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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해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원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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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 안에서 우리는 베풀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가진 자 만이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은혜를 받은 바가 있었다면, 받은 그 만큼을 베풀 수 있다. 이것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그런 삶의 원천으로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나태한 삶은 미워하나 비만한 자는 존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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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는 미워하나 죄인은 미워해선 안 된다 ' 는 말이 있다. 이 사실은 사회 또는 신앙의 다른 영역으로도 확대되어 이해되기에 충분한 만물의 이치를 담고 있다. 올바르지 못하였던 삶을 산 결과, 우리의 몸은 데미지를 입는다. 이렇게 훼손된 몸의 일부분으로 인하여 몸의 중심은 변화되는데. 몸의 중심을 바로 잡기 위해 우리 몸은 밸런스를 잡기 위한 특단의 일을 진행한다. 그것은 바로 중심에서 벗어나는 몸의 부분에 살을 찌우게 하는 것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를 평형하게 만들기 위해 반대편에 무거운 것을 놓는 것처럼. | 비만은 우리의 비난을 받을만한 대상이 아닌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비난을 받기에 합당한 대상 은  '체질을 고려하지 못한 채 서구화 되어버린 삶의 방식' 이다. 우리의 삶에 잘못 적용된 삶의 방식을 비난하고 조롱할 순 있겠으나, 그런 삶 속에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 곧 비만해져 버린 몸을 가진 이들은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삶 가운데 죄의식은 삶의 방식에 적용해야 할 것이며, 죄인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비만해져 버린 이들을 존중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의 인식에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면, 대립으로 인한 분쟁은 사라지지 않겠느냐며 기대를 해 볼 수 있으리라 본다. |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을 꼭 참고해 주세요.

귀중한 일은 누구에게 맡기는게 현명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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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분이 있다. 그런 분이 나를 방문하셨다. 이분을 모시는 일을 나는 어떤 직원에게 맡길 수 있을까? 갓 입사한 풋내기 사원에게? 아니면 오랜 기간 동안 내게 신뢰있는 행동을 보인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직원에게? | 상황을 바꿔보자. 이번에는 나와 상관없는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원이 나를 방문했다. 이 판매원을 상대하는 일에 나는 어떤 사원을 보낼까? 갓 입사하여 회사일에 제대로 아는게 거의 없는 사원? 아니면 내가 아끼는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사원?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스스로가 더 잘 알것이라 생각하는 만큼, 이 상황을 대처하는 모습은 상식 그 자체다. 소위 잡상인을 상대하는 일은 건물 입구의 경비원 분들이 주로 처리하는 업무인 것이고, 귀한 손님들은 사장 또는 회장의 오른팔에 해당하는 최측근들이 맡아서 하는 주된 업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인에게 있어서 중요성의 우선순위에 따라 맡게 되는 사원들의 수준도 결정된다고 보는게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  그럼 잠시 교회 공동체라는 신앙의 모습을 연상해 볼 수 있겠다. 교회 공동체에서 성도들에게 어떤 일, 곧 헌신을 부탁 할 때가 많이 있다. 어떤 이에게 헌신을 부탁하는게 좋을지 대충 짐작이 가리라 본다. 찬양 인도자로 헌신을 부탁하려 할 때, 믿음과 신뢰할 수 있는 이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즉 준비된 성도에게 맡기는 것으로서. 새신자 등을 마중하는 헌신에 믿음과 신뢰할 수 있는 이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즉 준비된 성도에게 맡기는 것으로서. 이처럼 교회 공동체 안에서 행해지는 사역 하나 하나가 모두 귀한 존재를 대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이는 실제 삶에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다. 신앙을 떠나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삶의 이치로서. 내가 얼마 만큼 준비되었는가에 따라 내가 도맡아서 할 수 있는 업무의 수준이 이미 결정되었다 할 수...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자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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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경제는 순환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처럼 순환하는 구조를 갖는 만물의 이치는 많다. 그 중에 물(water)도 순환한다. 그래서 일까? 경제에서 순환하는 매체를 currency라고 말하고서 이를 화폐라고 말할 때, 물의 흐름 자체도 current라고 말한다. 고대 중국에서 선왕의 조건 가운데 하나는 범람하는 중국 황하강을 제대로 치리할 줄 아는 자라 했듯이, 물을 다스릴 줄 아는 또는 물을 제어할 줄 아는 것은 이토록 힘들고 어렵다. 그처럼 경제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것도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큰 틀에서 바라볼 때, 어느 일각에서 만큼은 물을 다룰 수 있는 비법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물 속의 분자 단위 하나 하나까지 그 흐름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령 양동이 하나를 가져와서 그 안에 물을 담아 둠으로써 일정량에 해당하는 물의 흐름 또는 이동은 제어할 수 있다. 이 같은 원리는 별것 아닌것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든 곳에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며 적용되고 있는 만물의 이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국의 국가 주석인 등소평과 미국의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였던 하이에크의 만남이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를 꼽으라 한다면 하이에크와 케인즈라 평가된다. 중국 국가주석 등소평은 기아에 허덕이는 무너진 중국 경제를 회복하겠다는 의지에서 경제학자 하이에크를 초청한다. 만화로 보는 맨큐의 경제학에서 (이하 모두) 그리고 그에게 중국의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농작물을 다루는 부분에서 있어서, 그것을 정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개입해서 국민은 그저 생각하지 말고 따라오라는 식의 구조는 기아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하이에크는 농부에게 자신의 농작물(중에서 정부에 세금으로 바치는 난 그 나머지)을 처분할 수 있는 권리(내지는 차별화 된 방식, 또는 자유)를 보장해 주라고 조언을 한다. |  ...

보수와 진보는 하나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값진 요소로서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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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는 하나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값진 요소로서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pixabay.com/ko/users/geralt-9301 | 기업들의 홍보 문구를 보면 어느 순간부터 유행하듯 삽입되는 문구가 하나 있다. 그것은 'since'다. 기업의 장인 정신을 내포하는 단어이면서 정직과 신뢰 등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역사적인 의미도 함축하여 담고 있다. 이 같은 자랑스러운 역사적 유산을 우리는 '정통성'(Authenticity)이라 말한다. 역사적 정통성을 당당하게 내 세울 수 있는 집단을 우리는 보수라고 부른다. 보수는 정통성을 무엇보다 우선시 하기에 '학벌이나 학연, 지연' 등에 큰 비중을 둔다. 그래서 소위 오랜 기간 동안 현존할 수 있는 그 상황을 설명할 때면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실력과 능력 , 그리고 정직과 신뢰 등이 있다는 것으로 자신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그것에 고귀한 것에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볼 때에는 몹시도 '권위적인 모습'을 갖는 권위주의자로 행동한다. 그렇듯 보수는 변하지 않는 생활의 이치 로서 '물은 위에서 아래 흐른다'는 사실은 그들의 권위 를 상징한다. 그래서 권위에는 서열 (order)이 반드시 전제되기에, 이러한 서열 구조는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 수직 구조 '로서 표현된다. 반대로 진보(진보주의; Progressivism)가 있다. 보수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수가 우선시 되던 그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을 변혁시키고자 노력하는 전진적(前進的)인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특정한 집단 또는 특권층의 권위보다는 모두가 평등하다 는 의미에서 개인의 인권을 중시 하고, 권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법(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의무와 책임보다는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다 보니 (의무와 책임이 배제된)...

평소 마음씨 좋고 상냥하던 자가 갑자기 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까지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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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에게 신뢰를 주던 마음씨 좋고 상냥한 얼굴을 소유한 자가 갑자기 수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고 그것도 모자라 허다한 목숨을 앗아가면서까지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자신의 가족을 회복(부활) 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게 어려움을 줬던 지난 날의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복수에 집중하는 이를 가리켜 이 같이 말한다. 복수에 눈이 먼 자 라고.  그렇다. 눈이 먼 자 는 눈 앞에 있는 것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단지, 자신이 보고 싶은 데로만 생각하고 행동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다. | 그런 이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복수를 복수로 갚아야 할까? 만일 이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나는 가장 확실하다는 그 방법에 나의 모든 마음과 열정을 담고 싶다. |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고 했다. 글을 읽을 순 있기 때문에 글을 읽어는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다음의 영상은 이해할 수만 없던 위의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를 수 있게끔 도와준다. 죄에 대해선 판결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죄의 무게 만큼에 해당하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으니, 사람 자신에게는 그 무게를 전가해선 아니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내리는 단 하나의 결단. 죄의 무게, 곧 죄의 삯을 사람의 마음에 새긴다 . 면 어떨까? 사람의 마음 속에 새겨 놓되 어느 누구도 인위적으로 없앨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 그곳은 어디일까? 양심(conscience) Leb; 아버지의 마음 양심에 죄의 삯을 새겨 놓게 ...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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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들은 방대한 빅데이터를 의존하는 생활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미 상당한 전환이 이루어졌다 할 수도 있겠으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빅데이터와 상관없이 사는 세대(어르신)가 있다. 그래서 전환 단계에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 변화가 우리 인간에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반영될까? 그 일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 어떤 기관의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그곳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아보기 위해 가입신청을 하려 했다. 그런데 내 눈에 강하게 다가오는 어떤 문구가 있어서 화면캡처를 하였다. 비밀번호는 무척 중요한 나만의 정보인데. 그것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내 중요한 정보를 내가 기억하고 있지 않는 대신 기계가 나의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겠다는 시대인 것을 직감하는 순간이다. 소중하지 않는 것만 기억하는 존재와 소중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존재에게서 가치를 느끼고 어떤 존재에게서 하찮음을 볼 수 있겠는가? 기계는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반면​ 인간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 는 명제가 성립될 수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지 궁금하다. 기계는 인간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이다. 피조물이 인간을 대신하려는 시대적 패러다임은 마치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인 인간이 대신하려 하는  적그리스도의 시대 로 접어들어가고 있다는 징조(sign)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여러분. 인간으로서, 여러분이 스스로 해야 할 부분은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스스로 행해야 합니다. 물론 삶을 누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편리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인간이 가져야 할 존재성의 기능은 절대로 포기하거나 혹은 기계에게 (합법적으로) 양도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강조합니다. | 삶의 편리를 추구하려 하지 마십시오. 소금이 아무리 소중하다 한들, 음식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