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의 비하인드 스토리] 두 형제의 말할 수 없는 비밀
어떤 가정의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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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들이 그가 말하는 것처럼 되는 '권위적인 삶'(창2:19b)을 살아 온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권위에서 벗어나 자신의 원하는 바대로 가정을 꾸려나가고자 노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권위를 벗어나지 못하연 늘 전전긍긍하시는 어머니(창3:16b)를 둔 두 형제의 이야기다.
-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창2:19b.새번역)
-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창3:16b.새번역)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하도 늘 먹을 것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가장 좋은 것을 보면 늘 '가족에게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가지시는 그런 분이셨다.
하루는 들녁을 거닐던 중에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러운 과일 나무를 발견한 어머니는
-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창3:6a.새번역)
곱디 고운 탐스런 과일을 따서 양손 가득히 들고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것을 아이들에게 먹이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을거야"
"아이들이 잘 자라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
와 같은 부푼 꿈을 꾸니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게만 느껴진다. 집으로 들어온 어머니는 깨끗한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과일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을 불렀다.
"식탁에 맛있는 과일을 준비했어요. 와서 드세요"
어머니는 식탁에 턱을 괸 채로 남편과 아이들을 넌즈시 바라본다. 그리고는
'엄마. 정말 맛있어요!'
'여보. 정말 맛있는걸!'
'엄마 정말 대단해요. 당신 정말 대단해!'
라는 말들이 자신을 칭찬할 것을 기대하니 너무 설레어 어쩔 줄 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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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일인가. 남편과 아이들에게선 예상치 못한 반응들(출16:19~20a)이 나타난다.
- 모세가 그들에게 아무도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었다. 그랬더니, 남겨 둔 것에서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풍겼다.(출16:19~20a.새번역)
"엄마! 이거 맛이 왜 이래요?"
"여보!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무에 달려있을 때만 해도, 나무에서 달려있던 열매를 그 자리에서 따서 먹을 때만 하더라도 맛이 좋았었는데. 열매를 품에 안고 가져오던 중에 그 맛이 변하여 버린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이해해 주려고 하지 않고 나무라기만 한다. 그래서 맛없는 과일을 먹게 된 모든 잘못을 아내에게만 돌린다.
- 그 남자는 핑계를 대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창3:12.새번역)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내가 잠시 무언가에 홀린거야. 그래 내가 못나서 그래!"라는 말로 자기 자신을 한탄해 하며 우신다.
-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창3:13b.새번역)
두 형제는 이같은 모습이 싫었다. 그러면서 큰 아이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지도 배려하지도 않는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는 말만하고 우리 가족을 위해 실제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라며 아버지의 역할 부재에 대해서 심하게 분노한다. 그리고는 집 밖으로 나가버린다. 한편 작은 아이는 엎드려 울고 있는 어머니의 곁에 다가가
"엄마.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괜찮아요."
라는 말로 어머니를 위로하고는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아빠. 다음에는 우리가 직접 맛있는 과일을 찾아서 엄마랑 맛있게 먹어봐요"
라며 집안의 분위기를 다시 활기차게 바꿔보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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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하루가 가고 한 달, 두 달이 가면서 곡식이 무르 익었다. 형과 동생은 자신들이 애써서 키운 것들을 준비한다. 형은 농사를 지었고, 동생은 양을 키웠다. 양을 키우는 동생을 향해 형은 항상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아우야. 우리가 먹을 것은 이 곡식들 뿐인데, 너는 먹지도 못하는 그 양은 왜 키우느냐?"
이 말을 들은 동생은
"내가 잡아먹지는 않지만 신기하게도 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내가 어디에 가던지 늘 나만 따라다녀."
"나는 이렇게 나를 따라다니는 이 양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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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랬다. 형은 가족의 먹거리를 책임지겠다는 '책임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말만 하는 권위주의의 아버지에 대해 늘 불만이었다. 아울러 어려운 가정 형편에 도움도 되지 않는 동생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자 형은 자신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남들에게 보란 듯한 가정을 꾸미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러서
"이제 우리는 나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창조주 야훼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려 한다."
"너희는 각자가 키운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와서 제물로 바칠 준비를 하거라"
형은 한달음에 밭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보라는 듯이 가장 좋은 곡식단을 가져와 제단 위에 올려 놓고는
'아버지 보세요. 저는 말만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보기 좋고 먹음직스러운 탐스러운 곡식을 키워냈습니다.'
하며 의기양양하게 제단 옆에 팔장을 끼며 서 있었다. 헌데 동생은 도착하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나타난다. 사실 동생의 입장은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다.
'제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무엇으로 준비해야 할까?'
'이 모든 양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와 함께 해 온 것들인데'
'그 동안 쌓인 정들이 얼만데, 내가 어떻게 이것들을 제물로 바칠 수 있지?'
아깝다기 보다는 친구 이상으로 소중하기에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다는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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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창조주께서는 내가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를 창조하셨다고 하셨지?'
'내 양들이 소중하지만, 나는 엄마와 아빠가 더 소중해. 그럼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양을 잡아서 창조주 야훼 하나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지?'
동생은 자신이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어린 양을 잡았다. 그리고 그 양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아빠와 엄마를 내게 보내주신 야훼 하나님께 고맙다는 인사(와 칭찬)를 해야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홀가분해 졌다. 제단 앞에 나가보니 형이 인상을 찌뿌리며 기다리고 있다.
'너는 왜이렇게 늦은거야?'
라며 쏘아보듯 동생을 노려 본다. 하지만 동생은 형의 그런 기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양 한 마리를 제물로 바쳤다. 그러자 형은 몹시 놀래며 동생을 저지하려 했다.
"너는 도대체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창조주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으라고 명하신 것(창1:29)을 제물로 삼아야지, 먹으라고 하지 않은 것을 제물로 삼는 멍청한 놈이 어디있느냐?"
사실 그렇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말에 의하면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창1:29.새번역)
사람은 피(Blood)를 지닌 동물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권위를 중시하시기 때문에 자신이 말씀하신 야훼 하나님의 그 내용 또한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형은 곡식을 재배하였고 그렇게 재배한 곡식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한 절차라고 여겼다. 그리고 아버지 조차도 이렇게 드리는 곡식에 대해서 틀렸다는 말씀이 없이, 제단 위에 제물로서 놓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런데 동생이라는 녀석은 달랐다. 창조주께 동물을 드리려고 한다. 이건 창조주 야훼 하나님의 의도와는 너무나 상이한 멍청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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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개역개정)
형의 생각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우리는 식물을 먹거리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 창조주껜 어떤 것을 제물로 드려야 마땅하겠는가?'
'창조주께 고기를 드리면, 우리는 (먹지 못하는) 고기를 받는다'
'창조주께 곡식을 드리면, 우리는 (먹을 수 있는) 곡식을 받는다'
그런데 동생 녀석은 이처럼 간단 명료한 사실 조차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버린다. 그런데 더더구나 놀라운 일은 동생이 제물로 삼은 어린 양에 대해서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는다.
'그토록 권위, 권위하면서 자신이 하는 말에 복종하기를 바라신 분이 동생의 행동에 대해서는 모른척 하시네?'
형의 마음은 권위주의 아버지에게 또다시 실망하게 된다. 급기야 아버지가 그토록 강조하는 '권위'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생각을 갖기에 이르자,
'아버지가 저렇게 행동하시는 것을 보면, 분명히 제사를 드리는 것조차도 그리고 제사를 받는 창조주 야훼 하나님 조차도 신실한 존재는 아닐 것야'
형은 스스로가 '신념'(마7:12)으로 삼은 것에 맞춰 의식을 치루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그러면서 동생이 하는 모든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로 한다. 한편 동생은
'내가 그토록 사랑하며 가끔은 나의 생각도 전하고 그의 생각도 물어 본 그런 어린 양이예요'
'내가 친구처럼 지내던 것이니, 나를 사랑하여 내 아빠와 엄마를 보내 주신 야훼 하나님께 가장 귀한 선물을 드립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서, 어린 양을 제물로 올려 놓는다. 어린 양이 죽어가는 그 순간 '그의 심령이 둘로 찢어지는 고통'(마27:51, 창37:33~34)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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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27:51.개역개정)
-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중략)...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창37:33~34.개역개정)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셨기에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를 창조하)신 야훼 하나님을 생각하였기에 동생은 마음을 부여잡고서 제물을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곡식단과 어린 양에 불을 붙였건만, 곡식단에 있던 불씨는 꺼져 버리고 어린 양에 있는 불은 활활 타오르는게 아닌가.
-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18:38.개역개정)
제단 앞에 있던 아버지와 형, 그리고 동생 모두 놀라워 했다. 아버지는 형과 동생의 어깨를 함께 토닥거리며 격려해 주었으나, 형은 무엇에 홀린듯 멍하니 서 있었고 동생은 도 손을 높이 들고서 할렐루야를 외치듯 기뻐했다. 형은 아버지의 격려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내가 무엇을 잘못 했단 말인가?'
'나는 하라는 대로 다 했지 않는가. 내가 복종하지 않는게 무엇이간데 나에게서 타당하지 않음을 발견하였단 말인가?'
'권위? 그래. 권위자의 말대로 다 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냔 말야'
가족의 먹거리를 책임지던 그가, 올바른 먹거리만을 복종하여 재배했던 그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찾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는 분노의 화살이 동생에게 향했다.
'저 녀석은 본시 잘못된 출발이었어. 그런데 왜 잘못이 아니지?'
'저 녀석은 권위의식이라곤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권위의식에 철저한 나를 뛰어 넘을 수 있지?'
'계명을 철저하게 지킨 나는 오히려 잘못이고, 사랑 타령만 해 대는 저 녀석이 옳다고?'
'그래. 그럼 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계명을 어겨도 된다는 말이겠지?'
형의 요동치던 마음은 이내 잠잠해 졌다. 폭풍 전야의 바다처럼 고요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망망대해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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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자신의 제물이 받아졌다는 그 자체에 너무 기뻐한다. 비록 곡식을 드리진 못했던 그였지만, 자신의 마음이 인정받았다는 그 사실에 동생은 하염없이 감사에 또 감사하며 기뻐하며 지낸다. 그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양들과 함께 들녁으로 나간다. 그런데 형이 다가온다.
"아우야. 곡식을 추수할 때가 되니, 내 마음도 한층 편안해 졌구나. 그래서 오늘은 너와 함께 들녁을 거닐고 싶다."
형이 이같은 제의에 동생은 흔쾌히 승락한다. 그리고 자신의 즐거움에 형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형의 무겁고 느린 걸음에 비해 가벼운 걸음을 내딛는다.
한참을 갔을까?
좋은 목초지가 나온다. 양들에게 한적하게 쉴 만한 곳이다. 동생은 이곳에서 양들에게 휴식을 주고 자신은 형과 함께 주변을 거닐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뒤에 있던 형을 향해
"형. 우리 여기서 이야기하면서 놀까?"
라고 이야기를 하려던 찰라에, 무언가가 자신의 뇌리를 향해 강하게 내리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두 눈은 점점 흐릿해져 가고 그 앞에는 흐릿해져만 가는 형의 모습이 있다. 손을 내어 형을 불러보지만, 형의 손을 잡아 보려 하지만 형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리고 흐릿한 두 눈은 감긴다.
동생의 시신은 우거진 풀들 속에 버리진 채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자신들을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던 그 음성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양들은 소리쳐 불러 본다. 사방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워보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목자의 음성은 더 이상 들리지가 않는다.
해가 어둑어둑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식탁에 나란히 앉아 있을 무렵 형이 도착한다. 어머니가 묻는다.
"네 동생은 못 봤니?"
형은 차가운 목소리로
"다 큰 녀석을 제가 어디서 봤겠어요?"
라며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그리고 대충 씻고는 잠자리로 들어가 버린다.
사방이 고요하다. 바람 한 점이 없는 것이 폭풍 전야의 망망대해 같다. 그런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 온다. 그래서 그곳으로 눈을 돌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금 고요하다. 그런데 또다시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 온다. 이번에도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다시금 고요해진다. 이윽고 또다시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 눈을 감은 채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러자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너의 아우가 어디에 있느냐?"
형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형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화하던 목소리는 돌변한다. 그리고는 무서운 재판장의 목소리처럼 형의 마음을 찌르듯 들려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형은 목소리의 정체를 직감하게 된다.
'아! 창조주 야훼 하나님의 목소리구나'
그가 그토록 권위를 중시하던 때에, 그의 노력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권위자의 음성인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후회를 하게 된다.
'그렇구나. 동생의 제물을 받고 내 제물을 받지 않으신 그 이유를 내가 이제야 알겠구나'
창조주 야훼 하나님의 판결문이 끝남과 동시에 형은 자신의 모든 허물을 일순간에 깨닫는다. 자신이 저지른 지난 날의 모든 과오가 어떤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를 명료하게 깨닫게 된다.
'그래. 나는 아빠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데, 남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서 가족을 지키려 했어.'
'가족의 먹거리를 챙겼던 건 번듯한 가정을 지켜낼 수 있었던 나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지.'
'제사? 아빠를 사랑해서 그 말에 순종한게 아니야. 단지 아빠보다 더 반듯한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참여한 거야.'
'최고의 권위는 철저하게 규칙만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어.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복종만으로 최고의 권위를 이룰 수 있을줄 알았지.'
'그런데 마음을 담지 않은 행동은 아빠나 엄마 조차도 기뻐하지 않으셨지'
'내가 두손 가득히 곡식단을 들고 왔던 때 보다 멍청한 듯한 웃음으로 들꽃을 꺾어 온 동생을 보면서 엄마와 아빠는 한 없이 즐거워 하셨지'
'내 동생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 그 마음에서 시작하였고, 그럴 경우 받는 모든 이들이 기뻐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무모하지만 어린 양을 제물로 들일 수 있었던게야'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몰랐어. 단지 규칙대로만 하면 자연스럽게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만 여겼지'
'내가 먼저 사랑해야, 어떤 행동을 하던 사랑을 받을 수 있구나'
'내가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사랑을 받을 수 없구나'
우리가 익히 아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개인적인 생각을 덧입혀 이야기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가인과 아벨, 두 형제의 말 할 수 없는 비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가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가인에 대해 알기를 귀찮아 했거나 혹은 그럴만한 가치조차 없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인의 심정을 의도치 않게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인에 대해 그가 어떤 행동을 했을지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오늘의 나눔이 가인의 전반적인 모습과 생각을 표현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가인에 대해 우리가 기존에 가져 왔었던 생각들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인은 특별히 잘못된 악한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저와 여러분 가운데 한 명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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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으면서, 교회(공동체)의 규칙 또는 성도라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번지르한 헌신'을 행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항상 '수준'을 언급했고, 수준에 다달았는지가 초미의 관심이었었습니다.
"이번 집회는 최소한 어떤 규모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
"강사 목사님의 숙식과 숙박 등은 어느 시설 이상은 되어야 초대한 우리들의 최면이 제대로 설 수 있겠지?"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을 참으로 하찮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겉모습으로 치장할 수 있는 것들에 비해. 그러나 이제는 겉모습에서 관심을 돌려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저부터,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부터.
그러다 보면 어느덧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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