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이 장차 받게 될 그 영광을 생각하며...

 




매서운 추위가 온 지면을 덮으면 살아 있는 것 하나 없는 세상으로 변한다. 어느덧 세상을 온통 죽음으로 뒤덮던 그 추위가 물러나면서 따스한 햇살이 찾아와 얼어붙었던 땅을 비춘다.


햇살 아래에 농부가 모습을 드러내 열매 맺는 것 하나 없는 그 땅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윽고 창고에 숨겨 두었던 씨앗을 들어 나와 그 땅에 뿌린다.






| 농부는 왜 씨앗을 뿌린 것일까?



열매 맺는 것 하나 없는 그 땅에 무엇을 기대하며 씨앗을 뿌린 것일까?

과연 황량한 그 땅에 뿌려진 씨앗은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일까?


농부의 손을 떠나 땅으로 내려오게 된 씨앗.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6)


씨앗이 땅에 떨어지자 이를 본 모든 이들은 큰 기대를 바라며 환호했다. 이제 당장이라도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 믿고서. 그 씨앗이 황량한 세상에 변화를 이뤄줄 그런 존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를 본 주변은 아우성을 친다.


"이제 일어나야지!"

"당신이 손을 뻗기만 하면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거야!"

"가만히 주저 앉아 있지만 말고, 무언가 해 봐!"


하지만 그 씨앗은 묵묵히 농부에 의해 뿌려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몰골이 일그러지면서 썩기 시작한다. 급기야 주변은 광분하듯 소리친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 또한 클 수 밖에 없듯, 분노어린 광기에 사로잡힌 그들의 악담만이 들려온다.





"한때나마 너 같은 것을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지"

"너는 나를 철저히 속였어. 우리를 오히려 희롱했어"

"너는 저주받아 마땅해"


온 몸이 썩어가고 있지만, 사방에서 악담이 쏟아지고 있지만, 씨앗은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씨앗은 그렇게 죽어갔고, 이내 죽었다.

세상은 고요하다.

기대감이 사라졌고 실망감도 사라졌다.

모두가 할 말을 잊어버렸다.


따스한 햇살은 세상을 내리 비추고 있지만, 온 지면에는 먹을 거 하나 없는 황량한 땅이다. 모두의 시선이 농부가 씨앗을 뿌린 그 땅에서 멀어져, 이제 그 땅을 기억하는 이 하나 없던 어느날.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그 땅을 누군가 노크하듯 흔들고 있다.

세상이 숨을 죽이고 이 흔들림을 주시한다.


"과연 무엇이 황량한 이 땅을 흔들고 있단 말인가?"


수줍은 듯한 얼굴의 연약한 새싹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세상은 깜짝 놀란다. 너무나 어리고 연약한 그 새싹을 보고 놀란 나머지 말문이 막혀버린 그들이다. 자신을 지켜보는 허다한 눈들이 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새싹은 무럭무럭 자라 이내 줄기가 굵어지면서 가지를 내고 잎사귀를 낸다. 그리고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끝없이 자랄 것처럼 매일 매일 새롭듯이 자란다.


새싹의 자라는 모습에 또다시 놀라는 세상.

매일같이 변하는 그 모습에 세상은 역시 말문이 막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잎사귀 옆에 작은 꽃이 피기 시작하자 세상은 또다시 놀라면서 그 꽃의 화려함에 기뻐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꽃이 지자 세상은 다시금 슬픔에 빠져들기 시작하는데,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꽃잎이 떨어진 그 자리에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 꽃잎이 떨어진 그 자리에 작은 알맹이 하나가 있다.

모두가 숨죽여 바라보는데 그 알맹이가 자라고 자란다. 그러나 세상은 자신들이 찾던 열매가 아니었기에 낙심하며 실망한 채 그 자리를 떠나고 만다.


그리고 햇살이 약해졌고, 햇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

세상은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이제 곧 세상은 온통 살을 애는 듯한 매서운 추위로 덮힐 그 때가 다가오는데, 그들은 아직 열매를 구하지 못한 상황이다. 추위가 왔을 


때 열매를 소유하지 못한 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을 생각하니 두려울 뿐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는데, 그때 그들의 시선에 무언가 들어온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조차 잊고 살았었는데.



"저 매력적이고 먹음직 스럽게 생긴 저건 무엇이지?"


하나 둘 그 열매 앞에 모여든다. 이내 세상은 뛸듯이 기뻐한다.

온 지면이 꽁꽁 얼어붙는 시기가 올지라도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그 열매를 찾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함성을 부르며 말한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디에 있다가 이제서야 오셨습니까?"


그 열매가 말한다.


"당신들이 그토록 저주했던 그 씨앗입니다."




여러분.

창세 당시 이 땅에는 열매 맺는 것 하나 없던 황량한 땅이었습니다.


창2:4~5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너무 황량해서 그 땅은 죽음 만이 온 지면을 덮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죽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땅은 본시 죽음이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느날 땅을 경작할 수 있는 사람이 오더니 그 땅에 씨앗을 뿌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죽음으로 가득한 그 땅의 모든 것들은 숨죽여 땅에 떨어진 그 씨앗을 주시합니다.


"무슨 일이 생길까?"


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 한 가지의 일만 일어난 채.


시간이 흐르자 그 씨앗이 썩기 시작하면서 이내 죽어 버린 것입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씨앗이 죽음에 이른 순간 본시 죽음에 덮혀있던 그 땅은 발칵 뒤집히고 맙니다.


"저 씨앗이 어떻게 된거야?"

"야! 씨앗. 당신 어떻게 된거야?"


"나? 나 방금 죽었어"


"머? 죽어? 죽는다는 게 먼데?"


by EL korean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롬5:13)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이 죽음이야"

"나는 죄인이었거든. 그래서 그 죄로 인하여 죽은 거지"


"머라고? 죄인?"


"그래. 나는 죽었는데, 역시 당신들도 죽은 존재들이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롬5:19a)



"우리가 죽었다고? 그럼 우리는 죄인이라는 말이야?"

"죄가 먼데? 어떻게 죄와 죄인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는데?"


"내가 죄를 지어 죄인의 신분으로 이 땅에 떨어지면서, 내 몸에 율법을 함께 가져왔답니다. 그 율법이 기준이 되어 나는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죠"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롬5:20a)


죄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율법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것은 예슈아께서 메시아 이신 것을 인식하지 못함과 같습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b)


그렇기에 율법이 없던 당시, 죄를 죄로 여길 수 없던 그곳에 누군가 농부의 뜻에 순종하여 땅에 뿌려질 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아무로 인지하지 못하는 그 죄를 오직 그는 인지할 수 있어야 했기에, 스스로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야만 하는 이였습니다. 


그리고 죄인이었기에 마땅히 죽어야 하는 이치를 깨닫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농부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묵묵히 순종할 줄 아는 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것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죄인이었고, (죄인으로서) 마땅히 죽어야 하는 게 그의 소명일 뿐입니다.

그 일을 위해 순종했던 자가 있습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롬5:14b)




혹자는 아담을 향해 '창조주 야훼 하나님이 실패한 존재'라고 폄하합니다. 야훼 하나님의 첫 작품이자 첫 번째 실패작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담에 대해 설교에 담지 않습니다. 실패한 인생을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만 등장하는 인물로 소개하곤 합니다.


그러나 아담은 죄를 죄로 여길 수 없던 그 땅에, 율법을 가져온 유일한 존재입니다.




어떻게 실패한 이가 율법을 가져올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죄 많은 존재가 속죄 재물이 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낡은 가죽부대에 새 술을 담지 않듯, 율법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역시 합당한 존재여야만 가능합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롬11:6)


창세 당시 아담에 의해 율법이 세상에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율법을 근거로 예슈아께서 오실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성경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서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던 그 시선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주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그 방향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축복합니다.


아담은 장차 얻게 될 풍성한 수확을 생각하며, 기쁘게 죽음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농부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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