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를 소유한 유대인. 그 놀라운 비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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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그 상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 순간 달라진다.
우리는 이렇듯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그런 '시공간'(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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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살아가는 소소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화가는

자리를 펴고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 낸다.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있고, 이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화하지만 화가는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것들 가운데서 몇 가지의 포인트들 만을 택하여 자신의 그림으로 옮겨 실는다.

그의 그림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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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그림을 보게 된 철학자는 그 안에 무수한 것들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신비로운 진리가 무수한 것들 안에 섞여 있음을 알게 된다.
철학자는 그림 속의 그 신비로운 진리를 언제고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런데 그림 자체는 너무 크고 버겁다. 아울러 자신이 다시 그린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화가의 그림을 철학자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단순하지만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그리고 어느 누구도 쉽게 그 그림 속의 의미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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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자신의 책상에 작은 네모난 하얀 종이 하나를 펼친다.

화가의 입장에서는 그림 속의 작은 돌멩이 하나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철학자의 입장은 다르다. 무수히 많은 것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과 중요하지 않는 그래서 부수적인 것들로 나뉘어진다. 그림 상황의 본질적 의미를 훼손하지는 않은 수준에서 신비로운 진리를 중심으로 꼭 필요한 몇 가지 요소만을 택하여 낸다. 이렇게 택함 받은 요소들을 자신의 하얀 종이 위로 옮겨와 재배치를 한다. 그러자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처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이 그려진다.

철학자는 그것을 '기호'(symbol, sign)라고 부른다.

한편 택함받지 못한 요소들은 버려질거라 여겼었는데 사실은 하나도 버려진 것은 없었다. 철학자는 그 모두를 기호가 가져야 할 '의미'(meaning)안에 고스란히 담아 두었다.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 너희는 남은 빵 부스러기를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열두 광주리입니다."
(막8:198.새번역)


철학자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 녹아들 수 있는 요소들은 기호의 의미 안에 포함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수고에도 불구하고 녹아들지 못한 요소들은 포함될 수 없기에 결국은 버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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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에 의해 세상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기호는

가까운 이웃들을 중심으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전파된다. 처음에는 기호 낯설어서 낯설어 하면서 경계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경계심은 호기심으로 변화되어 간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기호가 자유롭게 옮겨다니면서 마치 정금이 제련되는 것처럼 필요없는 부분들은 점점 사라지고 필요한 부분들은 더욱 예리하듯 분명해져 간다.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삿7:4a)

32,000 명 → 10,000 명 → 300 명

이윽고 많은 시간이 흘러 철학자는 자신의 기호를

기호(Symbol)에서 문자(Letter)로의 변화
를 온전히 이룰 수 있게 된다. 이는 그림자처럼 상징적이며 비유적이기만 하던 기호에게 본체만이 가질 수 있는 명확함과 구별됨을 덧입힘으로써 문자로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단련하는 인고의 시간이 지나 기호가 문자로 거듭날 때가 이르자,

철학자의 책상 위에는 비로서 말려있는 두루마리를 쫙 펴지면서 네 귀퉁이를 지닌 양피 종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철학자는 단호하지만 조심스럽게 그 문자, 곧
상형문자
(hieroglyphics)
하나를 두루마리 위에 적어 놓는다.

이렇게 모인 문자들은 '히브리인들의 문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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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중략)...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롬3:1~2)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문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 문자를 잃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시69:28)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사진일까? 아니면 그의 인생일까?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10:20)
기록되는 것은 이름이다. 이름은 무엇으로 기록될까? 동명이인 곧 동명다수인이 되는 현실 속에서 그 이름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 모두 수록될 수 있을까?


  • 실제 상황이 그림이 되고,
  • 그 그림이 기호가 되며,
  • 그 기호가 문자로 변하여 된
상형문자는

그의 인생 전부를 이름안에 능히 넣을 수 있다. 그 이름은 히브리어로 수록된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20:15)
히브리어로 자신의 이름을 얻지 못한 이는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하지만 성령에 이끌리어 히브리어로 자신의 이름을 얻은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의 이름이 생명책, 곧 하늘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받을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되는 이 하늘은 어떤 하늘일까?

우리가 눈으로 능히 볼 수 있는 sky일까? 아니면 하늘왕국이 있다는 the heaven일까? 그것도 아니면 공중 권세잡이들이 웅거하는 'the other heaven'일까?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중략)...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계6:12~14)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여섯째 인이 떼어질 때 두루마리처럼 말리는 그 하늘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하늘이 말리는 이유는

구원받을 이들의 이름을 더 이상 적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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