 하루 10잔에서 15잔까지 마시는 생활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 그렇게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debauchery life 하지만 연구원 생활 1년, 곧 결혼한지 1년 만에 중증근무력증을 앓게 되었고 모든 사회생활은 물론 화장실에 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까지도 철저하게 제한받는 생활을 살게 되었다. 눈물로 기도했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예슈아를 향해 매일같이 부르짖었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 중 치유받은 사례들을 거론하면서, 나도 이처럼 될 수 있다며 '믿음(belief)의 선포'를 연일 품어 댔었다. 숱한 치유의 은사자 분들, 예언자 분들을 만나 안수기도를 받았다. 기도 한 방이면 잃어버렸던 예전의 그 건강을 단순에 되찾을 수 있을거라 믿었다. 그러나 이내 믿음(belief)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덧 그 믿음 자체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수준에서 건강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혼자서는 화장실 볼 일도 제대로 볼 수 없던 이가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다녀오게 되었고, 상가 3층에 있는 교회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일조차도 버거워 했던 자가 3층 교회 전체를 청소하기까지 건강이 회복되고 있었다. 그런 회복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한결같이 요청하듯 말하였다. "집사님. 조금만 더 주님께 매달리듯 기도해 보세요. 치유를 해 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집사님. 내면의 죄을 깨닫게 해달라면서 회개에 더 집중해 보세요. 그리하면 치유가 될 거예요" "집사님. 신체의 치유가 늦은 이유는 집사님이 아직 주님의 뜻대로 온전히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세요." 등등 여러 이유를 설명해 주면서 내게 부족한 신앙

우리가 모두 나사렛 목수의 동역자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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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목공소의 연장들이 회의를 열었다고 합니다. 사회는 평소와 같이 망치가 맡아보았습니다. 그런데 회의 도중에 회원 몇 명이 반기를 들고 사회자 망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 " 망치는 항상 깨고 부수는 자요, 늘 소란을 피우는 자니, 여기서 떠나야 합니다. " ​ 그러나 망치가 말했습니다. ​ " 좋습니다. 나 스스로도 나의 결점을 인정하므로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떠나야 할 자가 있으니, 바로 대패입니다. 왜냐하면 대패가 하는 일에는 전혀 깊이가 없고, 늘 남의 껍질을 감싸기보다는 벗기기 때문입니다 . " ​ 이에 화가 난 대패가 말했습니다. ​ " 나뿐만 아니라 줄자도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줄자는 자기만 옳은 듯이 항상 남을 측량하므로 모두에게 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 그러자 조용히 듣고 있던 줄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톱을 지적하면서, ​ " 톱은 서로 연합하길 힘쓰기 보다는 분열을 조장 하고 있으니, 여기서 가장 불필요한 자입니다 . " ​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톱은 사포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 " 사포! 너도 너무 거칠어 . " ​ 이렇게 서로가 한창 다투고 있을 때, 목수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연장들을 총동원하여 순식간에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서로 약점만을 들추며 다투던 그들은, 결점이 많은 자신들이 이처럼 좋은 일에 쓰임을 받은 사실에 감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기뻐했다고 합니다, ​ " 우리가 모두 나사렛 목수의 동역자들이구나! "

목격자. 그가 진실을 밝히길 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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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그는 어떤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서 소극적이거나 꺼리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런 목격자를 향해 '이해할 수 없다'라거나 또는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다'라는 말로 비난하곤 한다. 하지만 자기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일, 곧 자기의 이익에 지대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면 어느 누가 거부하려 하겠는가? 국회의원 선거 기간이 되면, 평소 화려하고 근엄한 차림의 그들이 서로 앞다투어 하층민의 복장을 하고서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동행하는 그런 모습을 자랑스럽게 연출하곤 한다. 상류 사회에 계층인것처럼 살아가는 그들이 누구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낮은 계층민처럼 입고 먹고 웃기를 자청하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원직을 얻고 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소위 정의를 위한다던 그들의 공약은 말로써 맺은 허무한 약속이 되어 버린 채 그들은 상류 사회의 지배자가 갖는 모습으로 국민들을 군림하려 한다. 소외받는 이들의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 하층민의 터전으로 내려오길 꺼려한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정당이 추구하는 이익과 노선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를 펼치는 정당활동은 철저한 이익집단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심리적인 모습 대부분은 정치활동에서 여실히 관측할 수 있다. 오늘의 주제가 될 '사건의 진실을 밝히길 꺼려하는 목격자'라는 부분 역시 정당활동을 펼치는 정치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 내 정당의 이익과 부합된다면 그곳이 지옥 끝이라 할지라도 정치인들은 과감하게 뛰어든다. 하지만 자신의 정당 이익과 불일치한다면 그곳이 천국이라 할지라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부한다. 이익에 부합되느냐 혹은 부합되지 않느냐에 따라 목격자는 진실을 밝히려 하거나 혹은 진실이 밝혀지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럼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다른 많은 경우들이 있겠지만, 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