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여전히 어둠을 남겨 놓으신 이유
성령 사역의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이라는 부분을 접한 이래로 영적 전쟁을 실감하게 되었고, 그 가운데 안수기도를 통해 내면의 어둠을 떼어내는 #축사 #deliverance_from_sin'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한 때는 축사 사역을 통해 내 안의 어둠을 제거하는 게 너무 즐거웠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둠을 제거해 나가는 정도 또는 수준에 따라 영적 성숙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축사 사역에만 전념하던 내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겨났다.
"안수 기도를 받았음에도 왜 나는 여전히 아내와 싸움을 하는 걸까?"
내 삶의 변화가 나타나서, 아내와 정신없이 싸우던 예전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않기를 내심 기대했었는데 막상 현실 속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변화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내면 속에는 아내와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아주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축사 사역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러기를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최근 교회(공동체) 안에서 60세의 나이에 가까운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사도 바울에게 제거되지 않았던 사단의 가시'라는 내용이 언급되면서, 나도 모르게 '사단의 가시를 남겨 놓으신 이유는, 바울을 겸손한 자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후12:7b, 9a)
야훼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자에게서 온전해진다.
이 말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데, 축사 사역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던 나에겐 '복음'Good News 그 자체였던 것이다. 비록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내 의식에게 강한 빛을 비추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
축사의 과정에서 어둠이 떠나고 떠나지 않고는 주님이 결정하신다. 그런 중에 어둠이 내 안에서 떠나지 못한 채 여전히 남아 있어야 하는 그 이유는 단 하나.
'나를 참된 사람, 곧 내게서 창조주 야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기 위함'
이었다. 고로 내가 앞으로 할 일은 정해졌다.
더 이상 어둠을 없애는 그 일에만 나의 모든 관심을 집중하기 보다는, 그렇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살아가기를 애쓰기만 하면 된다.
내 안에 어둠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나는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자요 병든 자다. 실제 내 #중증근무력증 또한 완치단계에 이르렀을 뿐, 완치되지는 않았다.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처리되기만을 기대했음에도 주께선 일부분만을 처리하셨다. 그래서 완벽하게 청소해 주지 않으신 주님의 도우심을 내심 의심하기까지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주님의 도우심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성취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교만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내가 언제든 방심하면 실족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한 실족을 통해 내 삶에는 늘 예슈아께서 함께 해 주셔야만 한다는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하셨다.
고로 나는 홀로 설 수 있는 자가 아니기에, 홀로 서지 못하는 이들을 얕잡아 보지 않게 이끄셨다.
이로써 나는 더 이상 내 내면 속의 어둠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된다.
단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명하신 바를 따르면 그것으로 족하다.
정해져 있는 율법의 행위, 또는 신앙인의 삶의 방식에 의존하기 보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축사 사역을 통해 얻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주님의 명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게 #내_삶의_이유'가 되어 버렸다.
그리하면 주께서 필요하실 때, 합당한 축사를 일으켜 주시어 내면의 어둠을 적당히 제거하실 것이다. 그러나 축사를 많이 받았기에 혹은 내면의 어둠이 많이 제거 되었기에 내가 의로운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갔기 때문에 의롭다 하는 '공식적인 인정'(certification)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내게 내면의 어둠과 축사 사역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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