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그리고 인간이 공존할 수 있을까?


부활의 몸이라 함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슈아께서 부활하실 때의 육신을 일컫는다. 반면 육의 몸이라 함은 (부활의 몸과 차별화 하기 위한 개인적인 표현으로서) 현재 살아서 움직이는 우리들의 육신을 일컫는다.


부활의 몸과 육의 몸에 대한 정의를 간략하게 설명 하였기에, 다음의 질문에 대해 우리는 좀더 명확하게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부활의 몸은 천국에 들어갈 때 우리들의 육체가 된다고 우리는 말하고 또한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럼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와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의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육의 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육체다. 그런 육의 몸을 가진 자와 부활의 몸을 가진 이가 공존할 수 있겠느냐는 부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길 원한다.


| 공존할 수 있을까?


한 공간에 함께 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어쩌면 매우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사실로 답변할 수 있으리라 본다.


'공존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예슈아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예슈아께서는 40일간 제자들과 더불어 지상에서의 삶을 더 이어나가셨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행1:3)


즉 부활의 몸을 지닌 존재가 육의 몸을 지닌 존재들과 함께 40일간 공존했다는 뜻이 된다. 부활의 몸을 지닌 존재와 육의 몸을 지닌 존재들이 이렇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거나 혹은 천국에 들어간 자들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40일간의 여정이었지만, 천국에 속한 자가 땅에 속한 이들과 함께 동거동락을 한 것이다.


| 이건 어떤 의미일까?

이 사실을 정반대의 경우로 해석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쉽게 말해 지옥에 들어가게 될 존재 또는 지옥에 거하는 존재가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한시적인 시간일지라도) 함께 동거동락할 수도 있겠다는 측면에서 그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서 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까지 가능하게 되면, 천국에 거하는 존재와 땅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 그리고 지옥에 거하는 존재가 동시에 공존할 수 있겠다는 추론 역시 가능하다고 본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욥1:6)


한 마을 안에 한 공동체로서 땅에 속한 자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곳에 천국에 거하는 존재와 지옥에 거하는 존재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천국과 세상 그리고 지옥이라는 3 종류의 차원이 하나의 장소(또는 시공간)에 공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 이게 가능할 수 있을까?


만일 이러한 추론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실제 삶에서 이러한 대상들을 한 번 쯤은 경험했을 법도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오늘 뜻하지도 않은 좋은 일을 경험했어"

"아마도 그는 분명 천사일거야"



"오늘 너무 힘든 일을 경험했어"

"아마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야"


흔히들 하는 말이기에 거북스러운 표현도 아니다. 하지만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이런 일상의 표현들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 경향이 짙다. 설교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들에 대해선 마음 속에서 부터 거부하려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중략)...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창18:1~2)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삿13:16)


위의 경우에서는 최소한 함께 식사를 했거나 식사를 대접한 경우다. 이는 아브라함과 (삼손의 부친)마노아의 눈에는 인간 그 자체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몸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육의 몸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부활하신 예슈아의 경우, 제자가 그의 못 박혔던 손바닥을 만지는 것까지 허락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악수와 같은 스킨쉽 역시 가능했으리라. 부활의 몸을 지닌 존재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는 전혀 눈치 챌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성경에 기록된 이러한 경우들을 (모든 이들은 아니지만) 한 번 정도는 경험한 적이 있을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지만) 지옥에 거하는 존재와의 조우 역시 경험이 있을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다면, 인터넷 상에 나도는 '신비한 영상'같은 류의 내용들에 대해 색다른 느낌을 갖게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상당수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거짓 영상이겠지만, 어떤 영상들은 진솔한 내용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해 본다.


영적인 현상 그 자체를 인정하기 어려워 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나눔에서는 영적인 현상은 낯선 것이 될 수 없다는 의미로 개인적인 견해를 함께 나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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