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슈아를 사랑하는 그 마음. 이젠 그 크기를 잴 수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욕심이라는 부분이 있다. 이웃에게 해를 주면서 까지 나의 욕심을 챙기는 것에 대해선 나무라는 게 옳지만, 이웃에게 해를 주지 않거나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않는다면 이를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만큼은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욕심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런 가운데 10만원을 벌 수 있는 일과 1억원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상식 선에서 우리는 어떤 일을 선택하게 될까? 당연히 마음이 가는 쪽은 1억원에 상응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위험부담이라는 부분은 배제하기로 하자.



결혼을 한 이후 줄곧 혼자서 곰곰히 생각해 오던 부분이지만, 차츰 결혼 생활이 무르익어가게 되면서 확신으로 다가오는 게 있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혹은 누구의 품 안에 있을 때 평안함을 느끼느냐는 점이다.



이웃 부인들과 함께 있을 때, 그 자리는 매우 조심스럽다. 혹시나 성적 비하 또는 성폭력에 해당하는 언행을 하지는 않을까 싶은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와 단둘이 함께있는 그 자리 만큼은 세상 그 어떤 곳보다 평안하다. 마음이 평안하고 몸도 자유롭다.




방귀를 뀌더라도 부끄럽지 않는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를 비하하는 말 자체도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상대를 높여줘야 겠다는 그런 의식적 행동도 갖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하는 자리를 선호한다. 그 누구보다도 아내와 함께 이야기 하기를 선호한다. 이러한 나의 행동이 다른 주변의 남편들 눈에는 꼴불견스러워 보일 순 있겠으나, 어쩌겠는가.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의 수준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을.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가 예슈아를 사랑하는 그 행함에도 이러한 삶은 반드시 영향을 끼쳤다.


나는 누구보다 예슈아를 사랑한다.


교회의 목회자 분과 대화하기 보다는 예슈아와 대화하기를 선호한다.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예슈아께서 설명해 주시는 그 설명 듣기를 더 선호한다. 예언자의 음성을 듣기 보다는 예슈아의 그 음성 듣기를 더더욱 선호한다.



그렇기에 예슈아의 음성을 (목회자와 같은 누군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예슈아, 그분의 음성을 직접 듣어야만 하겠다는 그 생각으로 내 마음은 불타 오르고 있다.







분명하게 듣지 못한들 어떠하리요.


제대로 그분의 뜻을 행하지 못한들 어떠하리.

다만 그분의 음성을 듣겠노라는 열정만은 숱한 실수가 반복될지라도 예슈아의 음성이 들리는 자리로 나를 한결같이 인도한다. 평소 말귀가 어둡다는 핀잔을 듣곤 하지만, 그래도 예슈아의 설명만큼은 제대로 들어보겠다며 시도 때도 없이 기도를 한다.



길을 걷는 중에도,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에도, 그리고 누군가와의 대화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도 예슈아께서 내게 말씀하시지는 않는지 늘 예슈아께 집요하리 만큼 말을 건넨다. 질문하고 또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답변이 오지 않으면 답변이 올 때까지 주시하면서 기다리고, 답변이 오면 대화가 혹시 끊어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하면서 다음 질문을 위해 곰곰히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예슈아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명료하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기에 행하는 그 모습으로 내 사랑의 수준이 평가 받을 수 있듯이, 내가 예슈아께 행하는 그 모습으로 사랑의 크기는 평가 될 수 있겠지요."



"저는 누군가를 통해서 예슈아의 음성을 건네 듣고 싶지 않고, 누군가를 통해 예슈아의 안부를 전해 듣고 싶지 않아서 직접 듣고 직접 보기 위해 매순간 노력합니다."




"이것이 예슈아를 사랑하는 제 마음의 크기입니다."



사랑은 매우 추상적인 단어다.


그 크기와 너비와 길이와 깊이를 잴 순 없다.

하지만 사랑은 매우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 일상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사랑은 반드시 측량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사랑하는 마음(loving)과 계명을 지키는 행동(keeping)은 그 의미가 함께 연결되어 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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