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faith)가 믿음(belief)과 혼용되는 이유


신앙심이 있는 우리들은 흔히들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무조건적인 수준으로 여긴다. 즉 주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의문달지 말고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나도 그랬었다.



그런데 말이다.

신뢰라는 단어를 곰곰히 되새기다 보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쉽게 말해 누구 하나 속이지 않는 그런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신뢰라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을 거며 그런 세계에서는 신뢰라는 단어 조차 언급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신뢰라는 단어를 강조하거나 언급하는 일이 없다 할지라도, 누구 하나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온 세상이 도둑질과 속이는 일들로 가득한 세계가 있다고 하자. 누구 하나 믿음(belief)을 줄 만한 자가 없거나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자 그런 사회를 거부하고 싶은 이는 모두를 향해 부르짖을 것이다.



여러분.
우리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약속을 먼저 지켜 나가자고 말할 것이다. 서로간의 약속이 잘 지켜진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뢰를 강조하는 세계는 약속을 지키는 이들이 거의 없고, 따라서 믿음을 줄 만한 이들이 거의 없는 그런 세계임이 분명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뢰가 갖는 값어치를 나름 정확하게 표현한 내용이 있다.



천재왕자의 적자국가 재생술 中에서






그렇다.

야훼 하나님의 음성이 내게 들려 왔을 때, 의문을 가질 수 조차 없을 만큼 분명한 내용이라면 어느 누가 분별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느 누가 '이루어지지 않을 지 몰라'라며 우려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게 야훼 하나님의 음성과 속이는 자의 음성이 함께 섞여서 들린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야훼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시대적 상황대로 흘러가는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정반대의 상황처럼 흘러가는 시대적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떨까?


​12 제자들은 너나할거 없이 예슈아께서 왕으로 입성하게 되실 거라 믿었고, 실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던 당시의 상황은 그런 짐작이 옳다고 여기기에 합당했었다. 온 만민은 열광하는 중에 예슈아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하다니, 이 어찌 가슴벅차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자들의 가슴이 몹시 두군거렸을 것이다. 예슈아를 따르면서 그간 자신들이 겪었던 숱한 고생들을 생각하노라면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가 없던 지난 날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 가겠지만 장차 얻게 될 그 영광을 생각하니 이내 벅찬 기쁨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총애하는 12명의 고관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인가? 왕이 되어야 할 예슈아께서 돌연 죄인이 되어 십자가 형을 받게 된다니. 제자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십자가 형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여러분들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에 관한 내용과 실제 예슈아 사이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때 필요한 것은 신뢰다.

오랜 시간 동안 경험했던 바를 통해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극복하여 바라볼 수 있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신뢰다.



그렇기에 분명히 신뢰는 절대자가 베풀어 줘야만이 가질 수 있는 은혜의 산물이지만, 결국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 결단해야 하는 내 자유의지의 산물도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뢰는 가끔씩이지만 믿음(belief)으로도 이해되곤 한다. 물론 단순한 의미에서의 믿음(belief)과는 다르다. 지난 날의 삶을 근거로 이루어진 믿음은 신뢰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 무작정 믿겠다고 달려드는 그런 믿음은 신뢰가 될 수 없다.



여러분.

'야훼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라고 말한다는 것은 셀 수 없을 정도의 허다한 자들이 우리 주변에서 나를 속이려 든다는 그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내 주변의 상황들은 나를 속이려 드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아간다는 그런 사실도 인정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예슈아께서는 늘 항상


두려워 하지 말고
담대히 맞서라.
내가 이미
세상을 이기었노라


고 말씀하시며 권면하셨던 것은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눈 앞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가진 자가 주님의 신뢰를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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