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은 자는 반드시 그 은혜를 나눠야 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법화경이라는 불경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라 한다.


만물의 이치, 곧 만물 가운데 숨겨 놓으신 야훼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의 수준으로 다가간다면, 세상의 어떤 명언들이 사람에게서 낳을 수 있겠는가?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의미는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만남과 헤어짐은 극명하게 다른 존재지만, 이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에하드)란 뜻이다.


남자와 여자를 각기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각자만으로는 생명을 낳을 수 없다. 고로 남자 혹은 여자라는 개별적인 상황에서의 '사람'이라는 개념은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창2:7a.흠정역



의 말씀처럼 생기를 부여받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함으로써 이루는 '한 몸'(에하드)는 생명을 낳을 수 있으니,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
이 되니라.

창2:7b.흠정역


이때의 온전한 하나는 비로서 '살아있는 혼'이 된다. 이 또한 '사람'(adam)이라 불린다.



만남과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홀로 존재하는 만남 또는 헤어짐 만으로는 인간관계에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없다. 생기는 만남과 헤어짐이 늘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만 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만남 만이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성도가 이웃 교회(공동체)로 이적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여, 행여나 이적하는 일이 생겨나면 그것은 선한 것을 빼앗는 악행으로 간주한다. 그러한 프레임에서 이젠 벗어나서 자유할 수 있기를 바라자. 행여 지옥으로 향한다면 모를까 성령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이적하는 이를 마땅히 축복해야 함이 옳지 않겠느냐고 권면하고 싶다.


​이같은 인식의 변화가 있다면 다음의 의문도 자연스럽게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것도 마땅히.
그런데 받은 은혜에 생명이 깃들기 위해선 어떤 우리의 결단과 행동이 뒤따라야 할까?

Photo by Elaine Casap on Unsplash


은혜를 받았다면,

반.드.시
그 은혜는 나눠줘야 한다. ​이를 증명하는 진리는

일만 달란트의 비유
안에 강하게 새겨져 있다. 은혜를 받을 줄만 알았지 베풀 줄 모르는 삶은 생기가 없다. 생기가 없는 아담처럼. 그의 삶은 어떤 생명의 역사도 이끌어낼 수 없다. 하지만 받는 것과 베푸는 것을 서로 합력시킴으로써 "받은 만큼 베푼다."는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는 선을 이룰 수 있는, 곧 온전한 하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써 이웃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이가 된다.



​이율배반적이지만,
복과 저주는 늘 함께 하듯이,
천국과 지옥 또한 내 안에 늘 공존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온전한 하나요. 생기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는데에만 집착하였다면,

이제는 그 은혜를 나누는데 집중해 보자. 받은 바가 없는 이는 나눠줄 것이 없다. 이는 죄가 아니다.

허나 받은 은혜가 있다면,
그것만큼만 나눠보자.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눅7:40~42.개역개정


많은 은혜를 받고 싶은 이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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