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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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에 대한 기억   신호등 앞에서 무단 횡단을 하시는 분을 보았다.  ' 왜 기다리지 못하고 위험하게 건너는 걸까? ' 물론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불가피하게 무단 횡단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제외하고, 습관적으로 무단 횡단을 하는 분들을 이야기 하려 한다.  문득 개 행동 전문가인 강형욱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강아지가 자신의 집(케이지)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경우, 케이지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단다.  그런 강아지를 상대로 케이지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킬 때 쓰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기억이다.  케이지 안에 강아지 간식을 넣어주고서, 케이지 안에 들어가면 항상 기쁜 일이 있었다는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기억을 갖게 된 강아지는 주인이 '케이지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리면, 즐겁게 케이지로 들어간다. 무단 횡단을 하시는 분도 그런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인내하는 것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었으리라. 그의 삶을 오목조목 따져본다면, 인내를 통해 좋은 일을 경험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내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질 못한다.  조급한 행동이 오히려 더 나은 것을 얻었다는 기억이 강해서, 인내하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손해보는 그런 느낌만 든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조급하게 행동하고 인내라는 말은 거들떠 보려 하지도 않는다. 좋은 기억 은 삶 을 아름답게 만든다. 하지만   ...

관포지교. 그 안에 깃든 사마천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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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문화권에 속한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 하나는 '고사성어'라 할 수 있다. 고사(古史)란 말 그대로 과거의 역사를 일컫는 말로서 간단히 말하면 옛날 이야기다. 하지만 곰곰히 들여다 보면 고사성어 안에는 역사에 능통한 이들에게만 보이는 '만물의 이치'가 늘 깃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옛 조상들의 삶에 대한 지혜가 담긴 이야기로 여길 수 있다. |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치가 담긴 옛 조상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치가 담겼다 해서 그 이야기가 몹시도 진부하고 지루한 것은 아니다. 대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즐거워 한다. 춘추라는 역사책이 관포지교라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비밀을 감춰놓았던 것같다. 관중이 어려운 지경에 처할 때마다 아우뻘인 포숙은 관중의 변명을 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제나라의 제일 높은 재상의 자리에 천거하면서 자신은 그 아랫자리를 마다하지 않았지요. 그것은 관중의 재주를 포숙이 일찌감치 보아 냈기 때문입니다. 관중은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다." 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 말에 사마천이 감추어 놓은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안다'는 뜻을 가진 지(知)라는 한자입니다. 이 앎은 그냥 앎이 아니라 알아봄이고 그 봄은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아 내는 것입니다. 감추어진 자질이나 소질을 알아채고 보아 내는 것을 뜻하지요. 관중의 이야기가 적혀 있는 <관안 열전>에는 알 지(知)라는 한자가 모두 열여섯 차례나 나옵니다. 관중과 포숙보다 한참 뒤 사람인 공자는 안다는 것에 대해 훗날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안다는 말은 사람을 알아본다는 뜻이다." 라고 말이지요.  '사마천의 사기 이야기. 춘추오패2'(글. 유중하)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그렇다. '앎...

아가서에 숨겨 놓은 신랑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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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흔히들 등장하는 이름들이 있는데, 대개 '바~~'라고 시작하는 이름들이다. 오늘은 그런 이름들에 대해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 가 길 가에 앉았다가 막10:46b 예슈아께서 여리고 성문을 나가려는 즈음에 만난 자가 있다. 그는 걸인인데, 여리고 성문 근처 또는 그 일대의 길목에 자리잡고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으니, 정황상 여리고 시민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성경은 그를 바디매오라 부른다. 그리고는 디매오의 아들이라고도 말한다. '디매오의 아들'은 히브리어로 'בן טימי' '바디매오'는 히브리어로 'ברטימי' bibleHub.com 성경 말씀을 토대로 정황상 추측해 본다면, '바디매오'는 소경의 이름이지 않겠느냐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그의 이름이 아니다. 바디매오 그 자체가 '디매오의 아들(후손)'이라는 뜻의 히브리 표현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마16:17a 마찬가지로 '바요나' 역시 이름이 아니다. '요나의 아들(후손)'이란 뜻의 히브리 표현이고, 실제 이름은 '시몬'이 된다.  | 왜 조상의 이름을 가지고 다녀야 할까? 그 이유는 소위 '건넛마을 복실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출신을 이야기하는 표현방법이다. 자신의 조상 내지는 자신의 정체(성)를 늘 먼저 소개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표현을 근거로 보면, 복실이는 도처에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놈도 복실이, 저놈도 복실 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복실이만을 정확하게 지명해서 부르고자 할 때, '건넛마을(에서 온) 복실아~'라고 부르면 된다. 또는 '아랫마을 김첨지의 아들, 복실아~'라고 부르면 내가 찾고자 했던 ...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은 내가 알던 그것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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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은 내가 알던 그것과 다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4:4 |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성경에는 마치 '떡과 함께~'라는 뉘앙스로 표현되어 있다. 그럼 예슈아는 어떤 기록을 인용했을까? 예슈아께서 인용하신 그 말씀을 찾아 보자.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3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개역개정으로 살펴본 신명기의 말씀에서도 '떡과 함께~'라는 뉘앙스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이야기 하나만 잠시 살펴보길 원한다. 우리가 흔히들 아는 명언으로서 에디슨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 천재는...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굉장히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정작 에디슨은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그가 했던 정확한 말은 무엇일까? 에디슨 그가 당시 인터뷰를 했던 신문기자에게 했던 말은 1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 99퍼센트의 노력은 소용이 없다 - 에디슨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말과 에디슨이 실제로 했던 말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천재가 만들어진다'는 말은 '1%의 영감과 함께' 중요한 무엇이 또 있는데 그것은 '99%의 노력'이라는 뉘앙스로 메시지의 의미가 전달된다. 그런데 실제 에디슨이 했던 그 말은 이와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99%의 노력'은 중요하지 않고, '1%의 영감을 받았느냐는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흔히들 열심히 노력한 자의 모습을 갖기를 원한다면, 99%의 노력...

속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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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라 자부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사회 전반을 명확하게 드려다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2차 대전 당시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을 강하게 지배했던 나치의 세력을 보면, 그들에게는 '선전선동의 미학'이 있었다. 불과 80여년 전의 시대인데, 지금의 시대보다 지식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그들은 선동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예리한 시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쳤다는 그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다. 당시 선전선동 의 달인이라 평가받던 요제프 괴벨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 선동은 단 한문장으로도 가능 하지만 그것을 해명 하고 증명 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 되었음을 밝혀 냈을때 이미 대중은 선동 되어 있는 상태다. " 하나의 문장을 이용하여 선전을 한다. 그러자 그 선전 문구를 보고 들음으로써 군중은 선동된다. 이를 보고서 사실 규명을 하겠다며 반대진영은 무수히 많은 증거들을 수집하여 제시한다. 그렇게 사실 규명을 증명할 증거들이 제시되는 시점에서 군중은 이미 증거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 이유는 세뇌된 이들에겐 증거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들이 믿고 있던 오래 전의 그 사실만이 진실이고, 그 진실을 외면할 경우 자신들에게는 죽음이 찾아올 것으로 믿기 때문에 (죽음을 원치 않는 군중들은) 결국 증거를 외면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괴벨스의 말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면서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선동되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선전이 진행되고 군중은 선동되어 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 코끼리 길들이기 코끼리에 비해 인간은 매우 연약한 존재다.  그런데도 인간은 거대하고 강한 코끼리를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 매우 어린 아기 코끼리의 뒷다리를  말뚝에 묶어 놓음으로써 말뚝 주변을 벗어날 수 없게...

소비 심리와 군중 심리는 같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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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심리 Consumer psychology 와 군중 심리 Crowd psychology 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쉽사리 답하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질문을 바꿔보기로 한다.​ 소비 심리와 군중 심리 가운데 어떤 부분이 같다고 생각하지? 오늘의 나눔은 이 부분에서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소비 심리와 군중 심리는 모두 심리학에서 파생된 것으로, 하나는 기업과 같은 곳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치집단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매우 귀중하게 사용되는 이론이다. 소비 심리를 중시하는 기업의 목적은 소비자의 소비 팬턴을 이해 하겠다는 것으로서, 그렇게 이해 가능한 소비 패턴은 기업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갖게 하였다.  소비자의 소비 패턴을​ 기업의 의도대로 컨트롤한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통해 사물의 현상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해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현상을 이용한 기기를 만들어낸다. 즉 현상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다룰 수 있는 기기를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들의 편리한 삶을 위해 활용한다. 소비자의 소비패턴을 이해하고자 하는 기업의 목적도 이와 같다. 소비자의 소비패턴을 따라가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소비 패턴을 기업이 인위적으로 조장control하여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옮겨놓게 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기업의 이윤은 더욱 늘어나게 되면서 평생 고객을 둔 안정적인 기업으로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의 고객은 소비자다 라는 공식을 우리 모두는 잘 안다. 마찬가지로 정치집단에서도 그렇다.  | 누구든 정치에 뜻을 둔 이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현실이 있고, 그러한 바램은 자신들의 이상적인 이론에서 비롯된다. 즉 자신의 바램에 부합되는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정치적 목적의 전부다. 어떤 이는 자신이 독재를 펼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또 어떤 이들은 모두가 공정하게 주어진 기회 안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어떤 이들은 인간의...

강한 손으로 이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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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 또는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사는 삶'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설교자 분들은 '성령의 이끄심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내용이 담긴 설교가 단 한 번으로 끝나던가? 그렇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설교자 분들의 설교 내용의 대부분은 '성령에 이끌리어 사는 삶'의 내용을 반복적으로 담아 낸다. 반복적이듯 그리고 마치 주기적이듯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에 대해 강조하신다.  왜 그럴까? 그러한 삶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반복하여 말한다. 더 정확하게는 '어떻게 살는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는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여' 결국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데 어떻게 그것을 행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성경에는 그러한 내용들이 이미 담겨있었다. 다만 우리들의 눈이 가리워져 있어서 그 사실들을 볼 수 없을 뿐. 그때에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파라오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인해 그가 그들을 가게 하고 강한 손으로 인해 그가 그들을 자기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시고 (출6:1.흠정역) 출애굽6장은 모세가 아론과 함께 파라오를 만나 '내 백성을 가게 하여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위해 명절을 지키게 하라'고 말을 했는데, 파라오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오히려 히브리인들을 더욱 괴롭힌 상황에서 진행되는 그 뒷이야기다. 야훼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서 순종하는 태도로 모세는 당당하게 파라오 앞에 섰었다. 그리고 야훼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파라오를 향해 그대로 예언을 말했'다. 이쯤 되면 파라오는 전능자의 뜻을 전해 들었으니, 순순히 그분의 뜻대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파라오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했다. 오히려 히브리인들을 더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