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천국을 갈 수 있나요?

우리는 천국을 원한다. 사실 예슈아께서 계신 곳이 천국이니, 예슈아께서 계신 곳으로 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두 가지의 양상으로 서로를 권면한다. 하나는 두려움을 줌으로써, 다른 하나는 즐거움을 줌으로써 '함께 천국으로 가자'며 권면한다.




두려움을 주는 것만으로 신앙심을 자극하여

천국으로 가려는 열심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도저히 갈 수 없을 것만 같은 'The most dangerous road'라는 게 있다.


왜 위험한 길이라 말할까?

작은 실수가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기에 충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이 엄습하는 길이다. 과연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 길을 가라하면, 어느 누가 갈 수 있을까?







보상이 없는 중에 위험을 감수하라면 어느 누구도 그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위험수당'을 제시해야만 가능한 일들이 있다. 즉 위험수당이라는 인센티브를 제시해야만 누군가가 그 일을 맡는다는 뜻이다. 







인센티브가 없다면 어느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인데, 인센티브가 제시되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바라보고 그 일을 하겠다는 결단이 선 것이다. 자신의 생명과 맞바꿀 수 있을 만한 인센티브가 제공되어야 함이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이다. 전쟁을 치뤄야 하는 군인의 경우, 물질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은 매우 미약하다. #군가산점 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것일 뿐, 사실은 그들 마음 속에 애국심 또는 가족을 지켜내야 한다는 가족애가 가장 큰 보상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를 받지 않고 고된 일을 하는 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사실 잔혹한 독재정권에서도 조차 대가를 지불한다. 다만 그들이 제시하는 인센티브가 좀 색다른 면(??)이 있어서 그게 문제일 뿐, 그들도 인센티브는 제시한다.


"내 말 듣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생명만은 해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인센티브라고 말하고, 고로 생명을 보존받고 싶다면 일을 하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이같은 인센티브는 거짓된 것임을 누구나 알기에, 심지어 독재자 역시도 거짓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총뿌리'를 겨냥하며 강요받는 이들을 감시한다.

상대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지 않고, 감시하며 강요하는 것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제안이 거짓된 것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행위다.



따라서 세상의 이치, 곧 만물을 창조하신 야훼 하나님의 뜻은 두려움 또는 공포감을 내세워 '하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게 아니다.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시함으로써, 그 인센티브를 바라보고 힘겨운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끔 하시는 게 주님의 방법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개역개정)



예슈아께서 그 본을 보이셨다.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삶 또는 신앙심은 반드시 위험수당, 곧 '속히 있을 기쁨'을 보았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강권한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개역개정)



현실의 암담함에 눈을 집중하지 말고, 우리가 받게 될 훗날의 인센티브를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3:19.개역개정)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바가 있다. 주인되시는 예슈아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겠다고 친히 말씀하셨는가? 하는 부분을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사기꾼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 있다.



"여러분, 제게 회비만 내시면 됩니다."

"제가 다 수속을 밟아 놨으니 저곳에 가셔서 편하게 OOO을 받아 가세요."



사기꾼의 말만 믿고 그곳에 가본 결과 어떠했을까? 그곳 관계자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나요? 우리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



그렇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실무자를 만나서 그와 약속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신앙심의 기준에 오해를 갖는 우리들은



"신앙심 깊은 이가 제시하면, 받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고서, 그것이 '주를 신뢰하는 믿음'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1~22)



하지만 예슈아께서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3)



'OOO에 투자하시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달콤한 속삭임은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멘트다. 이 세상에 돈과 권력을 나눠 갖으려는 자가 어디있을까? 돈과 권력은 절대로 나눠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기꾼들은 나눠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달콤한 말로 투자(도박판에 베팅)를 권유한다. 그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인데, 왜 자기가 그 돈을 벌지 않지?'



라는 매우 단순한 질문만 해 봐도 답은 얻어질 것이다. 투자를 권유하는 이들은 절대로 위험부담(이 큰 일에 대해 그 부담)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을 속여 그들의 돈으로 그 일을 하려 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7)



주님은, 예슈아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 양은


내 음성(my voice),

곧 내 목소리를 듣는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기쁨도 없는데 무엇으로 이 고난(한 삶)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 분이나 은사자 분들 역시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며 주께서 베푸시는 인센티브를 받는 분들입니다. 고로 목회자나 은사자는 우리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대신 목회자 분들이나 은사자 분들이 피를 흘리기 까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음은 주님이 주시는 인센티브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셨다면, 그 사실, 곧 주님의 인센티브를 바라보는 것으로 오늘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그 영적 비밀을 자신의 삶에도 적용해 보고자 노력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날에(yoma; 요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

지금 내게 주소서

(수14:12)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또는 주께서 나와 동행하기를 원하시며 오늘의 삶 속에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신다면...우리는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음성이 그리고 훈계가 바로 나의 귓가에 들려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나의 인센티브가 되시는 예슈아와 동행하시는 그런 하루가 되시길 강권하며 축복합니다.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고, 세상 안에서는 평강을 누릴 수 없다는 그 사실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삶 안에서만 우리는 오늘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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