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독치독] 말라리아로 매독을 치료한 정신과 의사


1494년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1세가 서거하자 나폴리 왕국의 왕위에 대한 앙주 가문의 승계를 명분으로 프랑스의 샤를 8세는 25,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탈리아를 침공하게 된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콘도티에로 군대는 샤를 8세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엔 너무 무능력했기에, 몇 달에 걸쳐 프랑스 군대는 큰 저항없이 이탈리아를 통과하여 나폴리를 정복할 수 있었다. 



나폴리를 정복한 샤를 8세의 프랑스군은 그야말로 극치의 약탈을 일삼았는데, 그 가운데 대규모의 성범죄를 일으켰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매독이 유럽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인구의 15%가 매독환자였을 정도로 유럽에서만 약 400년 간 1000만 명 이상이 매독으로 사망했을 만큼 인류를 위협했던 가장 무서운 질병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니체, 슈베르트, 톨스토이, 베토벤 등도 매독으로 고생했다는 것을 그들의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성병으로만 국한되지 않는 이상한 매독이 있었으니, 매독에 감염된 후 약 15년이 경과하는 시점에서 발병하는 질병이 있었다. 신경계로 전이된 매독에 의해 뇌가 손상을 입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운동 장애가 일어날 수 있고 판단력이나 기억력 등이 저하도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서 결국에는 마비를 일으키고 더 심해질 경우 치매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다.



발병 후 약 3년 이후엔 죽음에 이르는 매우 위험한 질병으로서 특히나 30~45세 사이의 한창 때의 남성들 사이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었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의 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신경성 매독 환자들이 열병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매독 관련한 상태가 호전된 사례'를 목격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삼일열 말라리아에 감염된 환자로부터 (감염된) 피를 수혈받아 정신신경성 매독 환자 9명에게 그 피를 주입해 보았다. 당시 삼일열 말라리아는 퀴닌으로 언제든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서 다른 질병에 비해 비교적 무해한 질병으로 분류된 것이다.


말라리아 환자의 피를 주입받는 정신신경성 매독 환자들은 초반에는 말라리아에 의해 극심한 고열을 겪어야만 했고, 그 이후에 말라리아 치료가 진행되었는데, 그 결과  9명의 정신신경성 매독 환자 중 3명이 완치되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다.


'발열 요법'으로 명명된 이 치료법이 사회 전반에 끼치는 공로가 인정되어 192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된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는 바로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다.


말라리아로 매독을 치료하다


그가 고안해 낸 발열 요법은 말 그대로 '말라리아로 매독을 다스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는 이독치독(以毒治毒)의 대표적인 사례라 간주할 수 있겠다. 물론 페니실린이라는 치료제가 개발된 다음부터는 모두에게서 잊혀진 치료법이 되어 버렸지만,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백신만을 최상책으로 간주할 순 없다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성경에도 기록된 내용을 보면,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중략)...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

(마26:52)

고 했다. 칼을 앞세워 득세하려는 세력을 잠잠하도록 다스릴 것인데, 역시 칼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예슈아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이러한 사실을 화재 현장에서도 사용하는 바가 있다. 즉 맞불 작전이다. 




휴전선 근방은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수목들이 울창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가끔 북에서 남으로 바람이 불어올 때 북측에서 화재를 놓아 남측 초소를 비롯한 군부대를 위태롭게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이때 남측이 사용하는 대안책은 짐을 옮기는 게 아니다. 맞불을 놓아 북측에서 내려오는 불길이 더 이상 남측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맞불의 의미는 거대한 불길이 타들어가야 할 수풀을 미리 없애버려 옮겨붙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미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 부모는 자녀의 그릇된 행동을 쉽사리 바꾸지 못한다.

오히려 거센 반발만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서 부모된 이들은 그저 어쩌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자녀에게도 생명이 있듯이 세균이라 분류되는 미생물에게도 생명이 있기 때문에 미생물 세계에서 사용된 이독치독의 원리를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즉 자녀의 그릇된 행동을 바꾸는 데 있어서 또다른 자녀 내지는 자녀의 친구들을 통해 이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위 어른이 젊은 세대에게 훈계를 할려 하면 예상치 못한 거센 반발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젊은 세대에게 그들의 선배나 형이 다가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세게 반발할 것만 같던 이가 자신의 선배 또는 형 앞에서는 꼼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세대에겐 또 하나의 해법이 제안될 수 있겠다.

부모가 첫째 아이를 대상으로 엄격하면서도 온화함으로 예의 바른 자녀로 키울 수 있다면 그 나머지 자녀들은 첫째 아이에게 대부분을 맡겨 놓아도 올바르게 자랄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행실이 모범적인 선배 또는 친구를 만나게 해 줌으로써 자신의 자녀가 바뀔 수 있겠다는 기대감 역시 가질 수 있겠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27:17)

고로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어떤 부분에선 매우 간단해 질 수 있겠다.

우선 한 아이만을 두고 있는 부모라면, 어떤 선배 내지는 어떤 친구와 어울리게 하는 것이 자신의 자녀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돈과 명예 등이 아니다. 심성이 올바른 아이인지 혹은 약한 자를 괴롭힐 수 있는 아이인지를 부모세대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서 심성이 올바른 아이라 여겨지는 이를 자신의 자녀와 연결지어 주는 것이 부모 세대가 해 주어야 할 좋은 자녀 교육 중 하나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자녀가 어릴 때에는 현명한 부모에 의해 그의 친구가 결정되는 게 합당하겠다는 뜻이고, 성장한 자녀의 경우는 스스로가 자신의 친구를 찾아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 자녀에게 올바른 친구를 연결지어 줄 경우, 그 부모는 또래 아이들을 통해 급성장하는 자신의 자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가끔은 성장하는 자녀에게 보다 올바른 길을 언질해 주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니, 여유를 가지고 자녀를 지켜볼 수는 있겠으나 안도감을 느낀 나머지 무관심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독치독이라는 간단하면서도 원론적인 성격을 가진 창조의 섭리를 살펴보았다.

약을 다루거나 질병을 다루는 부분을 넘어서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닫고서, 내 자신의 부족함은 내 거친 성격과 유사한 또 다른 나를 통해 성숙한 모습으로 바꿔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이라는 성경 말씀이 어떤 의미에서 기록된 것인지를 오늘의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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