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서유기에서 엿들었다. (예슈아의) 제자는, 바로 이것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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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기에서 엿들었다. (예슈아의) 제자는, 바로 이것이닷!!! '신약 성경'에서 주로 언급되는 단어를 찾으라 한다면, '제자'라는 단어가 그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제자라는 단어를 우리들은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빈번하게 접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제자라는 것은 어떤 의미의 단어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는지 질문할 수 있을까? 여기에 한 이야기가 있다. 제자라는 단어를 우리들에게 보다 쉽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이야기다. '서유기'라는 이야기는 종교적 차이를 떠나서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익히 잘 아는 이야기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설화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서유기는 풍자와 해학을 담은 글 이라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자주로 놀러간 도서관에서 알게 되었다. 50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종교적 차이를 떠나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 수준의 도서로 분류되어 있는 (아이들을 위한) 서유기를 읽어보게 되었다. 서유기의 내용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옴니버스 형식이란? 한 가지의 공통된 주제나 소재를 중심으로 독립된 짧은 이야기 여러 편을 엮어내는 이야기 형식. 스토리 내 시간의 흐름이 일부 있을지라도 각 에피소드끼리의 연속성이 없거나 서로 영향을 주지 않고, 캐릭터와 기본 배경만을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의 한 에피소드에서 '제자의 의미'를 알 수 있었기에, 그 대목을 잠시 소개하려 한다. 삼장 법사는 멀고도 험한 여행길에 올랐다. 어느덧 오행산을 지나게 되었는데, 갑자기 산 전체가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공 "법사님, 어서 오세요! 무척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위틈에 끼어 있던 손오공은 겨우 고개만 내놓은 채 애원했다. 오공  "법사님을 눈이 빠지라 기다렸습니다. 어서 저를 좀 구해 주세요!" 삼장 법사는 손오공에게

단 한 사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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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사람을 찾습니다. 나의 나아가야 할 길을 가로막는 바다가 있습니다. 그 바다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뚫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극복해 나갈 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이처럼 거대한 그리고 매우 두려운 바다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실까요? 왜 우리의 삶에 이런 고난이 찾아오도록 허락하셨을까요? 울고 또 울었습니다. 목이 쉬도록 불러 보았습니다. " 주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럴 수 없습니다. " " 왜 이곳으로 보내셨습니까? " "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나요? " 대답이 없습니다. 주님은 주무시는 듯, 깊은 침묵 가운데로 들어가셨습니다. 내 목숨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대적들이 나를 치기 위해 내 목전 앞까지 다달았습니다. 불안이 나를 포함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사로 잡았습니다.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몸이 나도 모르게 떨고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 외칩니다. 모두가 눈 앞의 바다를 바라보며 목 놓아 울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오직 그 사람만이 군중을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14:13~14 그렇습니다.  군중은 자신을 두렵게 하는 그 바다를 바라보고 울고 있는데. 그래서 그들이 얻은 것이라고는 고작 낙심밖에 얻는데.  그는 달랐습니다. 희망을 주시는 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그 사람만이 희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희망을 얻은 이가 두려워 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이를 바라볼 줄 아는 자 만이 허둥대는 무리들을 온전한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바로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해 그 바다 앞으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가 듣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

나 가진 재물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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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희 시인이 가사를 작성한 곡이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참으로 오래 전부터 불러 오던 찬양이었다. 힘들 때 나의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게끔 내 입술에 울려 퍼지던 찬양이었다. 오늘 가정 예배를 드릴 때 이 곡을 불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오늘은 이 곡이 내게 다른 메시지를 주었다. 내가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있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였다. 내게 있지 않는 것을 통해 주님을 보려 하지 말라고,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통해 주님을 느끼려 하지 말라고 내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명확하면서도 분명한 방법이다. 예슈아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내가 가진 것을 통해... 내가 받을 것을 통해... 예슈아를 볼 수 있다. " 는 이 사실이 내게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렇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으로 예슈아를 보려 했으니, 이보다 힘든 일이 어디 있겠으며 반면 내가 가진 것만으로 예슈아를 볼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확신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내 삶에 관심을 갖고, 내 삶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내 삶의 전부를 가리켜 범사라고 하니, 내 삶의 모든 것을 통해 나는 예슈아를 볼 것이요. 내게 주신 내 삶의 모든 것이 열릴 때, 나는 그것을 통해 '열린 영안'으로 주를 찾으리라.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어느 누구보다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며 축복합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 그러나 냄비 안의 개구리로 남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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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냄비 안의 개구리boiling frog에 대해 먼저 잠깐만 설명합니다. 개구리가 냄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가운데, 개구리를 냄비 안에서 죽이려는 계획자가 있습니다. ' 어떻게 하면 냄비 안에서 개구리를 죽일 수 있을까? ' 하고 그는 고민합니다. 그리고 '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며 머리에 번뜩이는 하나의 멋진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제로 진행합니다. 어떻게 진행해 나갈까요? 개구리가 차가운 것보다 약간 따스한 것을 좋아하나 봅니다. 그래서 냄비 안의 물 온도를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올립니다. 그러자 개구리는 몸을 무리하게 자극하지도 않으면서 따스하게 하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아 냄비에 머물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이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너무 좋아서 자신의 현실을 충분히 만족하게 됩니다. 한편 사방이 가뭄이 들어 모든 샘이 메말라 버린 상황에서 물을 찾아 다니던 두 마리의 개구리가 오랜 시간 뒤에 우물을 하나 발견합니다. 한 개구리는 "야~ 물이다. 이제 살았다"라고 말하며 주저하지 않고 그 우물에 뛰어 들려고 하는데, 다른 개구리는 이를 말립니다. "저 우물을 좀 봐봐. 지금 당장은 좋은데 이 물도 말라 버린다면 우리는 저 안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죽고 말거야"라고 말하며, 아쉽지만 다른 우물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이처럼 어떤 개구리는 따스한 냄비의 손길이 매우 매력적이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고 냄비 밖으로 뛰쳐 나갑니다. 죽음이 도사릴 수 있고 혹독한 추위가 앞을 가로막을 지라도, 그는 스스로 노력하여 사는 삶을 택합니다. 반면 떠나가는 개구리를 보면서 "너는 세상 사는 법을 몰라서 그래. 세상이 주는 혜택을 받으며 사는 게 나쁜 것이 아닌데 너는 참 별나다"라고 핀잔을 놓으며 냄비가 주는 혜택에 한껏 들떠 있는 개구리가 자랑스럽게 소리 높여 말합니다. 냄비 밖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개구리는 그 소리

[어른에게 들려주는 이솝우화] 제비와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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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잡을 때 사용하는 끈끈이 넝쿨에 새순이 돋아나자, 그것을 본 나이 지긋한 제비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 이거 큰일 났는데. 저 나무가 자라서 끈끈이가 나면 사람들이 그것으로 우리 새들을 잡을 텐데. "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자 새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어 해결책을 찾기로 생각했다. 여러 새들이 회의에 모였다. 나이 지긋한 제비는 모인 새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 했다. " 우리가 살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 하나는 우리가 힘을 합해서 상수리 나무에 매달려 살아가는 끈끈이 넝쿨을 떼어 내어 스스로 말라죽게 하는 것입니다. " 이 말을 들은 다른 새들은 이구동성으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 그렇게 귀찮은 일을 누가 한단 말입니까? " 나이 지긋한 제비는 숨을 한 번 고른 후 입을 조용히 열었다. " 그게 싫다면 음...다른 방법이 한 가지 더 있긴 합니다. " 강하게 거부감을 드러내던 새들이 선심을 쓴다는 듯이  " 그게 무엇인지 들어나 봅시다. " 라고 거들먹 거리면서 말한다. " 우리 모두가 사람들을 찾아가 부탁을 하는 겁니다. 끈끈이로 우릴 잡지 말아 달라고. " 제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들은 또다시 빈정거리며 한 마디씩 해댔다.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사람들이 우리의 그런 부탁을 들어 줄 것 같소? " " 부탁하고 싶거든 혼자 보시오! " 모두 떠나가 버린 상황 속에서 제비만이 홀로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사람에게 하소연했다. " 끈끈이로 불쌍한 새들을 잡지 말아 주세요! " 제비의 하소연을 들은 사람은 말했다. " 다른 새들을 위해 이렇게 찾아와 부탁을 하다니, 너느 참으로 신통한 새구나 " 제비의 착한 마음에 감탄한 사람은 제비를 자기 집에 불러들여

[어른에게 들려주는 이솝우화] 부자집 아들과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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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솝 우화 중에서 '부잣집 아들과 제비'에 관한 이야기다. 부잣집 외동 아들로 태어나 매일 같이 놀고 먹던 그에게 부모가 죽으면서 막대한 유산까지 남겨 놓았다. 그의 생활에 대해 만류하는 부모조차 사라졌으니 이제는 부잣집 아들의 방탕한 생활은 말릴 이는 한 사람도 없는 상황이다. 그의 방탕한 생활은 하루도 쉬지 않고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방탕한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윽고 물려 받은 자신의 집마저 팔아 먹은 이후 그에게 남은 것은 두툼한 외투 한 벌만 뿐이었다. 돈 한 푼 없던 그였지만 그래도 외투를 입고 있어서 그나마 매서운 추위는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철 이른 제비가 예전의 자신이 살던 집 처마로 날아든 것을 본 그는 " 이제 곧 봄이 오겠는걸. 그렇다면 이 외투도 필요없겠군. " " 외투를 팔아서 술과 맛있는 음식을 사 먹어야 겠다. " 라며 한 벌 밖에 없는 외투를 냉큼 팔아 버리고는 술과 음식값으로 모두 탕진해 버렸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날씨는 다시 추워졌고, 추위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그는 길 위에서 '얼어 죽은 제비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그 제비는 외투를 팔기 전에 보았던 그 제비였다. " 제비야, 네가 죽은 것도 안 됐지만, 너 때문에 분별하지 못하고 한 벌 뿐인 외투를 팔아버려 이제는 내가 얼어 죽게 되었으니 이를 어쩐단 말이냐! " 그는 후회를 하였다 .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겐 더 이상 있지 않았다 . | 평소 자신과 자신의 재산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특별한 징조'를 보았을 때, 이를 자신의 삶을 탕진할 수 있다는 하늘의 뜻으로 이해해 버린다. 좀더 신중하게 판단하려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더 누려볼 수 있겠느냐는 부분으로만 집중하는 나머지 '징조에 대한 분별'을 하기보다는 그 징조를 자신의 편리에 맞도록 합리화 해 버린다. 그리고 그릇된 결과에 도달

베테랑 드라이버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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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운전수)를 꿈꾸는 이가 있다. 그는 자신이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자동차에 기름이 없다면 운전수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할지라도 움직일 수 없다. 바퀴 또는 엔진 등의 고장이 있다면 운전수가 고함을 치며 나무랄 지라도 자동차는 움직이질 않는다. 드라이버를 꿈꾼다는 것은 자신은 가야할 방향을 결정하는 일만 할 뿐, 그 외의 모든 일들은 다른 누군가가 해 주어야 한다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드라이버는 자신의 차량 상태를 누구보다 명확히 이해해야만 한다. 차량과 같은 하나의 시스템을 지휘/통제하는 드라이버라 할지라도, 그가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독불장군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 모든 시스템은 이처럼 '함께' 연합해야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현명한 드라이버라면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여 줄 그 시스템을 누구보다 존중하는 자여야만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세차를 하고, 실내에선 악취가 나지 않도록 청결상태를 유지해 주며, 더울 때와 추울 때를 대비하여 각종 상태를 점검하고 조율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명령을 내리는 자가 운전석에 앉아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정작 긴요하게 써 먹어야 할 순간에 차량은 드라이버의 명령을 배신하고 만다.  하지만 평소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마다 관심을 쏟는다면, 그 시스템(차량)은 긴요하게 써 먹어야 하는 순간에 절대로 드라이버(의 명령)를 배신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기에 베테랑 드라이버는 자신의 차량을 누구보다 애지중지 하는 자를 의미한다 볼 수 있다.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그 무엇보다 노력하는 자다. |  베테랑 드라이버의 이야기처럼, 정치를 꿈꾸는 이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정치를 꿈꾸는 이는 국가라는 시스템의 운영을 의미한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국가의 시스템이 운영되고 통제된다. 이러한 과정은 드라이버가 차량을 운행하는 것과 같음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국가 시스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