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중한 일은 누구에게 맡기는게 현명한 것일까?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분이 있다. 그런 분이 나를 방문하셨다. 이분을 모시는 일을 나는 어떤 직원에게 맡길 수 있을까?
갓 입사한 풋내기 사원에게?
아니면 오랜 기간 동안 내게 신뢰있는 행동을 보인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직원에게?
| 상황을 바꿔보자.
이번에는 나와 상관없는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원이 나를 방문했다. 이 판매원을 상대하는 일에 나는 어떤 사원을 보낼까?
갓 입사하여 회사일에 제대로 아는게 거의 없는 사원?
아니면 내가 아끼는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사원?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스스로가 더 잘 알것이라 생각하는 만큼, 이 상황을 대처하는 모습은 상식 그 자체다.
소위 잡상인을 상대하는 일은 건물 입구의 경비원 분들이 주로 처리하는 업무인 것이고, 귀한 손님들은 사장 또는 회장의 오른팔에 해당하는 최측근들이 맡아서 하는 주된 업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인에게 있어서 중요성의 우선순위에 따라 맡게 되는 사원들의 수준도 결정된다고 보는게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 그럼 잠시 교회 공동체라는 신앙의 모습을 연상해 볼 수 있겠다.
교회 공동체에서 성도들에게 어떤 일, 곧 헌신을 부탁 할 때가 많이 있다.
어떤 이에게 헌신을 부탁하는게 좋을지 대충 짐작이 가리라 본다. 찬양 인도자로 헌신을 부탁하려 할 때, 믿음과 신뢰할 수 있는 이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즉 준비된 성도에게 맡기는 것으로서. 새신자 등을 마중하는 헌신에 믿음과 신뢰할 수 있는 이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즉 준비된 성도에게 맡기는 것으로서.
이처럼 교회 공동체 안에서 행해지는 사역 하나 하나가 모두 귀한 존재를 대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이는 실제 삶에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다.
신앙을 떠나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삶의 이치로서.
내가 얼마 만큼 준비되었는가에 따라 내가 도맡아서 할 수 있는 업무의 수준이 이미 결정되었다 할 수 있겠다.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힘들어도 웃는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주변의 동료들을 격려할 수 있는 이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의 수준과 매사에 불평불만을 쏟아놓으며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업무를 다른 이에게 떠넘기기 급급하여 주변 동료들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이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의 수준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누구에게 더 값지고 의미있는 일을 맡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너라면 손쉽게 결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 성경을 주신 이는 이와 같다.
우리에게 말로만 "예수를 믿으십시오."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입을 다물고서 주께서 맡기신 업무에 충성하라고 하셨을 뿐이다.
이사야 53장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입술로는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야. 너도 믿어"라고 하면서 삶은 불성실하고 매사에 불만으로 가득한 이를 어느 누가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자신의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가 오히려 주변 동료들에게서 인정받는다는 것이 인지상정이요 상식이지 않겠는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 부분이 직장 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 이유는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모른다는 사실에
"너는 지옥갈거야!"
라는 겁박을 주면서 교회에 나와야 한다고 필요성을 제시하기 보다는, 자신의 성실한 삶을 보여줌으로써 주변 동료를 감동시킬 수 있는게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감동받은 동료가 교회의 문턱을 스스로 넘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종교적 성향을 제시하지 말고 본이 될 수 있는 그런 삶을 보여주는 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면 좋겠다.
오늘도 성실하게 그리고 주변 동료에게 도움이 되시는 그런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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