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왜 구스의 여인과 결혼하였고, 미리암과 아론은 왜 반대해야 했을까?

모세와 구스의 여인, 그리고 미리암과 아론의 대립각은 성경을 아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주요 설교 주제다. 권위자를 향한 순종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그러나 그 외에 또 다른 깊은 영적 의미가 있음을 오늘의 나눔에서 나누고 싶다.

성경의 표현들에 대해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일괄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간혹 성경을 읽어나가는 부분에서 유발되는 애매모호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화두가 되는 구스의 여인은 구스라는 지역출신의 한 여인을 의미한다.

구스라는 지역은 어디일까?

구스는 에디오피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에디오피아"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주요한 부분이 나타날 때면 여지없이 등장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살전4:17에 등장하는 휴거(rapture)에 해당하는 harpazó(ἁρπάζω)가 쓰인 또 다른 부분이 있는데, 빌립이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만나서 세례를 베풀 때다.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ἁρπαγησόμεθα; harpazó)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살전4:17a)


  •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ἁρπάζω; harpazó) (행8:38~39a)


휴거라는 단어는 세간에 무척 큰 관심단어다. 그런데 그같은 관심이 있는 대목에서 에디오피아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였던 솔로몬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한 이도 이방나라의 여왕이요 에디오피아 여인이다. 아울러 이스라엘의 영적 리더들 간에 분쟁이 나타나는데, 그 순간에도 에디오피아(구스)가 등장한다.

왜 에디오피아가 이토록 중요한 순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모세(와 구스의 여인)를 대적하게 된 미리암과 아론의 모습을 좀더 비밀스럽게 알게 될 줄로 믿는다.

모세에게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정하는 아내가 이미 있었다.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가장의 모습으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죽지도 않았는데, 이방 여인을 또다른 아내로 삼으려 한다. 이스라엘의 또 다른 리더들과 한 마디의 상의도 하지 않은 채. 만일 상의를 했더라면 미리암과 아론이 반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모세의 이같은 행동은 매우 이례적이며 상식 밖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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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남자는 이방 여자와 결혼해선 안 된다. 


에스라 10장
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2.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3.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회개가 전국민적으로 일어나는 가운데 이들이 취한 "돌이키는 삶"은 다름아닌 '모든 이방 아내와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을 다 내보내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대로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순간에는 허락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우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이방 여인은 자신의 마음 중심에 누구를 두고 있었는지.

에스라서에 등장하는 이방출신의 아내들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출신의 남편들을 독려하여 우상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두게 하였다. 하지만 룻, 라합, 다말 등과 같은 이방출신의 여인들은 다르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그 마음의 중심에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두었다. 그래서 그들의 결혼은 성경에서 인정하고 있고, 그렇기에 예슈아의 계보에 합당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구스의 여인 또는 에디오피아 출신의 여인과 결혼하게 된 모세의 경우도 동일하게 여길 수 있다.

그녀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더라면,

모세와의 결혼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된다. 그러면서 죄를 범하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모세는 야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이 된다.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은 에디오피아의 여인이었다면 다르다.

이방여인과의 결혼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방 여인을 의롭다고 여기시겠다는 야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모세가 결혼하게 된 것이기에, 그것은 죄가 아니다.

※ 계명을 어기는 것과 죄를 범하는 것은 다르다. 
마12장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이즈음에서 이같은 추론의 근거가 궁금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에 대해 명확한 말을 하고 있다.

  • 또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을 믿음에 근거하여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는 것을 성경은 미리 알고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미리 전하였습니다.(갈3:8.새번역)


창세기 12장 3절의 말씀은 매우 매우 유명한 말씀이다. 소위 믿음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창업을 하는 곳곳마다 벽에 붙이기를 즐겨하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구절이 "이방 사람"을 전제로 나온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오~ 이건 예전이나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몹시도 동요하게 하는 해석이지 않을까 싶다.



이방 사람이라는 대목에서 에디오피아 출신의 사람들이 왜 연관되었을까?

실제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화 또는 토론하는 현장을 보면, '이들이 지금 싸우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만큼 무섭도록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에디오피아 사람들은 드센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거친 모습에 까무러치지 않을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이방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부분에서 이방 민족의 모습은 온순하고 조용하며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그런 성품의 소유자를 말하는게 아니란 뜻이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의 말씀처럼 구스 곧 에디오피아 인들의 기질은 표범에 비유된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야훼 하나님을 모르기에 행하는 무례하고 악한 그 모습도 표범이나 에디오피아 인처럼 몹시도 강팍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처럼 포악하고 흉악한 자들인데, 그런 자들을 향해 '그들의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 그들을 의롭다고 여기겠다'고 야훼 하나님은 이미 계획을 세우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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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그 사실이 수긍되나요?


초등학교 또는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분들이라면 쉽게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각종 폭행과 금품탈취 등을 당한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부모도 모르는 사이 2~3년 이상을 당하고 있다. 부모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자신의 자녀를 괴롭힌 그 나쁜 녀석들이 어찌 곱게 보일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부모인 자신이 직접 내려도 속이 시원하지 않다고 여길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괴롭힘 당한 자녀 때문에 미치도록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서 기도를 하는데, "OOO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너의 자녀를 괴롭힌 □□□도 내가 사랑한다. 나는 그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라는 음성을 주셨다고 하자.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


이때 여호와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수긍이 되는 부모가 몇이나 있을까? 혹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내가 직접 들었다고 할지라도 힘들진데, 가령 목회자 분께서 그런 음성을 들으시고서 학대받은 자녀의 부모에게 "야훼 하나님께서 이러쿵 저러쿵 하시면서, 학대한 그 자녀를 반드시 구원하고자 하신다고 합니다"라고 말하면, 그 말을 듣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필자의 생각 또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수긍은 커녕 목회자의 면전에서 나쁜 소리를 하지 않으면 감사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면, 그 상황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의 형상을 품었으면 품었지, 사랑이신 야훼 하나님의 형상을 보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미리암과 아론의 입장으로 되돌아 가보자.

모세는 이스라엘(과 허다한 잡족, 곧 이방인들)의 수장이다. 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모세가 율법을 어기고서 이방 여인과 결혼하려 한다. 그것도 이방 족속들 중에서도 가장 포악하고 거친 종족의 출신 여인과. 미리암과 아론의 입장에서 가당치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특히 누나로서 미리암의 입장은 어떻겠는가? 
"세상에 여자를 고르더라도, 어찌 천박하고 억척스런 여자를 아내로 고르려 하느냐?"
"이스라엘에는 여자가 없다더냐?"

삿14장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4. ...(중략)...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삼손의 이같은 행동에 삼손의 부모 또한 율법의 계명을 준수할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야훼 하나님의 뜻인것을 알진 못했다. 이러한 사건은 비단 삼손과 그의 부모 사이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모든 역사는 반복된다. 삼손과 그의 부모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모름지기 모세와 미리암(과 아론)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과 같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야훼 하나님의 입장은 더욱 완고하니,

  • 그러므로 믿음에서 난 사람들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갈3:9.새번역)


세상에서 가장 드세고 포악하기로 소문난 에디오피아 출신의 사람들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 이 의미를 다시 말하면, 

  • 그러므로 믿음에서 난 사람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여러분은 아십시오.(갈3:7.새번역)


자신들만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확신하고 자부하는데, 표범같은 성격의 저깟 것들이 자신들과 함께 형제와 자매가 된다? 미리암과 아론은 차치하더라도 이스라엘 전체에 수긍될 만한 사실일까?

삼손의 부모들 조차도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는건 아니다. 그들도 미리암과 아론처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민12:2a)이라고 말하는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삼손이 태어나기 전에 삼손의 부모는 이미 야훼 하나님의 음성과 그분의 뜻을 들었다. 그래서 삼손에게 "너만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줄 아느냐?"고 말하고서,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에 극구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셨다.

마찬가지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가 지도자로서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너무나 납득이 되지 않는 일로서 율법의 계명을 어기는 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미리암과 아론의 입장이 자명하게 그릇된 것이라고 어느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절대 없다.

모세는 속량자와 치리자의 속성을 갖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다.
속량자(Yeshuah)와 치리자(Yeshua)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는 "메시아"의 모습이다.

메시아의 행보에 이스라엘은 너무나 기뻐했다. 자신들이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은 출애굽이라는 특별한 사건을 통해 직접 체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인정하는) 여인에게 '남편의 법'(롬7:1. 곧 율법)을 세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방여인에게 '남편의 법'(율법)을 세우겠다고 말하니,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비방한다. 메시아를 용납할 수 없어서 거부하게 된다.

그 결과 메시아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여인은 저주를 받아 나병환자가 되어, 진 밖으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미리암 그녀가 진을 떠나는 시기는 '정한 기한'(appointed time; Moed)이다. 즉 이레(7일)이다. 이 때가 지나면 또는 정한 기한이 지나면, 그녀는 반.드.시 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민12장
15. 이에 미리암이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갇혀 있었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16.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

오늘날 예슈아를 영접하지 못한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향하여 정죄하는 마음을 품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율법의 계명을 온전히 지켜나가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미리암처럼 저주받은 자의 모습으로 척박하게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야훼 하나님의 정한 때가 차게 되는 그날이 오면 그들은 반드시 야훼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대제사장이 있는 그 진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스라엘 진영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 그것도 야훼 하나님의 뜻이시다.

표범과 같이 포악하고 간악한 무리조차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야훼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지금은 서로간에 이해의 폭이 너무나 넓겠으나, 죽을만큼 인정하기 어려운 우리 이방인들을 자신들과 동일하게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유대인들이 인정해 주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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